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은 지금 위기인가 아닌가. ‘위기’란 위험한 고비나 위험한 경우를 뜻한다. 따라서 같은 경계여도 위험하다고 느끼는 개인이나 조직에게는 위기이고 위험을 느끼지 않는 주체들에게는 위기가 아닌 것이다. 위기를 맞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가 다가오는 징후를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위기 극복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합리적이다. 위기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때가 최악이라면 위기의 낌새를 남보다 먼저 알아채서 대비하는 경우가 최선일 것이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위기의 징후들을 나열해본다. 

하나,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회의 다른 조직들은 너무 자주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어서 문제지만 우리 교단은 위기라는 말을 너무 하지 않아서 문제다. 장기적인 교화침체 국면과 오랜 과제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코로나19사태를 겪으면서도 통찰력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타성에 빠져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잃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둘, 위기 판단의 기준이 없다. 개개인의 주관적 느낌만으로 위기를 논할 수는 없다. 교단의 실정을 보여주는 객관적 통계 수치들을 활용하여 교단 평가의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좌표조차 찍지 못한 채 미래를 향한 항해에 나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 새로운 시도가 없다. 교단 각 분야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교화를 극복하기 위한 참신한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 지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애는 쓰지만 방향을 잘못 잡아 성과를 못 내는 것은 아닌지 서로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과감한 도전들이 현장에서 일어나도록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넷, 위만 쳐다본다. 꽤나 오래된 병증의 하나다. 현재 교단 혁신 과제는 교단 최상층의 주도로 진행되는 형세다. 공의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실무자들과 현장교역자들 사이에서는 공감대 형성이 덜 된 채 ‘위에서 하라니까 한다’는 식의 방관자적 태도가 만연해 있다. 급기야 교정원 내에서도 간부들이 개인적 소견을 달리해 행정적 혼선을 빚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다섯, 각자도생한다. 선후진간의 윤기가 쇠해지고 사제간의 문답감정 공부도 약해지고 있다. 작은 갈등에도 사회의 실정법을 들이대고 작은 이익 때문에 교단적 대의가 경시되는 일이 잦다. 일심합력의 전통이 아쉽다. 

거칠게 언급한 위기의 징후들이 괜한 걱정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위기를 진단하고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위기 극복의 대안을 마련하는 능력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 잘 준비된 개인이나 조직은 위기를 또 다른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앞서 거론한 징후들과는 관계없이 다시 묻는다. 위기인가 아닌가.

[2020년 6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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