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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활불 공동체
모두가 행복한 활불 공동체
  • 김수영 교도
  • 승인 2019.08.16
  • 호수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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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해야 주위를 행복하게 할 수 있어
의무적인 사명감을 수행하는 성직자 넘어서길
김수영 교도

[원불교신문=김수영 교도] '교단을 새롭게'하기 위한 이런저런 사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이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은 들지 않지만, 갓 100년을 넘긴 원불교의 현재 시점에서 발전을 위한 다각도의 시도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다만 교무들의 복장문제와 결혼 여부가 요즘 시대와 안 맞는다는 것에는 대부분 공감하여 논의하고 있지만, 이런 외형적 변화와 관련된 관심이 대종사의 밝은 법을 이 시대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과 같은, 실질적 논의를 앞서는 것 같아 아쉽다. 한창 유행했던 말인 '뭣이 중헌디?'를 생각하게 한다. 

여러 가지 논의들 가운데 요즘 가장 중심에 있는 이슈는 교무들의 정년 연장 문제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를 보다가 눈길을 끌었던, 아니 눈을 의심하게 했던 한 구절이 있다.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교무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기사 중 '지금도 하기 싫은데 더 하라는 말이냐?'란 대목이다. 

이를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교무들은 모두 특별한 서원과 신심으로 스스로 공도자의 길을 택한 분들 아니었나?"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모든 구성원이 자기 일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직자인 교무들의 이러한 생각이 활자화될 정도로 보편적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하기 싫은' 교무들은 교화현장에서도 티가 난다는 것이다. 
필자가 원불교에 입교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백설도상(白雪道上)에 행적별(行跡別)이요, 언동사물(言動事物)에 심적별(心跡別)이라'는 설법을 들은 적 있다. 하얀 눈 위의 발자국을 보면 동물인지 사람인지 누가 지나갔는지 구별이 가능하고, 말과 행동과 일 처리하고 물건 대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하니 하기 싫은 마음으로 하는 것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고 본다. 교당 생활을 통해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교무의 상담과 위로가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교무로서 열정도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보인다면 교도들은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 교도들은 교무를 가까이 대하기가 불편하고, 그럴수록 교무도 점점 더 외롭고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교무 스스로 행복하지가 않은데 교도들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필자 역시 원불교의 교법이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데 공감해 입교했지만, 성지순례 가는 버스 안에서 어린 학생이 멀미로 쏟아 놓은 토사물을 순식간에 맨손으로 봉투에 쓸어 담던 교무와, 법회가 없는 평일에도 항상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정복을 입고 출근하여 근무시간을 지키며, 사사로운 용도로는 교당 봉고차 한번을 운행하지 않던 교무를 비롯해서, 오로지 공도에 일신을 바치는 교무들에게서 받은 인간적인 감동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교당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싶다. 

교무를 향한 개인적 존경심이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 이유가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현실의 각 교당 사정을 들여다보면 교무가 교도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심유발자인 경우도 있지만, 교도들의 마음을 요란하게 하는 경계유발자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도들이 원하는 교무는 언제든지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지혜와 경륜과 포용력을 갖춘 교무이다. 처음 전무출신을 서원했을 때 꿈꾸었던 이상과 현실의 상황이 달라서 실망했더라도, 하기 싫은 마음으로 교무직에 있다는 것은 교무 자신과 교도들, 더 나아가서는 교단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지금도 하기 싫은' 이유를 상대에게서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행여 하기 싫은 티가 교도들에게 보여져서, 교도들의 입에 교무의 자질과 능력이 오르내리는 굴욕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자리에 있던지 교무도 행복하고, 그 행복한 교무를 통해서 교도들도 위안을 받는, 모두가 행복한 활불들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강남교당

[2019년 8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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