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
자취가 새겨지는 실제적인 존재,
바른 생각은 바른 말을 쓸 때 가능해

혐오의 늪에 빠진 사회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이다. TV,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는 혐오를 다룬 기사가 넘쳐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혐오 차별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자 1200명 중 66.2%가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81.8%가 혐오표현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대부분은 혐오표현 자체를 무시(79.9%)했거나 혐오표현을 한 사람이나 장소를 피했다(73.4%)라는 등의 소극적인 대응을 보였다. 
 

혐오의 피라미드(출처: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혐오의 피라미드(출처: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최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지속되어 온 인종 차별의 구조적 폭력을 보여준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속에 동양인에 대한 크고 작은 인종 차별 범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에 질식사한 플로이드의 일이 여느 때보다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또 한편으로는 흑인 차별로 촉발한 시위가 일부에서 한인 사업장 약탈로 번져 또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를 자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 세월 다수 집단이 열위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가해 온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혐오는 공통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 밑바탕에는 증오심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에 바탕한 혐오는 어떤 계기가 촉발제로 작용하면 매우 심각한 폭력 범죄로 비화될 수 있다. 최근 우리는 이러한 혐오표현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 안에 감춰진 차별과 증오, 폭력성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더욱 우려할 일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표현이 미래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혐오표현의 피해자가 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혐오표현을 별다른 문제인식 없이 사용하는 사이, 혐오표현은 들불처럼 퍼져나가 자기혐오, 타인혐오가 일상인 시대를 만들었다. 
 

범국민 언어문화개선을 위한 전라북도 우리말가꿈이 활동.
범국민 언어문화개선을 위한 전라북도 우리말가꿈이 활동.

모든 폭력의 시작은 결국 언어폭력
대화와 타협보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 및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자녀는 문제가 생겼을 때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인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이 실제 폭력을 일으킬 가능성이 1.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훈육의 방법으로 매를 드는 부모 아래 자란 아이들은 친구와 싸울 때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경향이 있다. 문제 상황에서 대화보다는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에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폭력성이 내면화되어 반사회적인 인격을 형성하고 폭력의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다. 

혐오표현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성별, 세대, 종교, 성적 취향, 인종, 지역 출신 등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혐오표현은 개인 또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특성 자체를 차별하는 내용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거나 편견을 조장하고 선동하면서 실제적인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유발한다. 혐오표현의 피해자는 타인을 경계하고 믿지 못하는 대인기피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를 하거나 일상적 삶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폭력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로 말미암아 피해자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기는 일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혐오표현의 폭력적 속성을 일컬어 모로오카 야스코는 ‘영혼의 살인’이라고까지 했다. 

청소년들의 혐오표현이나 막말, 욕설 같은 언어폭력을 한때의 자연스러운 또래문화로만 간주하기에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폭력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연령이 중고등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유아로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언어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오늘날의 교실은 혐오사회의 축소판이다. 청소년들은 혐오를 ‘쿨’한 것으로 여기는 그릇된 또래문화를 공유하고 있는데, ‘쿨’하고 싶다는 것은 기실 자신이 ‘쿨’하지 않음에 대한 방어기제이다. 피해 청소년은 혐오표현에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입었지만, 가장된 ‘쿨’함 너머에서 그냥 침묵한다. 약자로 낙인찍히는 순간부터 또 다른 혐오의 공격이 빗발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내용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고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혐오표현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범국민 언어문화개선을 위한 전라북도 우리말가꿈이 활동.
범국민 언어문화개선을 위한 전라북도 우리말가꿈이 활동.

좋은 언어가 좋은 세상을 만든다
인간의 실제행동은 사고와 정서라는 두 범주의 밀접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난다. 사고, 정서, 행동의 밀접한 연관성을 고려할 때 폭력적인 언어는 폭력적인 사고를 형성해 어둡고 부정적인 정서를 강화하고 이러한 정서는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혐오표현, 막말과 욕설 같은 부정적 단어는 감정을 주관하는 뇌의 변연계를 활성화시켜 심장 박동을 빨라지게 하고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켜 감정에 휘둘리게 만든다. 반대로 배려와 존중의 말 한 마디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 인간관계 형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혐오표현 같은 부정적 언어 사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어가 지닌 위력을 믿고 긍정적인 언어습관을 형성하려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기가 자주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을 공책에 적고, 긍정·중립·부정 등으로 구별해 보면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의 언어습관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수시로 녹음해서 전사해 보는 것도 문제가 되는 언어습관을 발견하는 데 효과적이다. 평상시에는 의식적으로라도 긍정에 가까운 말을 자꾸 구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정의 말은 긍정이나 중립의 말로 자주 바꿔보는 연습을 한다.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는 방법은 기존의 좋지 않은 언어습관을 새로운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 이상이 없다. 

현대사회는 맞벌이 부모가 늘면서 부모와 자녀 간 대화의 부재가 심각하다. 대화할 상대가 없는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은 자신의 감정을 원만하게 표현하지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감정 소통 불능 상태가 되기 쉽다.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의 혐오표현 개선을 위해 언어인식 개선과 함께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인성교육과 도덕교육도 필요하다. 나아가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 노력을 병행해 상호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말은 흔적을 남긴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 분명히 그 자취가 새겨진다는 실제적인 존재이다. 미국의 구조주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다. 바른 생각을 해야 바른 말을 할 수 있지만, 바른 생각은 바른 말을 쓸 때에 가능해진다. 그리고 바른 말은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든다.

* 이 글은 ‘배려와 존중의 언어문화 조성을 위한 시론’, 『덕목별 마음도야론2』(공동체, 2019)를 요약해 다듬은 것임.

손시은 교수
손시은 교수

ㆍ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ㆍ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 문학박사
ㆍ전라북도 우리말가꿈이 지도위원

 

 

 

 

 

 

[2020년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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