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전 전남 영광의 26세 구도자가 진리를 크게 깨달았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원불교 회상이 열리고 무명의 구도자는 비로소 원각성존 소태산 여래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깨달음과 동시에 스스로 창생 구원의 책무를 짊어졌으니, 대각개교절은 그 뜻을 기리며 각자의 깨달음과 책무를 되돌아보는 날이라 하겠다.

인간은 깨달음의 존재다. 깨달음을 통해서 극적인 자기 변화를 이루어낸다. 깨달음을 통해서 부처로 거듭나고 진급할 수 있다. 그렇게 믿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이고, 그 발걸음을 쉬지 않는 것이 수행이다. 깨달음 없이는 개인의 성장도 없고 세상의 진보도 불가능하다. 인류의 역사는 깨달은 자들의 헌신에 빚지고 있다. 그들은 운명처럼 다가온 사명을 다하기 위해 무아봉공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부처의 깨달음에 비할 순 없겠지만 정법에 귀의한 우리 모두는 이미 깨달음의 존재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원불교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전산종법사 취임 법문에 비추어 생각해보자.

첫째, 나를 새롭게 해야 한다. 깨달음에도 천층 만층, 천각 만각이 있다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자. 작은 깨달음에 만족하지 말고 더 큰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탁월한 교법을 만난 원불교인이라면 결코 신앙과 수행에 소홀할 수 없다. 쉼 없이 깨달음의 크기를 키워 자신을 진급시켜야 한다. 스승님의 대각을 공동생일 삼아 온전히 기뻐하려면 우리도 대각의 체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둘째, 교단을 새롭게 해야 한다. 깨달음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으로 인해 구태가 드러난다. 묵은 업이 보이고 과오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깨달음은 과거의 관행과 마찰을 빚으면서도 창조성을 일깨워 혁신의 길을 찾는다. 문제 해결능력이 커지고 미래 설계의 역량은 증폭된다. 교단 구성원 각자의 깨달음을 교단 전체의 깨달음으로 키워 교단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세상을 새롭게 해야 한다.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깨달음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소태산은 깨달은 자들이 가득한 세상을 미륵 세상, 용화 회상이라고 했다. 광대무량한 낙원 세상의 실현은 깨달은 자들의 몫이다. 엄청난 물질문명을 자랑하는 세상이 아직도 고해인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과 학살, 반인륜적 범죄, 치명적 환경오염 같은 이 시대의 폐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부처는 대자비심으로 중생을 책임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랬고 공자와 예수가 그랬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수많은 깨달은 자들의 삶도 그러했을 것이다. 나와 교단과 세상을 새롭게 하는 깨달음으로 은혜가 충만한 원기105년 대각개교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2020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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