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범 교도
박성범 교도

[원불교신문=박성범 교도] 바야흐로 동학개미의 시대다. 유례없는 역병 확산 초기의 우려와 달리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개인투자자의 기록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V자 반등을 이뤄 냈다. 외국인, 기관의 매도를 받아내는 개인투자자의 모습은 외세에 맞선 동학농민운동에 빗대어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를 발생시킬 정도로 뜨거운 감자다. 현재까지 주식 시장에서 만큼은 개미가 웃는 모양새다. 

10여 년 전 군 제대 후 휴학기간 동안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월급으로 받은 1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100만원을 투자했더니 열흘 만에  10만원이 생겼다. 불로소득의 맛은 달콤했고, 그 이후로 10년간 사은님이 보우하사 정말 다행히 아직까지도 신용에 문제가 없는 개미투자자로 살아있다. 

정신개벽으로 물질세력의 항복을 받아내는 종교인 원불교도 투자의 역사가 있다. 원기2년 대종사는 저축조합을 통해 모은 200원, 사재를 처분해 마련한 400원, 이웃에 사는 김주사에게 차용한 400원을 더해 1000원으로 숯을 구매했다. 이듬해 숯 가격이 거짓말처럼 폭등해 원금을 제하고 얻은 8000원의 시세차익으로 방언공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작금의 상황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당시의 숯 투자는 원불교인으로서의 투자생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료다.

사실 대종사가 숯을 최고가에 판것은 아니다. 원기3년 당시에는 1차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숯 뿐 아니라 나무, 어육, 우육, 채소, 정미 모든 상품의 가격폭등이 일어났다. 1917년에 14원 했던 쌀값이 1918년 전반에 28원으로 두 배나 폭등했다. 공교롭게도 1918년 말에는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전 세계에서 2500만명이 사망하고, 조선에도 집계된 사망자만 14만명에 달했다. 또한 식민지 개척 정책의 일환으로 일제가 금융면에서 통화 팽창 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에 1919년까지의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1919년 초의 쌀값이 43원까지 오른 것으로 미뤄보면, 숯 가격도 1918년이 아니라 1919년에 최고점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의심할 수 없는 대종사의 혜안을 전제로 했을 때 숯의 최고가가 매도 시점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제생의세를 목적했기에 새 회상 창립에 필요한 만큼의 이문을 남기시고 사업을 정리한 것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기껏해야 주식투자 10년 해 본 소액투자자가 투자의 방향을 제시하는 거만을 떨자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숯을 투자한 선진의 발자취를 통해 개인적으로 고민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투자도 용심법이다. 당시 숯값이 다른 재화에 대비해 폭등한 이유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수요의 증가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직전 숯값의 폭락으로 숯을 굽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하다. 외부인들이 보기에 숯을 굽는 조합원들의 모습은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거꾸로 요즘 시황은 어려운데 주식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은 많다. ‘동학개미운동’ 이라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없다. 투자를 하는 것이건, 하지 않는 것이건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원불교인으로서 투자도 제생의세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어렵고 잘 안된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제생의세가 돼야 원불교인이 된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이익은 다른 이의 손해다. 재화는 정해져 있고, 통화는 재화 이상을 찍어내기 때문이다. 사익을 목적으로 한 투자는 다른 이의 목숨줄을 빼앗는 일에 지나지 않음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지나친 이문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신림교당

[2020년 7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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