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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에게 듣는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되듯, 되도록 까지 할 뿐"
[교구장에게 듣는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되듯, 되도록 까지 할 뿐"
  • 안세명 기자
  • 승인 2019.07.17
  • 호수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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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타원 김법조 일본교구장

해외교화 효시, 전법의 역사
재가출가 교도 합력에 감사
동경교당 재건·법인 설립 최선

[원불교신문=안세명]

일본교화에 임한지 얼마나 됐나
어느덧 일본교화에 임한지 21년째를 맞이하게 됐다. 법신불 사은과 역대 스승과 선진·법동지들이 함께 합력해 주신 은혜 덕분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랜 염원이었던 오사카교당 이안 봉불식이 이뤄지도록 관심과 성원을 다해주신 재가출가 교도들의 협력에 감사드린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특히 오사카교당은 해외교화의 효시로 원기20년 일제강점기에 오사카에 일원대도 정법을 전하려 했던 소태산 대종사의 자비원력으로 시작됐다. 25년간 13평 남짓한 교당에서 교화를 해오다 10년 기도의 정성, 좌산·경산상사를 비롯한 전 교도의 불사로 원기101년 10월4일 봉불식 거행했다. 일본교화에 정성을 다했던 선진들에게 효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어려운 여건, 어떤 교화 표준으로 임하나
일본교화는 오랜 역사와 선진들의 발자취 속에서도 교화발전은 더디고 교당마다 큰 아픔과 굴곡이 있었다. 일본교화는 한·일 양국의 역사적 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쉽지 않다.이런 상황 속에서 교화 표준을 대산종사의 세 가지 되어지는 진리인 '끝까지 구하라 얻어지나니라, 진심으로 원하라 이루어지나니라, 정성껏 힘쓰라 되나니라'로  잡고 '끝까지, 진심으로, 정성으로 일본교화가 되도록 까지 할 뿐'이란 자세로 교역에 임하고 있다.
 
일본교화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다. 처음에는 일본어를 모르니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고 자신감이 없었다.현장에서 일본어를 익힌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활은 매일 이어지고 일은 언어를 익힐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관공서와 법인 일을 처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일본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답답한 일도 있었고 실례되는 일도 많았다.이때 느낀 점은 해외교화 파견시에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경제적 지원이 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자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절약한다 해도 어려운 교당 경제로 활발한 교화 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도움 주는 인연들의 물심양면 합력이 해외교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교구내 소통과 협력은
일본교구 내 교당은 종교법인 원불교 오사카교당과 종교법인 가나가와법인으로서 요코하마교당과 동경교당이 있었다. 오사카교당은 월 3회 법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인·재일동포·일본인 교도들이 마음공부하고 있다. 이안 봉불식 후 한국의 단체와 기관에서 재일 동포 위한 한방무료진료, 김장김치 나눔,장수사진 촬영 등 다양한 행사들이 추진되고 있으며, 올해 발령받은 이동영 교무가 일본어 학교에서 어학공부하며 교화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요코하마교당은 50년 이상 된 건물로 노후돼 있으며, 언덕에 위치하여 지진 시 붕괴 위험 가능성이 있어 새로운 곳으로 이전 필요성이 예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퇴임 후 자원봉사로 전명진 원로교무와 김수덕 교무가 지난해 열악한 환경에서 교화에 노력하고 있으나, 장기간 주임교무의 부재로 교당 환경이 낙후되어 교화는 침체된 상황이다. 

동경교당은 기노시타카츠시로(법명 원도)가 원기90년 4층 건물을 일본교구청, 동경교당으로 희사해 원기91년 봉불식을 올리고 가나가와법인(요코하마교당)소속으로서 동경지역 교화를 담당해왔다.그러나 지난 원기102년 11월 매각돼 새로이 교당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동경교당 교도들은 요코하마교당에서 법회를 보고 있다. 오사카와 동경은 약 600㎞ 거리로 현실적으로 만나는 기회를 갖기 어렵다. 지난 4월에는 요코하마교당 법회에 참석해  요코하마교당과 동경교당 교도들에게 인사와 함께 동경교당 매입과 요코하마교당의 방향에 대하여 회의한 바 있다.
 

교구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구 내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 동경교당 재건과 종교법인 설립이다. 동경교당이 지난 원기102년(2017) 11월 매각됨에 따라 동경교당 교도들은 4축2재는 요코하마교당에 참석하고 있으며, 월 1회 동경 시내 회의실을 빌려 법회를 보고 있다.

교도들은 하루 빨리 동경교당이 안정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교당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동경교당은 동경 23개 구내에 교통이 편리하고 교화에 적합한 규모의 교당을 매입하여 '종교법인 동경교당'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종교법인 설립절차는 종교 활동에 적합한 규모의 건물을 구입하고 3년 이상의 성실한 종교 활동과 실적이 필요하다. 이에 수차례 관할청의 현지 답사가 있으며, 기본 조건 충족 후 법인 설립 인가 신청이 가능하다.

또한 효율적인 법인관리를 위해 규칙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는 일본 종교법인법을 모법으로 원불교 종교법인을 설립한 관계로, 원불교 총부와의 관계가 명시돼 있지 않아 일본 내에서는 각각의 독립 법인으로 되어 있다. 원만한 종교법인 관리를 위해 중앙총부와의 관계성을 명시하고 대표역원, 책임역원의 자격, 교산관리 등을 제대로 하기 위한 규칙 개정이 필요하다. 개별 종교법인을 원불교 법인 하나로 통합하고 단위 법인을 관리하기 위해  '포괄종교법인 제도'의 변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오사카교당법인, 가나가와법인(요코하마교당)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동경교당법인과 미래에 개척될 법인(교당)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본교구청인 동경교당이 각 지역의 독립 법인을 포괄하여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일본교화에 자부심을 느낀 부분이 있다면
일제강점기, 박대완 선진은 그 어려운 시기에 일원의 법종자를 오사카 땅에 뿌렸다. 그 씨앗을 키우기 위해 교단에서는 '일본교화추진위원'을 정해 종교자 대회, 학술대회에 파견 시 친인척이나 관공서를 방문하여 원불교를 홍보하게 했다는 기록을 보며, 일본교화에 대한 교단의 관심과 간절한 염원을 느끼게 됐다. 그간 박제권 교구장을 비롯한 역대 교구장들과 혈성을 다한 교무들의 정성으로 교화의 기초를 다졌다. 이제 그 정신을 온전히 이어받아 일본 전역에 만발한 시절 인연을 기다려본다.

향후 교화계획을 소개한다면
원불교 치바법인은 원기85년, 대표역원이 일본인으로 바뀌면서 규칙을 개정하고, 임원을 개선하며 독립된 법인으로서 운영하고 있다. 원불교 치바교당이 한국 원불교의 해외사무소로 된 것이 아닌 일본 내 단독 법인인 치바법인 규칙에 따라 임원이 선임되어 운영이 되고 있으므로 총부와 실질적으로 연결고리가 끊긴 별개의 법인이라 할 수 있다. 별개의 법인이라면 총부가 치바법인에 대하여 지도 감독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되찾아 오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 여겨진다. 

치바법인 수습책으로서는 규칙에서 원불교의 교리에 관한 항목 삭제와 법인명의 개명이 이뤄져야 하고 치바법인과 연결이 있었던 전 일본교구청, 동경교당의 매매대금으로 교화활동에 적합한 일본교구청 동경교당을 매입하고 새로운 종교법인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미래의 일본교화의 토대를 다지는 새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치바 법인으로 인해 기부 받은 동경교당 매각에 대한 아쉬움이 크며 20여 년 간 일본에서 살아온 교역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오까야마법인과 치바법인이 사업목적으로 이용되며 발생한 일련의 과오들을 목도하며, 일본 종교법인 규정에 '종교단체라 함은 종교의 교의를 넓히고 의식행사를 하며 신자를 교화, 육성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됐듯이 교화 목적으로 법인관리와 교당을 운영해 나갈 때 교당이 안정되고 교화 발전이 함께하리라 본다.

일본교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몇 년, 몇 명이라는 연조와 수를 헤아리지 말고 포기하지 않고, 되도록까지 창립정신으로 매진할 때 일본교화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2019년 7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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