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사회인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활동해야
종교의 차별 겪을 수도 있는 교도 없도록 기대

남성은 교도

[원불교신문=남성은 교도] "더 알리고, 더 활동하세요." 군복을 입고 출근하는 교무에게 한 말이다. 가혹한 말일지 모르지만 군복을 벗은 지금도 당부하는 말이다. 군에서는 종교적 신념을 전력 강화의 중요한 축으로 보고, 그 일을 담당할 군복을 입은 성직자를 필요로 한다고 들었다. 공직자 신분임에도 떳떳이 종교 활동을 보장받는 사람은 아마 군종장교밖에 없을 것이다. 제대 후 교단으로 돌아간 교무의 역할은 두말할 것 없이 오롯한 마음으로 대종사의 법을 전하는 것이다. 원불교 교도로서 군이든 사회든 어느 곳에 있든지 교화활동에 구속받지 않은 특권을 가진 사람이 군종장교 교무인 것이다.

반면 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인성의 한 부분을 지도하지만 타인에 대한 종교 활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공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은 공개적으로 특정 종교를 옹호하고 권유하거나 자유의사에 반해 관련 게시물을 설치하고 홍보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 종교이념에 의해 설립한 기관조차 해당 종교에 대한 활동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을 보면 법 앞에 예외가 없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예외 없는 가운데 예외인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위로부터 아래로의 종교 강요나 권유, 그로 인한 상처가 그것이다. 사회의 요구에 개인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일어나는 갈등은 내가 속한 조직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몇 해 전, 대학 동문 교사 모임 때의 일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데 모임의 새내기인 나의 신상에 대해 묻는 시간이 있었다. 몇 학번인지, 집은 어디인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결혼했다는 말에 남편에 대한 신상도 물었다. 남편의 직업은 원불교 성직자이고, 군종장교로서 군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평소 격이 없고 존경하던 선생님의 질문이라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나의 면전에 대고 "원불교 사이비 아냐?"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지만 논산훈련소 때 원불교 종교행사에 간 적이 있다는 동기 교사의 말에 당시 상황은 잘 마무리 됐다. 하지만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감정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교무와 통화하면서 결국 감정이 폭발했다. 펑펑 운 것이다.

내가 원불교 교도라는 사실에 대한 주변의 불편한 시선은 사춘기 때까지 종종 겪었던 일이라 충분히 단련됐다고 생각했는데, 직장 안에서 그것도 첫 발령지에서 겪다 보니 충격이 컸다. 한참을 울고 마음이 안정됐지만 전화기 너머 묵묵히 듣고만 있는 교무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제대로 된 교도 한 명 없는 교무에 대해서 생각했다. 평소 내색을 않는 성격이지만 교무가 짊어진 소수종교의 군종장교로서 감당하고 있는 무게는 어떨까. 가끔 스쳐지나가듯 "한명만 있어도 좋겠다"는 말을 무심코 넘겼는데 그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더 알리고, 더 활동하세요"하는 말은 부탁의 말이기도 하지만 기대의 말이기도 하다. 문밖의 사람들 중에 혹시나 종교의 이름으로 겪고 있을 차별과 그로 인한 상처를 입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교무가 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미 많은 짐을 지고 있지만 문밖의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아이일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도 한 짐을 더 얹어준다.

교당 봉불 때 교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이곳을 거친 장병들이 20년 뒤 사회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할 때, 우리 원불교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지금 이 공간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보은하겠습니다."

오늘도 현관을 나서는 교무에게 지금의 자리가 있기까지 도와주신 분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더 알리고, 더 활동하세요"라는 말을 한다. 더불어 대종사님의 가르침에 대해 "더 알아갈게요"하는 나 자신에게 한 약속도 잊지 않는다.

/정토회교당

[2019년 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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