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명 교도

[원불교신문=박은명 교도] 살아가면서 가끔 한 번씩 찾아오는 무서운 감정이 있다. 죽고 싶어진다. 삶이 무겁다 못해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순간. 죽음은 그렇게 달콤해 보인다. 그렇게 편안해 보인다. 원불교 교도가 된지 6년째, 정토라는 어려운 자리를 몰랐으니 쉽게 선택했고, 몰랐으니 천진난만하게 제 멋대로 생활했다. 나의 집안은 외조부 때부터 천주교인 집안으로 외가 쪽 여러 이모 분들이 수녀로 정년을 마쳤다. 나는 외가 집에서 생활한 덕분으로 어렸을 때부터 성당을 다녀야만했다. 어린나이였지만 성당에서 나는 향냄새가 좋았고 성스러운 풍경들과 경건한 미사행렬이 마음에 들어 게으름피우지 않고 외할머니를 따라 열심히 성당을 다녔다.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제법 열심히 성당을 찾아 기도모임을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힘에 의지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기도생활과 신앙생활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아주 눈 깜짝 할 사이 성당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그런 종교생활에 대한 습관은 새롭게 원불교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주 큰 도움이 됐으니 지금에 와서는 아주 고마운 마음이 든다. 

교무와 결혼을 통해 원불교 교도가 된 터라 교리뿐 아니라 교조인 대종사조차 낯설고 생소해 교당은 나가되 은혜하고는 거리가 먼 신앙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조금씩 원불교가 궁금해졌고 원광디지털대학 원불교학과에 입학해 무지몽매한 지경은 면하게 됐다. 나는 어른이 되고 언제부터인가 가끔 한번씩 무서운 감정에 휘말려버리곤 했다. 이 감정은 나의 모든 혜안을 흐리고 끝 모를 나락으로 나를 밀어 넣어버렸다.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하게 했다.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결해 볼 수도 없는 감정은 언제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상처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몸이 허약해져서 발생되는 에너지 고갈현상인 듯도 했다. 문제는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나의 힘없는 정신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순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죽음을 갈망하지만 살고 싶은 절박함으로 나는 원불교 신앙을 붙잡았다. 어쩌면 성당생활이 멀어졌던 순간이 이 때였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생각하던 순간 하나님은 나에게 길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결혼이라는 우연찮은 기회를 통해 받아들인 원불교 신앙을 붙잡고 이 무서운 감정을 바라봤다. 나름대로 법길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남편교무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6년을 보낸 그 시간은 과연 나에게 살아갈 길을 응답해 줬을까?

해피엔딩의 동화처럼 나는 지금 평화롭다. 죽음을 생각하던 나는 결국 과거 어느 시점에서 시작된 인과의 열매일 뿐이고, 살고 싶은 지금의 마음은 나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고자하는 또 하나의 인의 씨앗이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그 순간 죽음은 그저 과거 인과의 쓰레기통을 비워달라는 정신적 신호였을 뿐 나의 오늘을 지배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이 더 이상 어리석은 씨앗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원불교가 고맙다. 나를 살려줘서 고맙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깨닫게 해주어서 고맙다. 세상은 나와 같이 절박한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각자의 인과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잘 배우고 나면 살아남을 수 있고 억겁 생의 방향을 잘 찾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와 같은 행운을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정토회교당

[2020년 5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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