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총부가 잠시 자체 격리에 들어갔다. 원광대학교 장례식장 및 정토회관 등을 방문한 조문객이 확진 판정 받음에 따른 조치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는 재가출가 교도 및 익산 시민들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우리는 바이러스 위협에 대한 공포로 간혹 확진자에 대한 성숙하지 못한 비난을 인터넷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불안감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큰 원인일 것이다. 누구나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될 수 있고 내 가족이 될 수 있고 내 동료가 될 수 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해야 하겠다.

코로나19는 부자와 가난한 자,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등 차별을 두지 않고 강력한 전파력과 치명률로 인류에 커다란 위협을 주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전 세계가 생명의 가치에 대해 본질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것은 공존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인류 진화의 역사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우성(優性)의 역사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고 이기는 경쟁적인 유전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공생(共生)하는 유전자가 살아남아 진화해 온 역사이다. 검투사가 아무리 강해도 언젠가는 또 다른 검투사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처럼 힘의 논리는 결코 자신이나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평화를 지향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들을 보며 안심과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를 원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곳에서 많은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종교 또한 근본적인 벽에 부딪힐 것이다. 외형의 양적 성장이 아니라 내면의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없으면 종교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사람들 스스로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내면이 성숙하지 않으면 이러한 위기가 닥쳐올 때 헌신적이면서도 슬기롭게 협력하고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과 다른 생명을 위한 이타적 방향으로 삶이 지향될 때 우리 인류는 또 다른 위기가 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재기가 일어났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사재기 없이 오히려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있었던 이 사례는 결국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죽을까 봐 두려워서 타인을 배척하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덜어주고 함께 이겨낼 수 있는지 고민하자. 공존하는 삶이 인류의 재난을 이겨낼 진정한 백신이 될 것이다.

[2020년 7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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