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남북 종교교류 대북선교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현실 북한의 신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북 종교교류가 단순한 인적교류나 종교상징물의 교환과 같은 외형적 교류를 넘어서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영성의 교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북한사회와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출국 직전 서울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한국 종교 지도자 12명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형제들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며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도록 합시다"라고 강조했다. "서로를 형제로 이해하고 동행하자"는 교황의 당부는 단지 종교간 공존과 협력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남북 종교교류, 더 나아가 대북선교에서도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와 원칙이 담겨있다. 
 

2005년 남북공동행사에서 남북의 종교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만남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해소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첫걸음이다.

북한종교에 대한 이해와 다름의 인정
역사적으로 종교는 인류를 위하여 자비와 평화, 정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처럼 종교가 반목·갈등·전쟁의 직접 혹은 간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서로를 인정하는 전제인 '다름'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한 종교의 이질화 현상은 심각하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는 등 북한당국의 종교정책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북한 일반주민들의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더구나 과거 종교인들이 불순분자로 분류되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종교에 대해 언급하는 자체를 꺼린다. 

북한의 종교는 공식적으로 장충성당, 봉수교회 등에서 보는 예배 외에는 개인 혹은 소규모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처소예배를 기본적인 형태로 한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 세례를 받았거나 종교활동을 한 경험이있는 노년층이다. 북한 당국은 종교활동에 폐쇄적이며 다양한 종교교류를 추진하는데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종교교류의 국내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하면서 그동안 손상된 국가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대외관계를 개선하는데 신중하게 활용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대북 전도, 성경책 보급 등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남북 종교교류, 대북선교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현실, 북한의 신자들이 처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북 종교교류가 단순한 인적교류나 종교상징물의 교환과 같은 외형적 교류를 넘어서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종교적 영성의 교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북한사회와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70년 넘게 역사적으로 형성된 '다름'
미국 국방장관을 역임했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조정관을 맡아 북한과 협상을 했던 월리엄 페리(William J. Perry)는 과거 북미협상의 실패 요인이 "북한을 있는 그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고자 한 그의 태도는 곧 자본주의 경험이 없는 북한의 '다름'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분단 70년이 넘는 세월, 1945년 처음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38선이 그어질 때만해도 분단이 이렇게 오래 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분단 후 남과 북은 다른 체제와 이념,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여전히 언어와 정서라는 측면에서 '같음'을 공유하고 있지만 70년을 넘게 떨어져 살면서 가치관이나 생활방식 면에서는 많은 '다름'이 나타났다.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한 남쪽에는'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수용돼 '개인'과 '시장경제'가 최상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 반면 소련군이 진주한 북쪽에는 '인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수용되어 '집단주의'와 '계획경제'가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흘러 서로의 체제가 안착되고,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경험을 공유한 세대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만나도 낯설기만 하다. 더욱이 전쟁과 냉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장기간에 걸쳐 적대의식이 뿌리를 내렸고, 남과 북은 서로를 비난하는데 익숙해졌다. 

자본주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남쪽 사람들은 북녘을 방문해도 사회주의 삶에 익숙한 그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남녘을 방문한 북쪽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남과 북의 생활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이 잘못됐다는'틀림'의 시각으로 서로를 보면 대화와 교류가 어렵게 된다. 서로간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만남과 교류, 토론을 통해 접점을 마련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북한의 정치체제는 '다름'의 차원을 넘어 논란과 불가의 대상이지만, 중국의 정치체제와 비교해 보면 또 다른 차원의 '다름'이다.

남과 북 사이 '다름'의 핵심은 집단주의 생활방식이다. 개인주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남쪽 사람에게 개인의 소유와 자유가 제한된 북한의 집단주의는 참 다가서기 어려운 '다름'이다. 다만 한국전쟁이후 사회주의제도가 정착되고, 그것이 2세대에 걸쳐 내면화 된 역사를 고려한다면 일정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1950년부터 3년간 전개된 전쟁 동안 북한 전역은 폐허로 변했다. '구석기시대'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북한은 1946년에 토지개혁으로 나눠준 토지를 농업협동화를 통해'협동조합'(후에 협동농장)에 귀속시켰다. 전 사회적으로 집단주의 생활방식이 정착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1950년대에는 사회주의제도가 정착되면서 사회주의와 집단주의에 맞는 사상과 문화, 생활방식이 주민들 사이에 보급되고 식량배급제가 정착됐다. 이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의 운영구조도 집단주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주민의 일상화된 조직생활, 국가가 주민의 의식주생활을 보장하는 체계가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당연히 주민들의 생활과 사고도 변화했다. 북한은 유치원 다니는 어린 시절부터 일상생활에서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버리고 집단주의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도덕적 덕목으로 가르쳤다. 이를 통해 사회 전체를 하나의 가정으로 보고 수령-당-인민의 관계를 아버지-어머니-자녀의 관계와 같다고 하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자리를 잡았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란 구호 아래 먼저 국가와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의식이 자리 잡았다. 북한 당국의 탄압도 있었지만 이러한 집단주의적 가치관과 생활 속에서 종교는 뿌리내리기 쉽지 않았다. 오히려 주체사상이 지도사상인 동시에 종교의 영역까지도 떠맡고 있다. 
 

10만명이 참가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북한의 집단주의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행사다.

북한사회의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
종교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남북한 사이의 '다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그동안 남한 종교계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제한된 범위에서 남북 종교교류를 해왔지만, 내면적으로 '다름'을 인정하기보다는 북한의 근본적인 개혁이나 북한 체제 붕괴론이라는 틀에서 사고했다. 그러나 '시한부종말론'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북한붕괴론은 여러 대북 전문가들이 지적해왔듯이 객관적 현실이 아닌 주관적 사고틀이다. 북한체제의 종말에 모든 것을 걸고 현실을 팽개치는 태도일 뿐이다. 실제로 김정은체제 출범이후에도 북한이 붕괴하고 있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한이 하나의 실체로 인정된 상황에서 종교계도 '다름'을 수용한 전제하에서 종교교류를 준비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는 안보패러다임이 평화패러다임으로 바뀌는 전환기에 와 있다. 종교계 안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고 오히려 종교계가 앞장서 평화 패러다임을 교육하고 실천해야 할 시점이다. 

사도 바울은 '심판과 해방의 날'이 한밤의 도둑처럼 느닷없이 닥쳐 올 것이기에 인내하면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체제 붕괴나 통일은 도둑 같이 오지 않는다. 먼저 종교계가 장기적으로 남과 북의 '다름'을 인내하고 해소하며,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진정한 남북 종교교류가 가능해 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북한 내의 종교지형은 북한사회의 전반적 변화의 속도와 범위, 수준에 따라 변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점진적으로 남북 간에 공유할 수 있는 종교와 문화를 서로 교류하여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상호간의 깊은 이해와 신뢰가 이루어 질 때, 새로운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개척하는 데 종교계가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현재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19년 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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