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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불의 현장-서울보화당한의원] 제생의세의 개척자, 한방 50년 역사를 이끌다
[활불의 현장-서울보화당한의원] 제생의세의 개척자, 한방 50년 역사를 이끌다
  • 김세진 기자
  • 승인 2020.03.18
  • 호수 19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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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으로 불리는 손흥도 원장이 진맥과 상담을 통해 환자의 몸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신의 손’으로 불리는 손흥도 원장이 진맥과 상담을 통해 환자의 몸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원불교의 정체성과 지향정신을 담고있는 성가 2장 ‘교가’에서는 “제생의세 목적하는 형제들 고해중생 반야선에 건져서”라고 했다. 일체생령을 도탄으로부터 건지고 병든 세상을 치료한다는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원불교 존재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단은 교화·교육·자선을 3대 방향으로 정하고 그 사업의 뒷받침으로 여러 가지 산업기관을 설립했다. 그중 모범적인 산업도량으로서 교단 경제에 활력을 준 곳이 바로 보화당이다. 이번 호에서는 올해 개원 50년을 맞은 서울보화당한의원(이하 서울보화당)을 찾았다.


서울보화당의 설립 
서울보화당은 원기55년(1970) 6월 30일 종로5가에서 개원했다. 서울보화당 50년사(6월 발간예정)를 집필하고 있는 박달식 원로교무에게 서울보화당의 설립 동기를 물었다. 박 원로교무는 설립동기를 세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원불교의 서울진출 교두보 역할이다. 서울보화당 설립은 개교반백년성업이 시작된 원기47년(1963)부터 준비된 사업이다. 4·50년 결실로 원불교가 개교된 이 땅에서 인증을 받을 것이라는 대종사 예시의 실현을 위해 수도 서울에 교단 이념을 펼칠 기관을 설립하려 계획한 것이다. 둘째는 호남권에서 인정을 받는 이리보화당이 보화당 전국화를 위해 한국 경제의 중심인 서울에 설립을 준비한 것이다. 셋째는 구타원 이공주 종사가 대종사 유시를 받들어 여자수도원을 설립하고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수익기관으로서 설립된 것이다.
 

원기55년 개원식 때 첩약을 짓는 모습.
원기55년 개원식 때 첩약을 짓는 모습.

산업기관의 정신적 효시
원기55년(1970) 1월 3일 서울보화당 설립이 결의되자 『원불교신문』은 서울보화당 발족이 얼마나 교단사적 의미인지 목적과 사업방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문에서는 ▷교단의 단계적 재정통일 ▷교단 유지 기반의 확립 ▷총부 중앙 진출의 발판 ▷교역자 노후 요양사업 및 정토회 후원사업 등의 의미를 밝혔다. 

대산종사는 서울보화당 발족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자가 독점과 폭리로 일반 대중을 수탈하기 쉽다. 따라서 일부 소수인의 이익추구가 아니라 전체 대중을 위한 건전한 상도덕이 확립되어야겠고, 이로 인하여 우리 교단은 설교가 아닌 기업으로서도 인류에 봉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상업하며 수도하는 인간성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볼 때 서울보화당은 우리 교단의 발전과 직결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거교적인 관심과 협력을 기대하는 것이다”라고 법문했다. 개업식에서는 “①우리가 먼저 상의 도를 개척하자. ②자리이타의 법을 써야 인류는 공생한다. ③상부상조하여야 살아난다. ④시중에서 활선을 하며 세상을 돕는 활불이 되자”라며 ‘상(商)의 도(道)’란 법문을 내렸다. 이러한 ‘상의 도’에 바탕해 서울보화당의 역사는 시작됐고, 오늘날 각 산업기관의 정신적 효시가 되고 있다.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설
서울보화당 50년 역사 중 40년을 함께한 이가 있다. 그는 이곳에 살아있는 역사라 불리고 있다.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수식어로는 ‘살아있는 전설’, ‘신의 손’을 들 수 있을 듯하다. 서울보화당의 자랑이자 원불교의 자랑인 손흥도 교무가 그 주인공이다. 그에게 한의사가 된 연유를 물었다. 손 교무는 “처음부터 한의사가 되려던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교화가 꿈이었다. 입학할 때 서울보화당이 생겼는데 당시 서울보화당 사장으로 근무하던 이백철 원로교무의 추천과 지도를 받던 중산 정광훈 대봉도가 이 길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교학과 2학년 때 신도안 삼동원에서 대산종사로부터 ‘너희들은 개척자(pioneer)가 돼야 한다’라는 말씀에 그때 마음을 정했다. 교학과 2학년을 마치고 한의대로 편입 했다. 기숙사는 교학과에서 똑같이 생활했다. 돌이켜 보면 지금 내 힘이 그때 얻어진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학교를 마치고 진료를 보던 그에게 서울보화당 박원근 사장의 지원과 당시 한의과 대학 보직교수들의 요청에 원광대학교 총장이었던 문산 김정용 종사는 산업기관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교수직과 보화당 일을 병행하게 해 학교와 교단의 두 몫을 책임지게 했다. 손 교무는 주 3일은 학교에서 오롯하게 근무하고 월요일, 금요일, 토요일은 서울보화당에서 오롯하게 근무했다. 결론적으로는 연구와 강의를 통해 이론 실력 바탕으로 임상이 더해져 그야말로 한의사로서 완전체가 된 것이다. 교화가 꿈이었던 그는 해외에서도 교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레겐스부르크, 모스크바, 캄보디아 바탐방,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 인도 라다크와 뱅갈로르, 몽골 울란바타르, 라오스 씨엥쿠앙 등에서 의료봉사를 펼쳤으며 프랑스 리옹 한의과대학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의학 특강을 했다.
 

이백철 초대사장 (좌), 이공주 초대회장 (우)
이백철 초대사장 (좌), 이공주 초대회장 (우)

원광대 한의과대학장도 역임한 그는 서울보화당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해했다. 71세인 그에게 건강의 비결을 물었다. 손 교무는 “건강하다는 것은 숨을 잘 쉬는가. 밥을 잘 먹는가. 마음이 편안한가. 세 가지다. 현대사회에서 긴장 없이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 지나친 욕심, 심한 스트레스 등이 계속되면 병이 된다. 이완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운동도 좋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도 좋다. 절대 감사하면 심신이 건강해진다. 가장 높은 수준이 명상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와 지구촌을 긴장하게 만든 코로나19에 대해서 손 교무는 “코로나19는 발열과 마른기침 인후통이 주증상이라 한다. 곧 폐가 건조해서 가래가 없이 마른기침하다가 폐 깊숙이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폐렴을 일으키거나 심장에 충격을 준다고 한다. 이것은 온병(溫病)의 범주에 속하는데 발열과 마른기침이라는 증상으로 보면 체액 손실임을 알 수 있기에 한의학적으로 인삼 부자 등 양기를 북돋우는 약보다는 생지황이나 맥문동으로 보음(補陰)하거나 자음(滋陰)하는 약을 이용해서 폐를 촉촉하게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현대의학의 음압치료 보조 방법으로 병용해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의학에서는 증상에 따른 몸의 불균형을 조절해주면 몸의 정기가 스스로 회복된다고 하지만 노년층이나 기저질환 환자의 경우 진음이 부족해 증상이 쉽게 악화하는 것으로 보여 발열이나 기침이 나면 바로 보건소 등의 선별진료소를 찾아가야 한다”라고 전했다.


50년 역사,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서울보화당 박성운 교무는 “한의업계 불황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경제적 기여도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원장님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새로운 바람이 불어 힘을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역사란 순리적인 역사만 있을 수 없다. 순환 반복하면서 발전해 간다. 서울보화당은 산업 교화도량으로서 50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꿈만 같은 보화당 증축과 센터 건립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함께하면 가능할 것이다. 주어진 여건에서 포기하지 않고 진리·인과적으로 도전하는 서울보화당 활불의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2020년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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