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강덕정 종사

다섯번째 시집 『미소속에 보낸 황혼』
인생의 황혼기를 즐기는 명산 강덕정(85·名山 姜德正·LA교당) 종사는 다섯번 째 시집을 준비중이다.  그는 34년 전(원기71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낯선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비행기 소리만 들려도 고향이 그리웠던 시절을 지내면서 이민자의 삶과 구도인의 성찰을 시로 녹여냈다. 그는 1996년 한국시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재미시인협회 이사장, 재미시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제15회 영랑문학상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를 쓰는 이유을 묻자 “한 편의 시라도 사람들의 가슴 깊이 다가가 해맑은 영혼을 일깨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를 쓴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깊이가 다른 그리움의 강이 흐른다. 그것은 길고 긴 기다림이다. 젊은 시절 많이 방황하고 마음을 앓다가 육십이 넘어 생각하니, 내가 찾고 기다리던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나의 영혼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라고 말해 시와 구도의 길이 다르지 않았음을 알수 있었다.

명산종사는 교단에서 ‘강언덕’이라는 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강언덕’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며 “첫번째는 내 고향의 강언덕에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거기에 황소가 매여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라고 강과 언덕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두번째는 대산종사의 법문 중에 세상을 즐겁게 하는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심덕, 행덕, 언덕이다”라고 전하며 ”글로 사람들 마음에 편안을 주고 싶어서 ‘강언덕’이라고 짓게 됐다”라며 말에 덕을 담아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고 전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늘 가슴에 담고
명산종사는 처음 원불교를 만나 깊은 인연이 된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하나씩 소개했다. “원기44년(1959) 중앙대학교 약학대를 막 졸업하고 익산 삼중당제약사에 근무할 때, 김응용 선생의 소개로 정산종사를 처음 뵈었는데 그 성안을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인자한 얼굴에 광채가 역력한 분이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큰 환희심이 일어났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그는 “전북 순창읍에서 동산약국을 개업하고, 원기47년에 순창교당 친타원 김봉식 교무 연원으로 입교 했을  당시, 교당에 이산 박정훈 법사를 초청해 교리강습이 있었다. 그때 ‘처처불상(處處佛象) 사사불공(事事佛供)’ 법문을 들으면서 또 한번 환희심이 일었다. 그 법문을 들으면서 원불교 교법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명산종사는 당시 가난한 시골지역 학생들을 위한 무료투약과 장학금 지급 등 적극적인 지역봉사에 활동으로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몸소 실천했다. 이후 고산 이운권 종사의 글씨로 현판을 만들어 미국 이민시 함께 했다. 그렇게 ‘처처불상 사사불공’은 그의 가슴속에 늘 품고 사는 법문이 됐다. 


혈심혈성으로 사는 교무들의 버팀목
명산종사는 원기53년~68년까지 15년간 순창교당 교도회장을 맡으면서 온통 바치며 교당을 일구시는 교무님들의 삶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어느날 오후 교당을 방문해 교무님을 찾는데 목소리만 들리고 나오시지 않아 부엌에 들어가보니, 흙범벅이 되신 교무님이 혼자 부엌벽에 황토흙을 바르고 계셨다. 어느 때는 식사시간에 텃밭의 상추와 된장만으로 식사를 하셔서 여쭤보니 속이 안좋아 그렇게 드신다고 하셨는데 알고보니 쌀독에 쌀이 하나도 없었다”라며 “교무님들의 헌신하는 생활과 모습을 보고 원불교는 실천하는 종교이며, 믿을만한 종교라고 생각했다”라며 교무님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깊어졌던 사연을 생생하게 전했다. 

명산종사는 교무님을 도와 교당 순창교당 부지를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앞장서 교당신축불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에 원기55년 반백년 기념식에서는 교단으로부터 매화장을 수상했다. 원기65년 10월에 전주시 전동으로 약국을 옮기고 교동교당을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순창교당의 교도회장직을 수행하며 어려운 교당 살림을 도왔다. 또한 전주청운회 부회장을 맡아 초창기 청운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원기75년(1990)에는 LA교당 교감인 함타원 송영지 대봉도의 권유로 대산종사를 뵙고 순창군 소재의 장군봉산 주변 임야와 전답 약 25만평을 교단에 아낌없이 희사해 원기76년 3월 제11회 수위단회에서는 소태산 대종사 탄생100주년 성업봉찬 기념대회를 맞아 대호법의 법훈을 수여받았다.


교당은 행복찾기 운동본부가 돼야
명산종사는 미국으로 건너가자마자 LA교당을 찾아 9년간 회장직을 수행하고, 이후 미주서부교의회의장을 7년간 맡아왔다.  평생을 교단과 현장교무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그는 “남은 생 더욱 정진하고 적공하여, 광활한 미국 땅에서 일원대도를 널리 펴는 교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수많은 중생들을 낙원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나의 서원이다”라며 대종사의 법음을 세상에 널리 펼치고자 하는 서원을 세우고 있다.   

그는 “긴 역사 속에 인간이 쌓아올린 과학의 힘이 이렇게 나약할 줄 몰랐다.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미국정부의 시책이 미흡한 가운데 교민들의 시름이 크다. 그러나 자신을 잊고 살아가던 우리가 나를 돌아보고 감사를 발견할 기회를 맞이한 것은 큰 은혜다”라며 위기 속에서 공부의 기회를 찾고 있었다. 이어 “우리가 교당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용심법이며, 용심법은 바로 행복을 창조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당은 ‘행복 찾기 운동본부’가 돼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행복을 찾아가는 큰 길이 되길 마음깊이 사은전에 심축 드린다”라며 교단을 위한 기도의 마음을 전했다. 


길 위에 서서

길에 나서봐야 안다
나와 반대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내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한 평생 믿어온 고집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얼마쯤 걸어봐야 안다
방향이 다른 사람들도
웃음이 있고 행복도 있다는 걸
가끔씩 길 위에 서서
뒤돌아보아야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을 뿌리 삼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지나치면 아집으로 굳어집니다. 결국 막히고 소통이 안 되면 답답하고 외로워져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남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상대를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해지고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 쓴 시입니다.”
 

■ 명산 강덕정 대호법
ㆍ(전)순창교당 교도회장 
ㆍ(전)LA교당 교도회장 
ㆍ(전)미주서부교구 교의회의장
ㆍ원불교 반백년기념대회 매화장 수상
ㆍ대종사탄생백주년대회 대호법 법훈 서훈
ㆍ전북 약사대상 수상(1985)
ㆍ월간 ‘한국시’ 신인상 수상 등단(1996) 
ㆍ한국 영랑문학상 수상(2010)

ㆍ출가위 종사 서훈 (2018)
ㆍ시집 『허공에 머문 순간』, 『낮에도 뵈는 별』, 
『길에서 길을 묻네』, 『빈 바다가 불타고 있다』

 

[2020년 7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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