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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법의 삶] "어떤 스승을 모시는가에 따라 일생이 달라져요"
[호법의 삶] "어떤 스승을 모시는가에 따라 일생이 달라져요"
  • 안세명
  • 승인 2019.08.07
  • 호수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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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 이춘일 종사
이춘일 종사는 정산종사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오늘도 스승의 심법으로 사는가 그 마음을 대조하고 살핀다.
이춘일 종사는 정산종사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오늘도 스승의 심법으로 사는가 그 마음을 대조하고 살핀다.

[원불교신문=안세명] "별 말씀 없으신데도 가슴에 스며드는 인자함과 화열(和悅)이 넘치는 성자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관산 이춘일 종사(80·전포교당)는 학창시절 익산성지 구조실에서 뵈었던 정산종사를 떠올린다. 그는 "지금껏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정산종사의 자비덕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스승을 모셨는가에 따라 일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 체험했다"고 회고한다.

원불교와의 첫 인연 
그는 중학교 3학년 "원불교를 가봤는데 제도도 좋고, 교법도 훌륭하다"는 지리 선생님의 말에 10여 명 친구들과 함께 부산교당을 찾게 됐다. 원래 불교 집안인데다가 작은아버지가 스님이어서 처음부터 원불교에 호감이 갔다. 당시 부산교당은 전재동포구호사업 공로로 신사를 불하 받은 적산가옥이었다. 교당 입구 주련에는 '고불미생전응연일상원(古佛未生前凝然一相圓), 불여만법위려자시심마(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가 걸려 있어 "최소한 사교는 아니겠구나"는 인상이 들었다. 신흥종교가 득세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무님 설교가 1시간이 넘으니 젊은 학생들은 좀이 쑤셔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친구들과 학생회를 창립하기로 결의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차고 겁 없던 시절이었다. 원기41년 일이다. 당시에는 교서도 없었다. 한지로 된 <불교정전>에는 정전과 불조요경이 합본돼 있었고 <대종경>도 나오기 전이다. 그래도 교전공부는 항상 재미있었고 마음에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학생회 시절, 정산종사를 큰 스승으로 모셨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서울교당에 다니면서 승타원 송영봉 종사와 인연을 맺었다. 연세대학교 뒤에 가면 미국선교사 사택이 있어 그곳에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목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미 그에겐 원불교 스승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서울교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할 때는 교당에 살다시피 했다. 마침 정산종사가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했고, 한 달간 정양하실 때인지라 말씀은 못 받들었지만 먼발치에서 뵐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송 원로교무는 어머니 같았다. 교리강의는 매우 체계적였으며 교육은 혹독했다. 졸업할 무렵에는 하섬에서 권재홍·이윤중·최현신·노홍원 교도와 함께 우담계를 조직해 형제의 인연을 맺게 해주셨다. 신심·공심·공부심 장한 교단의 큰 일꾼으로 살도록 교법과 법연으로 씨줄과 날줄을 촘촘히 연결시켜 준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항상 열린 교당이었으면
"우리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당에서 저녁도 먹고 놀기도 했으며, 집처럼 수시로 다녔다." 학생회와 청년회를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다닌 그인지라 교화의 첩경이 청소년 교화에 있음을 강조한다. 

"청소년 교화를 이끌어줄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교역자가 부족하니, 대형교당을 만들어 청소년 담당교무들이 청소년 법회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그는 청소년 전담교무들이 자녀교화, 가족교화를 책임져 줄 것을 당부했다. 아들 삼형제(남대전교당 이도원, 전포교당 이필원, 서울교당 이윤수)도 어릴 적 원불교에 입문해서인지 적극적으로 주인역할을 하고 있으며 며느리와 아이들도 교당을 좋아한다. 대를 이은 일원가족이 그에겐 가장 큰 행복이자 보람이다. 그는 "다양한 행사가 청소년교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삶을 교법에 맞춰 생활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청소년들이 안정을 얻게 되고 교당생활에 흥미가 생긴다"고 부연한다. 자신도 입시준비로 부담됐던 학창시절, 교당은 마음의 위안을 받는 유일할 집이었음을 떠올렸다.

법은 구전심수로 받들어야
"나의 영원한 스승은 정산종사님이다. 불교에서는 위의설법(威儀說法)이란 말이 있다. 그 어른의 기품에 감화됐다. 가만히 앉아만 계셔도 무한한 설법을 하셨다."

그는 "안병욱 교수는 40대가 넘어서 정산종사를 뵙고 '내가 이 세상에서 본 가장 좋은 얼굴이며, 얼마나 정성껏 수양의 생활을 쌓았기에 저와 같이 화열과 인자가 넘치는 얼굴이 되었을까' 감탄했지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기운을 느꼈다"며 "수도인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원숙해지는 경지를 닮고 싶었다. 스승의 법문을 글로 방송으로 받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전심수의 기운을 함께 타야 함을 깨닫게 됐다"고 교도들에게 직접 청법하는 기회를 많이 갖기를 권했다. 그에게는 떠오르는 스승이 또 있다. 부산교당 졸업할 때 향산 안이정 종사다. 전형적인 선비이셨고 곧고 꼿꼿했으며 타협을 몰랐다. 말 그대로 직심(直心)이었다.

대종사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야
"우리는 소태산 대종사 근본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매일 묵상하며 챙기는 그의 다짐이다. 영도교당에서 전포교당을 연원 냈을 때 옥탑방부터 시작했다. 당시 전포교당 근처에는 무속인들이 많아 집집마다 대나무가 꽂혀 있었다. 법회보고 있으면 "여기 점 안봅니까" 할 정도였다. 그런 열악한 곳에서 전포교당이 생겼다. 그가 교도회장을 할 때 교당에 오면 쌀통에 쌀이 없고, 반찬이 김치밖에 없었다. 그 어려운 시절 유신옥 교무는 불평 한마디 안했다. 놀라운 심법이었다. 지금 전무출신들 또한 그런 마음가짐이 돼야 한다.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근무한 그 투철한 사무여한의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는 교단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먼저 종법사가 정신적인 지주가 돼야 함을 강조한다. 지금처럼 연령제한이 아닌 늘 상주하고 연임하면서 영혼의 스승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 권력이 집중돼서는 안되며 교정의 책임은 교정원이 맡고, 제도적 보완을 해가면서 권력분립이 돼야 함을 주장한다. 인사제도도 큰 개혁과제다. 주요 보직은 종법사 승인을 받더라도 교무 인사는 교정원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난 교헌개정 추진 시 세목별 정리를 해 놓은 상태다. 좌절되어 참 허탈했다. 사회와 시대는 변화하는데 교단은 너무 정체돼 있다"며 "중앙교의회를 살려야 한다. 아무 권한이 없고 유명무실한 형식주의에 흐르고 있다. 수위단회에서 모든 것이 다 결정된다. 중앙교의회는 추인하는 일 밖에 없다"고 교헌개정위원으로 활동했을 때의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중앙교의회 위원들이 너무 많다. 100여 명 정도로 의원 수를 줄여 실질적인 법안 심의를 해야 한다. 국가기관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종교가 성향에 맞게 최소한의 틀은 만들어야 한다"며 "대외적으로는 재가의 교정참여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실질적이지 않다. 대종사의 재가출가 구분하지 않는다는 근본정신이 아직까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교의회 안에 법제상임위원회를 만들어 전문조직으로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 생은 여성, 전무출신이면 더 좋겠다
"지금은 여성시대다. 대종사도 여권시대가 온다고 했다. 앞으로 활동영역이 더 많아질 것이니, 다음 생에는 여성으로, 가능하면 전무출신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는 일제강점기 그 암울한 시대에 남녀평등을 외치며 여성교무를 양성한 대종사의 선견지명에 감탄해 한다. 앞으로 여성 전무출신이 종법사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는 "출가교역자 배출이 어려운 시대다. 이제 재가교도의 역할이 더 요청될 것이다. 전무출신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말고 기관은 재가교도들이 운영의 책임을 맡고, 출가는 교화에 전력했으면 좋겠다. 일선교당에서 근무해야 보람이 있는 것이다. 물론 사업도 중요하지만 교화사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교화에 전력하길 바란다.

또한 그는 "정복문제도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바꾸자는 말이 쉽게 나와서는 안 된다. 스님들의 법복도 천년이상 전통이 유지되는 것이다"며 "생활과 환경이 좀 어려워도 쉽게 흔들려서는 안된다. 사명감이 결여되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재가교도들에게도 오랜 바람을 전한다. "재가들도 너무 현상만 보지 말아야 한다. 현재 교화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거기에 마음이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원불교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 없어서 그렇다"고 신심 있는 교도가 되어주길 당부한다. 

도반과 법연이 있어 참 좋다
그는 법회 마치고 도반들과 식사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법연이 두터워지고 행복하다. 같이 밥을 먹고 법회를 통한 법식을 함께 할 때 성불제중의 서원이 자리한다. 또한 그는 이성택 전 교구장 시절 추진했던 영남권 대안학교와 영모묘원 건립이 이뤄지지 못함을 크게 아쉬워한다. 청소년과 지역교화를 위해 교단의 관심이 다시 조명되길 희망한다.

그는 평생 일터인 법무법인 서면에 출근하면 교전쓰기에 전념한다. "오늘도 스승님의 심법으로 사는가." 일구월심 그 마음이다.

■ 약력
관산 이춘일(寬山 李春日) 종사
중앙청년회 부회장, 전포교당 교도회장 부산청운회 회장, 육영사업회 부회장 
부산교구 교의회의장, 중앙교의회의장
호법수위단원, 원기100년 종사 수훈.

[2019년 8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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