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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스승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신앙인] 스승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 이은전 기자
  • 승인 2020.02.11
  • 호수 19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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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신 대구교당 교도

행복대학·교정교화에 쏟은 정성, 삶의 중심에 자리잡은 스승
타종 소리에 맞춰 기도하는 영산 법인기도는 삶의 활력소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대종사님은 스승이 제자를 만날 때, 제자가 독실한 신심이 있으면 그 법이 건네고 공을 이룰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신타원 이안신(61·信陀圓 李安信·대구교당) 교도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한 스승은 이명수 교무다. 그는 평생을 스승님께 누가 되지 않게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다. 30년 전 꽃다운 나이에 남편 열반으로 황망할 때 기적처럼 나타나 그를 원불교에 안착시켜 준 연원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원불교인이자 참 스승이라 교무님 삶을 그대로 따르고 싶어요. 세세생생 교무님 치맛자락 붙들고 다닐 겁니다. 교무님이 ‘안신이는 항상 그 자리에서 잘 살아줘 고맙다’라고 하시는 말씀 들을 때면 뿌듯합니다.”

그의 나이 31살 때, 급성 위암으로 건장하던 남편이 갑자기 열반했다. 동생의 건너 건너 아는 사람 소개로 당시 대구교당 이명수 교무가 영안실로 찾아왔다. 그의 삶으로 원불교가 처음 들어오던 날이었다. 그렇게 3일간 장례식장에서 독경을 마치고 대구교당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들어섰다. 교무님이 49재 하자고 해서 했고, 또 너무 젊은 나이에 열반했다고 100재를 더 하자고 해서 그대로 따랐다. 세상의 종교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밖에 없는 줄 알고 있던 그는 주위에서 사이비라고 가지 말라는 원불교를 무엇에 홀린 듯이 자기도 모르게 교무님 시키는 대로 다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처음으로 만난 법문이 천도법문이었고 49재, 100재를 하며 귀가 따갑도록 들은 것도 천도법문이었다. 

“100재 마치고 나니, ‘참 달은 허공에 홀로 있건마는 그 그림자 달은 일천강에 비치는 것과 같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콱 박히더라구요. 지금까지 제 인생법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비춰진 모습은 다 다르지만 오롯한 나는 하나로 여기 있으니 흔들릴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초반에 교당 적응이 쉽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어 법회 마치면 어색하게 앉아있다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따랐던 이명수 교무마저 이임하면서 신입교도였던 그는 교당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오락가락 다녔지만 어느덧 10년쯤 지나니 제가 교당의 주인이 돼있더군요. 남편이 남긴 재산을 시댁에 빼앗겨 절망할 때는 도반들이 옆에 있더라구요. 그 힘으로 제가 살아났어요. 대종사님은 흔들리지 말라고 이 회상에 제 이름을 꾹꾹 눌러쓰셨나 봅니다.”

오래 전 백중 천도재 때 일이 있어 불참했더니 다음 날, ‘행사에 나를 초대한 사람이 안왔다고 생각해봐라. 영가를 초대해놓고 주인이 안오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교무님의 설법 말씀 이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기도에 빠지지 않았다. 

“박원임 교무님 때문에 제 기도 생활에 체가 잡혔습니다. 뭐든 스승님 말씀은 틀린 적이 없더라구요.”

요즘은 8명의 도반이 영산 법인기도팀을 만들어 해마다 법인절에 1박2일 영산 성지순례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함께하는 도반이 있어 공부도 삶도 즐겁다.

“선진님 마음이 다가와 기도봉 오를 때면 숙연해집니다. 타종 소리에 맞춰 기도하면 일심이 절로 돼 영산 법인기도는 제 삶의 활력소입니다.”

대구경북교구의 핵심 교화사업 중 어르신 행복대학, 대구교당 교정교화, 읍내정보통신학교 청소년교화, 교구원음합창단 등은 모두 그의 손이 깊숙이 담긴 사업들이다. 그 중 일반인을 대상으로 원불교를 널리 알려온 행복대학은 첫 출범부터 그가 총무를 맡아 업무를 총괄하며 특유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어르신들의 인화까지 책임지고 있다. 

“총부 순례에서 독실한 기독교 어르신이 경건하게 헌배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행복대학에서 저는 보은봉공의 복을 받았어요.” 

그가 교당 일에 가장 열심이었을 때가 남궁성 대구경북교구장 시절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의복이 아닌 그 속에 있는 사람을 보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몸으로 배웠다. 

그는 소년교정교화시설인 읍내정보통신학교 법회를 혼자서 6년 동안 이끌어오면서 재소자 학생들에게 한 번도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그걸 왜 물어보겠습니까. 늘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대하고 싶더라구요. 비록 죄는 지었으나 사회에 나가면 반드시 새 사람으로 태어나자고 당부했어요.”

그는 새 교무가 부임해오면 항상 자신을 어디든 갖다 쓰라고 소개한다. 손길 닿는 곳, 발길 머무는 곳, 음성이 메아리치는 곳 어디든 그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간다는 것이 그의 서원이다. 그에게 교당 일에 파묻혀 대상포진으로 입원할 때까지 억척같이 해 왔던 이유를 물었다. 

“내 기쁨이니까요. 도반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면, 그 속에 제가 있으면 그렇게 좋습니다. 제 손을 거쳐 깨끗해진 도량을 보면 뿌듯합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동력이 무엇일까? 

“저의 중심은 빛나는 스승님들입니다. 저는 스승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2020년 2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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