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원 기자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스승님과의 문답 시간. 의지, 욕구, 바람, 욕망하는 것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스승에게 숨김없이 고백한다. 내게 있어 ‘나’라는 상(我相)은 일정 정도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자력으로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자 하는 자존감이다. 

제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상을 추구하며 자아를 확인하는 중생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깊게 경청하며 헤아려주던 스승. 그에게서 들은 ‘절대 시간’이 마음을 세게 두드렸다. 

‘우주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측정되는 스칼라양인 시간.’ 절대 시간의 사전적 의미지만, 스승에게서 느껴진 절대 시간은 ‘공들여 투자해야 하는 절대적 시간’으로 내게 새겨졌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숨 같은 시간’으로 체감돼 마음 파장이 강했다. 

스승의 절대 시간은 아침 수행 정진 시간이다. 새벽 좌선과 몸 불공을 위한 단련시간을 스승은 어떠한 경우에도 ‘목숨 같은 시간’으로 여긴다. 출가자의 하루 시작과 끝은 수행시간이다. 공부인의 시작도 끝도 수행시간이다. 스승과의 문답 감정은 이를 무섭게 깨닫게 한다.

문답감정 이후 나의 하루가 달라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심고와 법문 묵상은 아침의 절대 시간이다. 몸 불공을 위한 심신 단련은 아침 저녁 두 배의 공을 들이는 절대 시간이다. 잠들기 전, 법문 듣기의 절대 시간도 하루 일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하루 한 번, 불을 끄고 마음을 켜는 천지보은 15분 기도는 대각개교의 달인 4월 한 달의 절대 시간으로 하루 일상에 자리할 것이다. 

고백하건대, 내게 절대 시간이란 수행 정진 시간만은 아니다. 지금은 준비 중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좋은 책을 선정해 도반과 함께 읽어가는 것도 절대 시간이 될 것이다. 집밥으로 한 끼 식사를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의 절대 시간이다. 

12일까지 휴회했던 대중 법회가 또 다시 휴회 연장될 것 같다. “도반들이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함께 했던 일상이 모두 소중합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 생각됩니다. 교당에 너무도 가고 싶습니다. 법회의 소중함, 법연의 귀중함이 크게 느껴집니다.” 전북교구에서 휴회 동안 교구장과 지구장이 준비해 전하고 있는 설교 동영상에서 어느 교도가 전해온 마음이다. 

언제 진정될지 모를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기, 나를 순숙 시킬 절대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놓치고 살았던 나와 우리를 돌아보고, 힘들어하는 인연을 봐주는, 이기주의 원망생활을 주의하고,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돌봐주기’의 절대 시간도 빼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가족, 법연의 도반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절대 시간도 소중하다. 나 또한 긴 업무 공백, 교당 도반들에게 큰 힘과 위로를 얻었으니 보은의 절대 시간도 잊지 않을 것이다.

[2020년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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