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105년 중앙총부 대각개교절 경축식 부연법문

 

출가위 
교단 내 일 - 시방오가 - 큰집 살림

○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이해 건설
- 제법주制法主, 맡은 일마다 다 성공시킨다, 제중의 실적
○ 모든 종교의 교리 정통
- 주법에 맥(법가지法可止), 교단 대의에 합한다, 일원대도 원성圓成
○ 원근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생령을 위하여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위
- 불원천不怨天·불우인不尤人, 
- 아집我執·법집法執·소국집小局執·능집能執을 벗어났다.
- 부모의 마음, 육근합덕 六根合德
※ 출가위가 늙으면 여래다.

원기 105년 육일대재에 함께 임석한 좌산상사, 전산종법사, 경산상사가 교정원 간부들과 정산종사성탑을 참배하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 전 부촉
소태산 대종사께서 열반하시기 2~3년 전 법문이 대종경 선외록에 실려있습니다. 대종사님의 열반 전 말씀인지라 굉장히 엄중하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들이 이 회상에 입문하여 받들었던 대종사님의 간절한 부촉은 우리의 정신에, 그리고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대산종사법어에 그대로 갊아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 들어와서 다 아는 말씀이지만 우리 재가출가 교도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일으켜서 이 법문을 받들었으면 합니다.


대종경 부촉품 1장에 “만일 그와 같이 본의를 잊어버리며 나의 뜻을 몰라주다가 내가 모든 인연을 뿌리치고 먼 수양길을 떠나 버리면 그 어찌 하려는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 대중들은 그 뜻을 모르고 “아, 저희는 대종사님 가시는 대로 따라가면 되죠”하고 답하니, 대종사께서 “그곳은 너희들이 따라올 데가 아니다. 그 때에는 아무리 나를 만나고자 하나 그리 쉽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대중들은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법문을 유추해 보면 대종사께서는 이미 당신이 떠나실 것을 내정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종경 부촉품 2장에서 대종사께서 게송을 내려주시며 “옛 도인들은 대개 임종 당시에 바쁘게 전법 게송을 전하였으나 나는 미리 그대들에게 이를 전하여 주며, 또는 몇 사람에게만 비밀히 전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고루 전하여 주노라. 그러나, 법을 오롯이 받고 못 받는 것은 그대들 각자의 공부에 있나니 각기 정진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미리’가 대중들은 10여  년이나 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일본을 잘 아는 어른으로부터 “그 시기는 조선총독부에서 불법연구회 문을 닫게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였기에 대종사께서 1~2년 더 머무시지 않고 열반을 결심하게 되셨고, 이로 인해 그들의 모든 계획이 무효가 됐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신흥종교들이 교주가 열반하면 다양한 파벌로 나눠지고 없어졌기 때문에, 불법연구회도 그렇게 분열돼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강압이 더욱 거세지니 대종사께서는 당신의 수한을 앞당기셨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마음이 얼마나 급하셨을까요. 큰일은 거의 다하셨지만 계획한 대로 마무리를 못하셨기에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이것만은 꼭 하거라”하시며 간절하게 부촉하셨을 것입니다.

 

도가의 생명을 이어가라
대종사께서는 제생의세의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이 법을 펴셨습니다. 경전과 시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일과 그 사명을 실천할 재가출가 교도들이 도가의 생명을 이어가기를 간절히 염원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이 바로 ‘신심信心’입니다. 이 회상에 들어와서 제일 많이 들어온 것이 신심입니다. 두 번째는 ‘공심公心’입니다. 대중을 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신심과 공심과 함께 살려야 할 정신은 바로 ‘혈심血心’입니다. 우리는 그 ‘혈심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강조하신 말씀이 ‘주인主人’입니다. 결코 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것은 양보하고, 낮은 것은 내가 앞서서 하며, 내가 먼저 일에 임하고, 공을 위해 바치는 것이 다 주인의 심법입니다. 


그 다음이 바로 ‘대의大義’입니다. 사실 신심·공심·혈심·주인, 이것이 다 ‘대의 정신’입니다. 교단에 살면서 개인과 기관, 단체, 자기 생각, 이런 것에 붙잡혀있지 말고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일원주의, 세계주의, 여기에 마음이 굳건하게 서야 교단 대의를 잡은 사람입니다. 그 대의를 놓치면 교단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실력이 다소 부족해서 실수를 범하는 것은 교단에 큰 누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치고 채워 가면 됩니다. 문제는 대의가 제대로 서있지 않은 분이 오히려 가지고 있는 역량으로 교단에 큰 해를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한 마디로 ‘대의’라는 말에 뭉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교단 대의와 함께 자주 들었던 말씀이 ‘합력合力’입니다. 중앙총부 교정원에는 각 부서가 있습니다. 교정원장 입장에서 보면 각 부서가 하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장만 돼도 서로가 넘나들지만 직원들은 부서 일이 자기 일이 되어 서로 도와주려하지 않고, 부딪치고 다투기도 합니다. 또 부서 간 업무를 분장할 때 그 일을 잘하자고 업무를 나누는 것인데, 내 일, 네 일 이렇게 나누다 보니 합력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합력이 참으로 중요한 심법입니다.

 

교단 일이 내 일 되어야
다시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몰아 말하자면 바로 ‘출가위 정신’입니다. 원기60년대 중반, 중앙훈련원에서 대산종사께 법문을 받든 적이 있습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원불교에 들어온 모든 교도들은 출가위를 주먹에 쥐고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가위를 주먹에 쥐고 시작해야 한다.’ 사실 출가위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경지입니다. 원기72년부터 출가위가 배출됐기 때문에 “어떤 분이 출가위에 오를 수 있는가” 라고 할 정도로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였습니다.


 그 후 출가위 법위가 양성화되고 법문을 연마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산종사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힘을 넣어주시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원래 이 회상을 건설하시고, 교단을 세우실 때 재가출가 모든 교도가 출가위에 올라야 함을 계획하시고 시작하셨습니다. 전무출신과 거진출진 정신이 똑같기 때문에 대산종사께서 밝히신 전무출신의 도 12가지 조항도 거진출진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거진출진은 형편에 의해 몸이 재가로 계시는 것이지 정신은 하나요, 한 길입니다.


원불교의 교법은 재가출가 누구라도 출가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공부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가고 못 가고는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대종사님이나 스승님이나 옆에 동지한테 뭐라 할 것이 없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이미 당시 하실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출가위 되는 것이 쉬운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출가위는 ‘제법주制法主’라 하셨습니다. ‘제법’이라는 것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법을 연다는 소리인데. 그걸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가. 거기서부터 탁 막혀버립니다. 또한 ‘시방일가十方一家 사생일신四生一身’하면 참으로 어려운데, 대산종사께서는 “아, 저 정도면 나도 하겠다”라는 마음이 나도록 ‘교단 일이 내 일이다’하는 그 분이 출가위라고 아주 쉽게 표준 잡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교단 내일’, 이 말씀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출가위라면 국이 트인 어른인데, 종교의 울, 민족의 울 등 모든 것을 다 벗어나야 출가위인데, 교단 일만 내 일이라는 교단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출가위인가 의심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니 해석을 잘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교단은 나타난 형상의 조직체를 말하는 것이 아닌 ‘회상會上’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종사님의 법을 운전하는 그것, 그것이 회상입니다. 건물이 없어도 회상은 펼 수가 있습니다. 대종사님이 펼치신 모든 경륜을 회상의 이름으로 그 일을 하기 때문에 회상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대종사님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아, 그렇구나. 교단 일이 내 일이 되어서. 온전히 신심이 거기에 합쳐져서 행하시는 분들이 출가위이다.” 그렇게 해오가 됐습니다.

 

출가위 심법과 공부 표준
이제 출가위 심법에 대해 몇 가지 더 말씀 드리면, 정전 법위등급에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 이해를 건설한다’라는 조목을 ‘제법주制法主’의 조목으로 밝혀주셨습니다. 
좌산상사께서 종법사 위에 계실 때 출가위 사정을 하시는데 이 제법주 표준을 구체적으로 잡아 주셨습니다. 좌산상사께서는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서 인간의 시비이해를 건설하게 되므로, 그 분은 모든 일을 다 성공시킵니다. 결코 일을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떤 처지, 어떤 일에도 그 사람은 그곳에 살면서 반드시 그 일을 성공시켜 냅니다.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듣고 이 조목에 비로소 토가 떨어졌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대소유무의 이치에 바탕이 돼서 운영되기 때문에, 이 이치를 아는 분은 기한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일을 실패할 리가 없습니다. 출가위는 사회에 유익을 주고, 교단을 발전시키는 ‘제중濟衆의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교단에 들어와서 어떤 일을 맡기던지 그분은 반드시 성공시키는 분입니다.


또 하나의 출가위 표준은 바로 교단 대의가 분명하게 서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보면, 그분이 곧 교단 대의입니다. 그분 말씀은 교단 대의에 합해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주법主法에 맥脈을 대야 한다”하시며 ‘법가지法可止’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것은 대종사님께 정확히 맥을 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예로 대안대사와 방울스님이 원효대사보다 법이 더 높으셨지만, 당신 주법이 원효대사이기 때문에 거기에 힘을 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종교의 교리에 정통하게 되면, 그 성자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어떤 법을 펴신 줄 알게 되며, 그것이 바로 정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리를 정통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대종사님을 주세불로 모시게 되고, 그 어른께 마음의 맥을 대고 주세불의 정통정맥正統正脈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많이 하신 말씀이 ‘부모 마음’입니다. 부모님은 못난 자식이든, 잘난 자식이든 모두 품에 안고 다 성공시키는 분입니다. 출가위에 오르신 분들은 교단이 곧 내 일이기 때문에, 한 집, 한 살림이 되어 그 품에 모두를 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출가위는 그렇거니와, 여래위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위입니다. 그런데 이 여래위를 ‘출가위가 늙으면 여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출가위에서 오래오래 적공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면, 그 분이 여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꿔서 말하면 ‘판도가 같다’라는 말입니다. 출가위하고 여래위의 판도가 같습니다. 다만 능能을 얻으셨냐? 아직 능을 못 얻으셨냐? 그 차이입니다. 판도는 출가위 마음이 되면 이미 여래판을 잡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출가위에 오르는 것이 주세불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 이 회상을 여시고 저희들에게 간곡히 부촉하신 경륜을 실천하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2020. 6. 26. 마음공부14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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