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구 영등교당 두계환 교도

[원불교신문=최지현 기자] 동이 트기 전인 새벽 4시반, 전북 익산시 고봉로에 위치한 영등교당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수타원 두계환(65·修陀圓 杜桂換) 교도, 영등교당의 자랑거리인 ‘치즈돈가스’를 만드는 날이면 그의 하루는 일찍부터 시작된다.

 “영등교당 치즈돈가스는 교도, 비교도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인기 만점입니다. 냉동 상태로 배달하는 것보다는 그 날 만들어서 그 날 배달하는 것이 훨씬 신선하고 맛이 좋기 때문에 치즈돈가스를 만드는 날이면 30~40명이 교당에 모입니다. 전날은 미리 치즈를 썰어놓고, 다음 날 새벽부터 돈가스를 만듭니다.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4시반부터 6시까지 일손을 돕고 출근을 합니다. 원로교도님들과 봉공회 임원진들이 작업을 위해서 애쓰고 계시죠. 요즘도 치즈돈가스를 구입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잠시 작업을 쉬고 있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서 맛있는 치즈돈가스를 만들고 싶어요.”
 
‘모든 일에 주인의 마음으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두계환 교도는 봉공회 총무, 부회장,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교도부회장과 단장을 맡고 있다. 부회장을 맡은지 6년째, 늘 교당 일이 우선인 그는 법회 날이 다가올 수록 더욱 바빠진다. 

 “아침 8시반에 교당에 와서 법회 시작 전까지 교도님들을 인사로 맞이합니다. 한달에 한번 식사 공양을 하는데, 토요일에 음식준비를 하고, 일요일에 법회가 끝나면 빠르게 식사를 내놓습니다. 그래도 맛있게 드시는 교도님들을 보면 그 자체로 행복이 됩니다. 촛대를 닦거나 간식 공양을 돕는 일도 저 뿐만 아니라 원로교도님들이 항상 함께하고 계셔요. 많은 교도들이 교당 일을 내 일처럼 하는데 저 혼자 인터뷰를 하려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두계환 교도를 인터뷰하게 된 이유는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주인정신도 있었지만, 가족 4대가 함께 교당에 나오는 ‘일원가족’이라는 이유가 컸다. 
 
“저는 결혼 전까지 원불교에 대해 문외한이었습니다. 시부모님과 시할머니가 이리교당에 다니셨고, 할머니께서 다리가 아파서 교당에 못나가실 때면 집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하셨습니다. 큰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님께서 할머니가 교당에 가고 싶어하니 같이 부축해서 가자고 하셨고, 그 때 처음 교당에 갔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향 냄새를 맡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날 저는 입교를 했습니다.”
 
몇 년 뒤, 둘째를 출산하게 된 그는 집에서 조금 먼 곳에 위치했던 이리교당 법회 출석이 어려워졌다.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먼 교당에 가는 것이 힘들었던 그는 집 근처에 있는 영등교당에 찾아갔다. 
 
“교당에 가고 싶어서 영등교당에 혼자 찾아갔습니다. 당시 1대 박은원 교무님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시부모님도 영등교당으로 모셔왔습니다. 열반하신 시아버지는 30년간 새벽 좌선을 빠지지 않고 하셨고, 영등교당에서 1호 법사를 받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현재 98세로 거동이 불편해서 교당에 못오고 계시는데, 집에서 매일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를 올리십니다.” 
 
자녀와 며느리, 손주들까지 입교 시킨 그는, 가족 교화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수행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시부모님이 교당에 다니셨지만, 시댁 형제들 중에서 교당에 다니는 분이 없었습니다. 수행을 열심히 하고, 솔선수범해서 교당에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가족교화가 됐습니다. 시누이 두명이 입교를 했고, 큰 시누이는 법호도 받았습니다. 남편(흥산 송두영 교도)도 교당으로 이끌었고, 아들은 학생훈련에 가서 ‘훈련에 오는 것이 엄마에게 효도하는 것이라 왔습니다’라고 얘기했다니 기특하면서도 웃음이 나왔죠. 자녀들이 교당에 출석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효(孝) 실천입니다.”
 
늘 밝은 웃음을 띄고 있는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남편 사업이 IMF로 부도를 맞았고, 그는 갑상선암에 걸렸다. “남편이 사업을 했는데, IMF때 부도가 났습니다. 교당에 유지비 낼 돈도 없었으니 정말 힘들었죠. 그렇다고 해서 신앙을 놓을 순 없었습니다. 끝까지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교당에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신앙을 놓지 않은 것이 어떠한 재산보다 소중합니다. 7년전 갑상선암 진단받았는데,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수술을 하게 됐는데, 새벽부터 조효경 교무님과 이성도 교무님이 기도를 해주려고 병원에 방문했습니다. 기도를 받는 순간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교무님들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감동이 밀려옵니다. 법연이 혈연보다 낫다라는 말을 실감했지요.”
 
몸이 따라주는 한 끝까지 공부심을 놓지 않겠다고 말하는 두계환 교도, 그에게 마지막으로 서원을 물었다. 대답은 ‘교리 공부’였다. 

“6년간 교도부회장을 맡았는데, 이제는 내려놓고 단원들과 함께 교리 공부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전산종법사님이 ‘신성으로 공부하자’라는 법문을 내려주셔서 ‘신성품’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현생에 교법을 만나 행복할 수 있었고, 시부모님 뒤를 이어서 교당에 조금이나마 일손을 보탤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일생을 교리 공부와 교당 일에 매진해 온 두계환 교도, 참 공부인이자 신앙인인 그는 여전히 신심과 공심으로 가득차있었다.

[2020년 6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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