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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법신불의 위력이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신앙인] "법신불의 위력이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 김세진 기자
  • 승인 2019.10.08
  • 호수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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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교구 동영교당 왕수정 교도

[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대장암은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암종이다. 대장암은 국내 암 사망률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기 진단 시 완치될 확률은 90%가 넘지만 4기로 진행하면 생존율이 20%이하로 급격히 낮아지는 무서운 병이다. 이 무서운 병을 극복한 신앙인이 있다. 왕수정 (51·王秀正·동영교당) 교도가 그 주인공이다. "법신불의 위력이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왕 교도의 눈빛에서 초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5년 전 대장암 4기를 판정받았다. 하지만 다음 달 마지막 검사만 통과하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형님의 권유로 원기78년 전주교당에서 입교를 했어요. 원광보건대학교 임상병리과를 다니면서 원불교도 알고 <교전>을 보고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형님이 원불교를 다니고 있더라고요." 그는 원광대학병원에 입사하면서 추천을 받아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 이산 박정훈 교무님으로부터 '내가 추천을 해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잘 견디고 살아라'란 말씀을 평생 간직해서 제가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온 것 같아요."

왕 교도는 원광대학교병원에 입사해 교당에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한 인연을 만나 교제하던 중 상대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게 됐다. 그때의 아픔과 스트레스로 희귀성 난치병인 궤양성 대장염을 얻게 된다. 그 이후로 교당과 멀어지게 됐다.

"병원교당에 부임한 이호연 교무님과 커피 한잔의 인연으로 다시 교당을 다니게 됐어요. 커피는 정성이죠. 수행의 과정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커피를 내리려고 노력해요. 저는 하루에 3잔 이상은 절대 안 마시지만, 저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가장 좋은 커피를 내리고 주위 사람에게 커피를 공양하는 것이 저의 행복이자 보람이에요"라며 커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한다.
 

"베풀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것이 감사"

그는 2014년 대장암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더구나 그의 근무지인 병리과에서 확인해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대장 전체를 절제했다. 인공항문을 만들고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법신불 사은님께 간절히 의지하게 됐어요. 아프니깐 자연스레 조석심고와 감사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는 후유증으로 밥도 못 먹고 죽도 못 먹고 물도 못 먹는 시절이 많았다. 장폐색이 4~5번이 왔다. 1년간 휴직을 냈지만 이후 2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8개월 동안 장루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고통은 너무나 컸다. 아무 때나 변이 나오고 장루주머니에 가득 차면 매번 비워야 하는 삶을 살았고 몸무게는 70㎏에서 48㎏로 줄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이호연 교무의 병문안은 큰 힘이 됐다.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절대로 원망하지 않았던 그는 "사실 수술하기 전에 살아서 못 나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 없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머니보다 내가 먼저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의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왕 교도는 지난 9월에 열반하신 어머니에게 아들이 거의 완쾌하는 모습을 보여드려 다행스럽다고 말한다.

몇 년 전 그는 이혼의 아픔도 경험했다. "아무 마음이 없어야 이혼할 수 있더라고요. 오랫동안 궤양성 대장염으로 인해 서로에게 고통이 주어졌고 더 큰 병으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오히려 병이 나아지면서 모든 걸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항문이 살아있어 몸이 조금씩 나아졌지요."

제행무상, 덧없는 삶을 몸소 체험했다는 그는 무엇을 바라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베풀고 공양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고 말한다. "내가 내린 커피를 마셔줘 감사하고, 나와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들어줘 감사해요. 살아있는 것으로만 감사하지요."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그는 강조한다.

2년 전 동영교당을 나간 이후부터 응급실을 안 가게 된 그는 "예전 교당에 다닐 때는 잘하는 것만 하려고 했던 것을 지금은 부탁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무조건 해요." 인터뷰에 응한 것도 그 이유이다.

교당에서 교도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한 그는 "암 환자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정말 쉽지 않죠. 경험보다 우선 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는데 그분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싶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돼요." 교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교무님의 비슷한 이치라고 그는 말한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하면 잘 안 하잖아요. 우리 교도님 보면 교당 다니라고 하면 잘 안 다니거든요. 공부하라고 하면 싫어하거든요. 사실 그 말을 들을 때가 좋은 거예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것이 감사해요. 은혜 아닌 것이 없어요."

19일 어머니의 종재식을 앞두고 있는 그는 "어머니는 교당에 다니시면서 행복하셨어요. 저를 입교시킨 형이 서울 강남으로 직장을 옮겨 교당을 못 나갔는데 이제는 다시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엷게 웃음 띤 그의 얼굴에 부처님의 미소가 보인다. "병상에 있을 때 저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며 난 언제 나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항상 법신불 사은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삶을 살 거예요."

[2019년 10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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