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같은 고위험 감염병이 유행할 때 종교집회는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대부분의 종교 단체들이 집회를 유예하고 있는 가운데 몇몇 단체들의 집회 강행이 눈길을 끈다. 종교집회를 금지한 행정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법 기본권을 방패  삼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비슷한 해외 사례도 보도되고 있다. 감염 예방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답은 간단하지만 종교적 본질에 비추어 보자면 답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인간 구원의 문제, 생사관과 같은 종교적 주제에 뿌리를 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구원의 장소로 여기는 곳에서 안식을 구할 때 그 믿음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간섭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믿음의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의 방역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우리 교단도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이번 사태가 원불교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원불교의 구원은 교당이란 물리적 공간에 있지 않다. 엄밀히 따져보면 교당은 신앙과 수행의 촉진을 위한 방편적 공간일 뿐 그 자체로 위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물로서 소태산이 신앙의 대상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법신불을 일원상으로 상징해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우주만유 전체를 사은으로 범주화해서 신앙의 강령으로 삼은 뜻을 잊지 말자.

소태산 대종사는 ‘나는 몇 만 명 제자만이 나의 사람이 아니요, 몇 만 평 시설만이 나의 도량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이 다 나의 사람이요, 온 세계 시설이 다 나의 도량’이라고 말한다. 처처불상(處處佛像)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無時禪)무처선(無處禪) 동정일여(動靜一如)영육쌍전(靈肉雙全) 불법시생활(佛法是生活)생활시불법(生活是佛法)이란 교리표어에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초월하고 생활과 종교의 경계를 무너뜨려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나아가고자 한 소태산 사상의 핵심이 들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원불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기존 종교의 틀에 가두어 놓았는지 모른다. 의도치 않게 ‘자가격리’된 이 기간에 우리의 신앙과 수행이 소태산이 의도한 것이었는지 돌아보고 교단 운영을 재점검해야 한다.

최근 중앙법위사정위원회에서는 법위승급시 상시훈련과 교화단 활동을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생활종교로서 원불교의 정체성을 되찾는 중요한 결정이다. 코로나19 사태와는 무관한 결정이지만 이 사태가 촉발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적절한 교법적 응답이기도 하다. 법위사정에 한하지 않고 원불교의 정체성을 제대로 살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는 늘 반복된다. 

우리가 할 일은 청정한 마음으로 청정 법신불을 신앙하며 내 가정과 직장을 청정하게 만드는 삶이다. 가정과 일터를 청정도량으로 삼는 큰 교화로 나아가자.

[2020년 4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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