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이며 창의적인 대한민국 사이버외교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에서 전범의 상징 욱일기 응원이 펼쳐진다면? ‘위안부’와 강제노역들의 아픔이 여전히 생생한 2020년, 지금으로서는 이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된다. 이 가운데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인 청원사이트 ‘체인지’에 이를 막자는 글이 올라와 동의가 한창이다. 방사능의 위협으로부터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일본의 태도도 문제인데, 성화 대신 방사성물질을 운반하는 패러디 포스터가 등장해 세계가 공감했다. 일본이 정부와 장관까지 내세워 우려를 전할 정도로 반향이 크다. 

이렇게, 우리는 영민하고 재치있게 지켜지고 있다. 청원으로 실상을 알리는 한편 패러디 포스터로 위험을 상기시킨 NGO, 바로 대한민국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다. 스마트폰으로 이 살벌한 외교전쟁의 선봉에 서온 반크.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게 외교관이자 홍보대사 명찰을 달아준 이들. 가장 개인적이며 창의적인 대한민국의 희망, 반크는 박기태 단장의 작은 도전에서 시작됐다. 

성화 대신 방사성 물질을 운반하는 패러디포스터.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했던 거구나’
1999년, 박기태 단장은 외국인 친구의 말에 무척놀랐다. ‘일본의 점령은 타당한 것이며 한국은 이를 환영했다’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현실은 참담했다. 세계 박물관이나 도서관, 서적에 그리 실린 것은 물론, 지도의 동해가 ‘일본해’로, 독도는 ‘다케시마’로 표기돼 있었다.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는 책이지 싶어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에 메일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며칠만에 답변도 오고 수정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했던 거구나. 도전하면 되는구나 라고요.”     

그 후 20년, 반크가 고치고 지켜낸 ‘동해’는 전 세계 표기 50%에 이른다. 반크의 역사는 곧 우리 것을 지키는 노력들이었다. 동해와 독도로 시작한 관심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노역으로 옮겨갔고, 독립운동가와 독립유적지로 넓어졌다. 표기나 기록이 잘 못 돼 있으면 공유해 해결책을 논의했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메일이나 전화, 청원사이트 등 뭐든 이용했다. 반크는 가장 명민한 나라사랑을 스마트폰을 통해 실현했다.   

사무실 하나에 직원 다섯명 뿐인 반크. 큰 예산이나 규모,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섰다. 시대를 읽는 깨어있는 소수와 함께하는 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총칼이 아닌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반크의 주인 역시 사이버외교관, 월드체인저, 반크동아리 등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다. 세계 곳곳의 오류를 잡아내고 대한민국을 바로 알리는 장본인으로, 반크의 역사는 이들의 눈과 손으로 만들어왔다. 초등학생이며 중고등학생들의 지칠줄 모르는 도전은 반크에게 책임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반크 직원들은 바로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홍보물이 100종류고, 동영상은 500개가 넘어요. 다른 나라가 보고싶은 대로 보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정신, 문화를 바로 알릴 수 있는 콘텐츠들입니다.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도 다 기록돼 누구든 활용할 수 있어요.”

직원들의 말처럼 뜻이 있을 때 이를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 반크의 역할이다. 그동안의 많은 결실 중 반크가 직접 꼽은 성과는 정부나 외교관이 아닌, 평범한 10~20대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반크를 거쳐간 청소년들이 20~30대 청년이 된 현재, 더 큰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되고 있다.
 

반크의 주인은 외교관 및 홍보대사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로, 세계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독립선언서 번역으로 평화정신 알려
20년을 맞는 반크는 더 깊고 넓어지고 있다. 최근 부활하는 일본 군국주의 및 중국·미국의 패권주의를 막아내는 한편, 한국을 넘어 아시아 알리기에 나섰다. 이번 코로나19로 더욱 드러난 아시아 혐오에 대한 저항과 아세안 10개 국가들을 알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브루나이·베트남·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의 아름다운 유산을 담은 지도와 엽서, 동영상과 카드뉴스를 제작, 곳곳에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구는 물론 우리 자신들도 잘 몰랐던 아시아의 힘과 저력을 제대로 알리고 있다.

“점령당하고 지원받은 나라들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힘을 키운 곳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힘을 작고 억울한 나라들을 위해 쓰는 것이 도리겠지요.” 억울하고 원통했으나 이를 되갚기보다는 더 큰 평화를 지향했던 대한민국. 지난해 반크가 시작한 3·1독립선언서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한 벨기에 인턴 ‘켄 드 포터’는 이런 감상을 남겼다. “독립선언서는 복수보다는 자유의 희망을 새로 세우는 데 중점을 두며, 인류애에 기초해 동아시아와 세계 사람들과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세계가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대 고민·실천하는 원불교의 힘
동해와 독도를 바로 알리는 데서 시작해 이제는 아시아를 보듬고 세계평화를 꿈꾸는 반크. 반크가 그토록 되찾고자 하는 잃어버린 시간, 일제강점기 속에서 움튼 원불교에도 악수를 건넨다. “가장 힘들 때 나라를 구하고 국민들을 깨우기 위해 원불교가 열린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때처럼 지금도 일본과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의 군국·패권주의로 또다른 구한말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힘이 바로 원불교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앞에는 봉준호 감독이나 BTS, 싸이와 같은 문화한류와 세계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이렇게 크고 높아진 수준과 힘을 우리는 어떻게 써야할까.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다시는 당하지 않게 대비하고, 당한 것은 용서하되 복수를 넘어 연대하는 반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비춘다. 누구나 주인되어 이뤄내는 사이버외교의 결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NGO 반크는 21세기의 독립운동이자 정신한류를 이끌고 있다. 
 

[2020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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