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달에 첫 발을 디딘 1969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역동적인 해로 꼽힌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여객기 보잉747이 개발됐고, 무려 인터넷이 탄생했다. 

대한민국 최초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도 이 해에 생겼다. 한편 미국발 베트남전쟁 반대 목소리는 히피문화와 평화운동으로 번졌고 문화와 예술, 종교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이 더불어 융성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한 해였다. 

우리 신문의 첫 몸인『원불교신보』가 탄생한 것도 그 해였다. 그때 우리 신문은 어떤 소식들을 실었을까. 반세기를 거슬러 그 해를 추억해본다. 

교단사에서 원기54년은 문열이의 해로 기억될 만 하다. 동네마다 봉불 소식이 쏟아졌다. 금구선교소를 시작으로 김천선교소, 해리선교소, 회산선교소, 남부민선교소, 구례선교소, 의정부지부, 원남지부, 부천선교소, 송천지소, 김해지부, 돈암지부(이안), 군산지부, 고창지부(이안), 춘천지부 등이 문을 열었다. 기자들은 차를 갈아타며 찾아가 필름카메라로 역사의 현장을 남기고, 막 쪄낸 축하떡으로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1969년은 청소년교화의 씨를 뿌린 해여서, 학생·어린이회 결성이 많았다. 이 해에 돈암지구, 김천선교소, 전주지부, 송천지부, 흥덕지부, 동산촌지부, 정읍지부, 순창지부, 영광지부가 청소년교화의 닻을 올렸다. 

이미 순항 중인 곳도 많았는데, 전주지부 청년회와 서울청년연합회가 사상강연회를 열었고  전국원불교청년대회는 6회째로 열렸다. 제9회 전국 원불교 학생 강습회, 원남지부 학생회 창립4주년 성가발표회, 전북지부 청년 체육대회, 서울지구 청년 성가대 조직, 전주지부 학생 ‘원불교의 밤’, 교동지부 학생 ‘원향의 초대’, 이리지부 학생 ‘원불교의 밤’ 등 학생과 청년의 축제들이 펼쳐졌다. 

당시 그 기특한 주인들이 이제는 60~70대로 교당의 요인들을 맡고 있으니, 이들이 그때 씨뿌린 반백년 농사 결실인가 싶다.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세상도 몰라보게 변했다. 다만 50주년의 길목에서 역사의 첫장을 들춰보니 이토록 흐믓하고도 씁쓸하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뜨겁던 교화의 동남풍을 느껴보고 싶다. 물론 우리는 이미 이뤘고 지금도 큰 산을 넘고 있다. 그 해의 풍성한 영광과 기쁨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다시 올 것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교단의 역사를 담아낸『원불교신문』의 다음 50년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창간 후 우리 신문은 넘치는 교화 소식에 지면도 늘리고, 더 자주 펴내 더 널리 읽혀왔다. 다시 한번 그 뜨거운 교화 바람이 불어, 기자들의 발과 손과 머리와 심장이 들뜨는 날을 기다린다. 1969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다. 

[2020년 6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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