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2020년 현존 인물 중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지도자로 티베트 영적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선정됐다. 영국 ‘왓킨스 북(Watkins Book)’은 『마인드 바디 스피릿 매거진(Mind Body Spirit Magazine)』 봄호에서 최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100인 목록을 공개했다.

달라이라마는 “부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부처님의 지혜에 의해서 포악한 사람은 성인으로, 사악한 사람은 신성한 사람으로, 살인자는 평화의 조정자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의 잠재력은 교육이 지닌 기적적인 힘이다”라고 말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티벳불교의 저력은 승가교육제도에 있다는 말이 있다. 티베트 전통에서는 교학을 수행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데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를 수행의 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번 호는 ‘예비교역자 교육혁신’ 두 번째 시리즈로 이웃종교(티벳불교) 교육제도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이 글은 인도 캄빠가르 티벳 사원의 도제 텐진 스님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인도불교의 마지막 계승자
티베트는 7세기 고대 토번 왕국을 최초로 통일한 송첸감포 왕에 의해 처음 불교가 전해졌다. 그리고 티송데첸 왕이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교가 티베트에 정착하게 됐다. 불교가 티베트에 정식으로 도입되기 이전에는 당나라의 영향으로 인해 비공식적으로 중국의 선(禪)불교가 곳곳에 전파돼 있었다. 선불교는 인도불교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티송데첸 왕은 인도불교와 중국의 선불교 사이에 여러 이견이 있음을 확인했고, 인도의 대표논사와 중국의 대표논사를 초청해 논쟁의 장을 마련하게 된다. 중국대표로는 북선종 계열의 승려인 마하연(摩詞衍) 화상(和尙)이, 인도대표로는 날란다(Nalanda)대학의 까말라실라(Kamalashila, 蓮華戒) 대사가 초청되어 삼예(bSam yas) 사원에서 약 3여 년 에 걸친 논쟁 끝에 인도불교의 승리로 티베트는 인도불교를 국교로서 수용하게 됐다.

티베트는 인도와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법맥을 이어받았고 티벳어는 그 창제의 목적부터 불교를 위한 산스크리트어 경전의 역경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산스크리트 원전이 소실된 경우 티베트 경전을 통해 원전을 대체 연구할 정도로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또한 티베트는 가장 늦게 인도불교가 전파된 국가이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되는 최후까지 가르침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현재 다른 언어 번역본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경전들이 존재한다.

티베트는 당시 인도불교 교학과 수행의 중심이었던 날란다대학을 중심으로 한 고승 대덕들에게서 수많은 가르침을 전수받았고, 설일체유부의 계율과 아비달마,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 계열의 바라밀 전통, 중관과 유식의 제 논서, 불교논리학(因明學), 밀교 등 인도불교의 모든 전통들이 그대로 티베트에 전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번역작업 덕분에 티벳불교는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현교, 대승밀교를 포괄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학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무슬림의 침략 이후 인도 땅에 불법이 사라지면서 티벳불교는 인도불교의 마지막 계승자로 평가받고 있다. 티벳불교 스스로도 인도 최대 불교대학이었던 날란다(Nalanda) 대학의 학통(學統)을 계승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인도 보드가야에서 달라이라마 법문을 듣고 있는 서양인 승려.

부처님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돼
티벳불교의 학제(學制)는 이러한 역사 속에 날란다대학의 인도불교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계승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불교학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강원(講院)에서는 5대경(五大經)을 단계에 맞게 배우는데 5대경이라 함은 ①인명학(因明學), ②반야학(般若學), ③중관학(中觀學), ④율학(律學), ⑤구사론(俱舍論)을 일컫는다.

티벳불교는 가장 오래된 종파인 닝마파를 비롯해서 사꺄파, 까규파, 겔룩파 등 크게 4개의 종파로 분류한다. 4개 종파 모두 5대경을 배우며 견해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이 동일한 내용을 배운다. 티벳불교는 특정한 종파에만 국한되어 법이 계승된 것이 아니고, 각기 인도불교의 계승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종파 간의 법의 교류도 활발하다. 티베트에서 종파의 구분은 해당 종파의 탄생한 시기와 지역, 밀교의 사자전승(師子傳承)의 특성 때문이지 견해와 철학의 차이로 인한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원에서 불교를 배울 때 늘 인용하는 부처님 말씀이 있다. “너희들에게 내가 설명하는 법을 수행함에 있어서 예를 들면, 금세공이 금을 만들 때 우선 불에 태워서 바깥의 변색에 따라 결점이 있는지, 그리고 나서 금을 잘라냄에 따라 안의 불순물의 유무와 이후에 다시 또 돌에 문지르는 것을 통해, 찾기 어려운 미세한 불순물의 유무를 태우고, 자르고, 문지르는 3가지의 조사를 잘하여 결점이 없는지 보면서 최상의 금으로 인정하듯이, 나의 법 또한 가르침과 지혜에 의해 허물과 공덕 그 무엇이 있든지 세밀히 살펴서 수행하는 것 말고는 나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이유로 내가 말한 전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수행을 실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강원에서는 불교를 배울 때는 경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길들여가는 과정
이 바탕으로 5대경을 배울 때 이러한 방식으로 공부한다. ①경을 보지 않고 외우는 연습을 자주 한다. ②뜻을 알기 위해 스승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③경전에 대한 여러 주석서를 자주 본다. ④논쟁을 통해 경의 내용을 깊이 새긴다. 강원에서 배우는 경과 논서는 논리학 기반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경전의 암송부터 시작해 논리적인 사유에 의한 논쟁까지 하나의 실로 꿰어지는 방식으로 공부하게 된다. 마치 수학을 공부하듯이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것은 성숙하지 못하고 모순된 우리 중생의 사유체계를 법의 사유체계로 바꾸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내면의 사유가 깊어짐과 동시에 신구의로 행하는 성숙하지 못한 사유와 행위를 자각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난 일본은 생각만 해도 싫어. 일본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A가 있다고 하자. A는 일본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싫다고 한다면, 이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인은 일본인에 포함되지만 일본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인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것이 일본인의 특성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일본에서 민주당 정권에서 최초로 총리를 했던 하토야마 전 총리는 여러 번 일제 식민지배 역사를 피해자들 앞에서 사죄해왔으며, 세계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 같은 사람이 있는 이상 일본인은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특정한 일본인은 싫어할 수 있을지언정 일본인 전체를 싫어할 수는 없다. 또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점이 싫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하지 않는 모든 대상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모순된 사유를 논리적으로 법에 맞는 사유로 길들여가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닦아갈 수 있다.


문사수(聞思修) 통해 경전을 공부
티베트 강원에서는 현교(顯敎)에 대해 종파에 따라 10년에서 20년 정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현교의 수학을 마친 다음 밀교(密敎) 공부와 수행에 들어가는데 기간 없이 평생 공부를 한다. 또한 티벳불교는 공부와 수행을 따로 두지 않고 배움 그 자체를 수행으로 생각하고, 문사수(聞思修)를 통해 경전을 공부한다. 문(聞), 듣고 배움으로써 경전의 뜻을 타력(他力)에 의지해 대략 이해한다. 사(思), 깊게 사유함으로써 경전의 뜻을 자력(自力)으로 확실하게 이해하고 확신한다. 수(修), 이해된 뜻을 닦음으로써 경전의 뜻을 깊게 마음에 익히게 만든다. 티베트 강원의 스승들은, 문(聞), 배움이 부족하면 문혜(聞慧)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문혜(聞慧)가 부족하면 사(思), 관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사(思)가 부족하면 사혜(思慧)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문(聞), 문혜(聞慧), 사(思), 사혜(思慧)의 바탕이 없으면 수(修) 즉 도(道) 닦는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무엇보다 제일 먼저 경전을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자승과 노승

교학 과정에서 이미 수행의 반은 완성
티베트 강원에서의 교육과정을 간략하게 보자면 다음과 같다. 강원에 입학하기 전에 먼저 예비과정에 들어간다. 먼저 출가 서원을 하며 삭발과 승복을 입고 승려로서의 사원에 들어간다. 한국 불교의 행자나 원불교의 간사 과정과 비슷하며, 이때 승가의 규율과 의식, 글과 기도문 암송 등을 배우고, 사원 곳곳에서 운력을 하면서 사원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수년간의 예비과정을 거치고 나서 강원 수업의 첫 단계인 뒤다(기초논리학)에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강원에서 학습하는 기간은 종파에 따라서 짧게는 약 9년, 길게는 약 20년 정도의 세월동안 5대경을 배운다. 매년 시험을 치러 다음 학년으로 진급을 하며 시험은 크게 디규(필기시험)와 쬐규(대론시험) 2가지 형식으로 본다. 승려들이 이 모든 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학업에 흥미가 적은 승려들의 경우 학업을 중단하고 사찰의 여러 가지 행정적인 지원이나 필요한 소임을 맡기도 한다.

겔룩파의 경우 불교철학박사에 해당되는 학위를 게셰(ge she)라고 하며, 나머지 종파에서는 불교 강백(講伯)에 해당하는 켄포(khen po)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게셰나 켄포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수학기간을 마친 후 최종 시험을 통과해 추가적으로 3~5년이라는 시간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론을 통해 복습과 되새김의 시간을 거치게 된다. 켄포 자격을 얻기 위해선 약 13년, 게셰 학위를 얻기 위해선 약 23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철학박사를 취득하게 되면 겔룩파의 경우 규뙤사원이나 규메사원으로 대표되는 밀교학당에 들어가 1년간 원만차제 단계의 행자로서 밀교 교학 전체를 배우게 된다. 밀교 공부와 수행은 평생 배우고 닦는다는 개념이고, 밀교 수행은 스승의 허락과 자격을 얻어야만 행할 수 있으므로, 견고한 현교의 철학적 토대가 갖춰진 준비된 사람만이 밀교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
교학이 갖춰지지 않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것은 “마치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바위산을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한다. 수행자는 산의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정확한 지도를 갖고 있어야 하며,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철저한 교학의 토대가 필요한 이유이며, 교학을 철저하게 배우고 닦는 과정에서 이미 수행의 반은 완성된다.


금생에도 다시 배우고 닦아야
티벳불교에서 법석에서 설법을 하는 스승들은 이러한 수학과정을 통해 법의 자격을 갖춘 이들이다. 환생한 고승에 해당하는 ‘린포체(고귀한 보석같은 분)’라는 호칭을 지닌 승려도 모든 과정을 배우고 닦는다. 달라이라마 또한 어릴 적부터 5대경을 모두 수학했고 게셰학위를 취득한 철학박사이다. 전생에 훌륭하게 닦았고 선근을 갖고 태어난 이라 할지라도 이생에 다시 배우고 닦지 않으면 안된다.

스승의 자격은 학식과 덕행이 모두 갖춰지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A 스승에게 설법을 들어도, B 스승에게 설법을 들어도, C 스승에게 설법을 들어도, 자신만의 해석이 아닌 서로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같은 법, 오염되지 않고 훼손되지 않은 전승된 법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티베트가 오랫동안 논리학 바탕의 인도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유산이며 현재 티벳불교가 세계 종교의 흐름 속에 정신적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티베트의 선지식들이 불교를 이해하는 깊은 안목과 넓은 식견은 전 세계에서 불교를 연구하는 석학들, 다양한 전통에서 정신세계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비록 나라는 빼앗긴 망명의 티벳불교이지만 세계 불교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종교가 가진 구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북인도 히말라야에 위치한 캄빠가르(Khampagar) 사원.

[2020년 4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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