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도 교도

[원불교신문=이현도 교도] 

세계 태아 4명 중 1명은 낙태
세계보건기구(WHO)와 구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5600만건의 낙태가 시행되고 있다(2010~2014년). 지난 25년간 낙태율이 감소했으며, 특히 쉽게 낙태할 수 있거나 낙태가 합법인 나라에서 낙태율 감소가 더 뚜렷했다. 반면 낙태를 가장 엄격히 금지한 국가들의 낙태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합법화로 인해 낙태가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학계의 의견이다.

낙태 허용 국가는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낙태 시술의 장점과 위험을 충분히 전달하고, 시술 과정 중 나타나는 증상을 설명할 기회가 있어서 낙태로 인한 사망이나 장애의 발생률이 현저히 낮다. 반면 낙태 금지 국가의 경우 낙태가 가장 엄격하게 금지되는 곳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낙태가 이뤄질 확률이 더 높다. 의료 기술이 없는 사람에게 낙태 시술을 받거나 스스로 낙태를 시도해 사망이나 장애, 합병증이 발생하기 쉽다.

유럽, 미국, 캐나다 등의 국가는 낙태에 대한 제약이 엄격하지 않다. 그 외 멕시코, 남미, 아프리카 등 여러 국가는 낙태에 대한 제약을 점차 완화하는 추세이다. 보통 잘 사는 나라는 낙태율도 낮다.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의무적으로 ‘상담’ 과정을 거쳐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전 세계 국가의 97%는 여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 중 2/3는 여성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이 위태로울 때 낙태가 허용되며, 강간·근친상간 또는 태아의 장애에 의한 허용은 절반 정도의 국가만 해당한다. 

그 밖에 1/3의 국가들은 경제적·사회적 사유와 본인의 요청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경제적·사회적 사유로 허용하는 국가 비율은 36%인데 반해 이들이 차지하는 전체 인구 비율은 61%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성의 생명보호,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 위태, 강간·근친상간일 때 낙태가 허용되고, 태아의 장애, 경제적·사회적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지는 않고 있다.

일본 실태
일본은 모체보호법을 통해 공익사단법인 의사회가 지정하는 의사만이 인공임신중절(낙태)을 실시하며(지정 의사의 승인에 의해 중절 여부가 결정), 미성년자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하다. 

중절 건수는 1955년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우리나라도 감소 추세). ‘임신기부터 임신·출산·육아 등에 관한 상담체제 등의 정비에 대하여’라는 가이드라인에는 임신 등에 관한 상담창구를 설치하고 홍보하는 것, 각 상담 창구에서의 대응, 보호·지원 제도의 활용, 체제정비를 위한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여성건강지원센터, 아동상담소, 보건소 및 보건센터의 모자보건상담창구, 복지사무소, 여성상담소 등을 통해 상담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낙태가 불법으로 되어 있어 합법적인 상담이 어려워 개인 스스로 인터넷 검색 등에 의존해야만 했다.


독일 실태
임신갈등법은 임신갈등(임신부터 낙태, 출산 후 입양까지 발생하는 갈등)이 발생한 가족에 대한 지원과 상담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임신갈등 상담소에서 임신갈등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적 상담 활동을 하며, 상담 중심으로 임신갈등이 극복 또는 해결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보제공자가 임신부에게 인공임신중절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지 않을 경우, 1년 미만 징역 혹은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특징적으로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친 생부가 경제 능력이 안 되면 정부가 출산과 양육비를 지원하고 차후에 친 생부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양육에 대한 남성 책임을 의무화할 수 있는 제도이다.

임신갈등법은 제한적 익명출산제도인 신뢰출산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친모의 가칭으로 문서화 됨으로써 친모의 익명성이 보장되고, 익명 출산아동의 경우 만 16세에 달한 아동은 자신의 친모에 대해 알 권리 행사가 가능하다. 이때 서로 입장이 상반되면 소송을 통해 해결한다. 

신뢰출산제도를 통해 임신부의 익명성에 대한 염원과 아동의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가 적절히 충족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내 실태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 결정을 앞두고 국민 10명 중 6명 정도가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 발표 하루 전, 전국 19세 이상 504명을 대상으로 낙태죄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응답이 58.3%로 집계됐다.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응답은 30.4%였다. ‘모름, 무응답’은 11.3%. 이러한 여론은 헌재 결정과 결과적으로 유사했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은 경험한 여성은 임신 경험 여성의 19.9%이다(형법상 ‘낙태죄’가 엄연히 현존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낙태 경험을 축소해서 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 대상 여성의 낙태 당시 연령은 17세부터 43세까지 매우 다양했고, 평균 연령은 28.4세, 평균 낙태 횟수는 1.43회로 나타났다. 낙태 당시에 미혼 46.9%, 법률혼 37.9%, 사실혼·동거 13.0%로 미혼모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조사 내용을 보면,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여성들이 남몰래 낙태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전전긍긍하고, 비싼 비용(30~100만원)을 부담하며, 낙태 후 적절한 휴식도 취하지 못하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낙태의 주된 사유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33.4%,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 32.9%, 자녀를 원치 않아서 31.2% 등이 있지만 정작 이 낙태 사유들은 현재 모두 불법이다. 낙태를 금지한 법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가 큰지 알 수 있다.


원불교 교도로서 드는 생각
원불교 계문의 ‘연고 없이 살생을 말며’는 엄격히 금지돼야 할 살생에 관한 계문에 ‘특별한 이유’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연고’를 붙임으로써 살생에 대한 여지를 열어줬다 할 수 있다. 이는 불가피하게 생존 환경과 전체적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불교에서는 새 몸을 받아 탄생하려는 기쁨에 가득 찬 영가(靈駕)가 자연유산을 당했다고 해도 영가를 위로하는 천도재를 권장한다. 그런데 인공임신중절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즉, ‘연고’가 있었다면 천도재는 물론 어린 영가에 대한 부모의 깊은 참회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올해 연말까지 관련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고, 우리 사회는 미리 태아와 임신부 지원을 준비해야 한다. 원불교는 지금까지 다양한 복지 분야에서 노력해왔다. 앞으로 원불교의 ‘처처불상 사사불공’ 정신으로 인공임신중절과 관련된 체계적인 생명존중 상담 창구를 마련해 태아와 임신부를 보호할 정보를 제공하고 미혼모를 위한 복지 시설에도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이현도 교도
ㆍ이리교당
ㆍ원광대 한의과대학 졸업
ㆍ익산시보건소 재직
ㆍ원불교생명윤리연구회원

[2020년 5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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