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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에서 나를 돌아보며
반환점에서 나를 돌아보며
  • 김명진 교사
  • 승인 2019.08.29
  • 호수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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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교사

[원불교신문=김명진 교사]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아이들이 돌아가고 텅 빈 교실을 정리하러 들어갔다. 혹시나 해서 열어본 사물함엔 역시나 아이들의 땀 묻은 체육복과 유도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렇게 종례시간에 방학 동안 교실에 방치하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니 집에 가져가서 깨끗하게 세탁해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이것들이 또 내 말을 안 들었네! 당장 학교로 돌아오라고 해야 하나?'하는 생각과 함께 순간 마음의 경계가 찾아옴을 느꼈다. 일단 교실 정리를 하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자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교실 정리를 하다 보니 문득 중학교 은사님이 청소 시간마다 말씀했던 '청소는 가장 신성한 노동이다'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왜 그 시절에는 그 이야기가 그렇게 듣기 싫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듣기 싫어했던 이야기를 내가 지금 우리반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은사님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은사님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피식 웃음이 저절로 나왔고, '그래 나는 지금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다, 먼지 하나하나가 내 마음의 경계라고 생각하면서 치워보자' 하며 쓸고 닦다 보니 콧방울에 땀이 포도송이처럼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게 청소를 하고 깨끗해진 교실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들이 내 말을 안 들었네' 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이 깜박하고 놓고 갔구나!' 라고 생각했으면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월에 비하면 교실도 엄청 깨끗해졌는데 말이다. 한생각 돌리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 반환점을 만난다. 야구에서 투수들도 6회를 넘어가는 반환점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야구에서 선발투수가 반환점을 넘으면 체력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패배감에 사로잡히면서 초심이 흔들리고 처음의 결심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때야 말로 위기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는 뜻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그러한 위험한 기회는 항상 오기 마련이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울퉁불퉁한 자갈밭도 건너가야하고, 때로는 질퍽한 땅을 걸어가기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처음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고수와 하수가 갈리는 것이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물론 실력과 기술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차이점은 책임감이다. 고수는 뒷마무리가 깔끔하지만 하수는 그렇지 못하다. 정말 훌륭한 선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에 전력투구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야구에서 아무리 선발투수가 잘 던져도 마무리 투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앞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반환점에 서서 지금까지의 내가 1학년 9반이라는 팀의 선발투수였다면, 나머지 기간 동안 훌륭한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도록 잠시 긴 심호흡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시작해보자 한다. 

/원광고등학교

[2019년 8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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