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현 교도
박도현 교도

[원불교신문=박도현 교도]  학업과 삶, 취업준비 모두 힘들었던 3년 전이었다. 문득 생각났던 것은 훈련소 시절 스치듯이 처음 만난 원불교 법회였다. 무작정 한번도 찾아가 본 적 없었던 교당을 찾아갔었다. 청년회 교무였던 오경조 교무님은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새 교전과 ‘대종사님 말씀이 삶의 이정표가 되기를’ 이라는 쪽지를 주셨다. 한참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힘든 이유를 알게 됐다. ‘삶의 이정표’의 부재였다. 

원불교의 이정표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 첫 조건인 물질조차 개벽을 하지 못한(취업을 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조바심이 났다. 마음은 정신을 개벽하러 달려가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었지만 현실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조바심은 오래지 않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원불교 청년 훈련에서 김일상 교무님의 “진리는 있다”라는 설교, 원불교 대학 여름선방에서 우세관 교무님의 “진짜를 찾기 위해 3000배를 하셨다”라는 설교가 도움이 많이 됐다. “나는 한번이라도 무언가를 얻는데 그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었을까?”우연히 가게 된 훈련들이었지만 많은 화두를 얻어서 돌아왔다. 그 화두를 정리할 즈음 한덕천 교구장님의 ‘자유’에 대한 설법을 듣게 됐다. 물질적 자유, 몸의 자유, 마음의 자유를 얻으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얻으려고 하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전달하려는 것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단어들은 전부 달랐지만 뜻하는 바는 모두 같았다. 교무님들 뿐만 아니라 나보다 훨씬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도 여전히 무언가를(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이 따른다는 지극히도 당연한 내용이었다. 차이는 내가 그 문장을 머리로 받아들였나, 마음으로 받아들였냐의 그 차이였다.

마음으로 진짜를 찾아가기 위한 과정은 물론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나만 힘든건 아니겠지”라고 생각을 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 덕분에 매일매일 방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소서와의 전쟁 속에서도 조바심을 내려놓고 나를 찾아갈 수 있었다. 내 글씨도 아닌 똑같은 컴퓨터 글자로 표현된 자기소개였지만 진짜인 나의 자소서는 면접장까지 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다.

반대로 가짜인 나의 자소서는 가짜의 심심한 위로가 적힌 통보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진짜 중 하나의 자소서는 다행히도 실업자 신세를 면하게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할 때가 있다. 가혹하지만 어떻게 진짜 가짜가 그렇게 구별이 잘 되었을까? 앞으로 공부를 더 하면서 알아내고 싶다.

단추구멍 같았던 취업시장은 어느새 바늘구멍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구멍은 여전히 있고, 구멍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나 구멍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이나 그 무언가를 개벽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그저 조금 빨리 넓은 구멍에 들어갔을 뿐이다. 이 글이 원불교 취준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처음 화두를 던져 주셨던 오경조 교무님의 쪽지 전문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대종사님 말씀이 삶의 이정표가 되기를… 두 손 모읍니다. 그 길을 늘 응원하고 도움이 된다면 도움을 줄게요. 함께 합시다.’

/수원교당

[2020년 6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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