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재 전문장례식장’ 신용애 대표

염사 자원봉사로 시작한 20년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신용애 대표
신용애 대표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7월, 하늘로 치솟을 듯 신록이 절정으로 푸른 날들이다. 이 신록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금의 절정이 영원하지 않고 그 속에 죽음이 들어있기 때문임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죽음은 늘 삶의 곁에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허둥댄다. 

잘 죽는 법, 아니 잘 사는 법에 대해 배우고 싶어 죽음 가장 가까이에서 삶을 보는 사람, 신용애(법명 현재·창원교당) 장례지도사를 만났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하늘재 전문장례식장’ 신 대표는 장례지도사라는 국가 자격증 제도도 없던 시절, 염습과 입관 등 시신 위생 처리를 주로 하던 염사에서부터 출발한 20여 년 경력의 전문가다. 

“기자님 전화 받고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설렘이 고스란히 떠올라 반가웠어요.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실무를 자주 안하게 돼 아쉬웠는데 오늘 모처럼 초심을 돌아보게 돼 감사하네요.”

전공과 관련해 학생들 가르치는 학원을 23년쯤 운영하고 40대 후반을 맞으면서 어느 날 문득 이제 삶의 방향을 바꿔 인생의 반은 돈 버는 일을 했으니 나머지 반은 봉사를 해야겠다 싶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도움 주는 일을 찾다 우연히 염습 일을 배우게 됐다. 지금은 장례식장 문화가 당연하지만 그때만 해도 주로 집에서 사망하고 장례를 치렀다. 장례지도사라는 국가 자격증 제도가 2012년에 시행됐고 그가 이 길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 말이니 시대를 훌쩍 앞서간 셈이다. 

“첫 고인을 만나러 가는데 그렇게 설레더라구요. 내가 너무나 원하던 일이라 무서움이나 고통은 없었어요. 사랑도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 사랑하면 아픔도 아픔이 아니잖아요.”

대한민국 최고의 염사가 되고 싶어 시신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았다. 그렇게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다 보니 마산의료원에서 염사를 해보지 않겠냐고 의뢰가 들어와 고민 끝에 정식으로 취업을 하게 됐다. 여자 염사를 선호하지 않던 시대인데도 그를 찾는 수요가 많아 봉사와 근무 등을 합쳐 한 달에 100건 이상 맡을 때도 있었다. 일을 하는 보람이 커질수록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졌고 마침 경남에서 최초로 창원전문대학교(현 창원문성대학교)에 장례지도학과가 신설되면서 1기생으로 졸업하며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도 땄다. 이후 창원병원, 은성병원 등의 장례식장 위탁 운영 등을 거쳐 18년 전 하늘재 전문장례식장을 개업하게 됐다.  

“지금도 가끔 개인적으로 의뢰가 들어올 때가 있어요. 장례식장과 관계없이 염만 해주러 갔다 옵니다. 특별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닌데 다들 고마워하시니 내가 가진 능력으로 정성을 다하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복 받는 일인 줄 확연히 아는데 어찌 안하겠어요?”

지금까지 그의 손으로 배웅한 천 여 명 고인들이 죽음까지 도착한 사연은 천 가지가 넘지만 얼굴은 모두 똑같았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픔을 느끼고 있을 때는 숨을 거둘 수가 없어요. 고통이 모두 사라지는 짧은 순간이 올 때 그때 모든 것을 놓고 눈을 감더군요. 그래서 죽음은 열반이고 해탈인 것 같아요.”

신 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고인 관련 이야기만 하면 눈이 반짝인다고들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밀어내고 싶어하는 죽음을 삶과 똑같이 보는 비결이 뭐냐는 우문에 그는 마음속 두 마리 개를 내려놓으면 된다는 표현으로 대답했다. 선입견과 편견. “우리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인생은 피구처럼 살아야 한다고. 공을 피하면 아웃될 것이고 받아들일 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고인을 만나러 집을 들어설 때 지금 무슨 마음인가 돌아보면 오늘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되더군요.”

이 일을 할수록 원불교를 만나게 된 은혜가 감사하다. 36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원불교에 입교했고 입교하자마자 20여 년 동안 교당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새벽기도를 오래 하면 기적이 일어나느냐고 물었다. “기도를 마치고 교당 문을 나서면 오늘 하루는 내 손 안에 있음을 알겠더군요. 건강한 몸, 맑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게 되고 그 하루가 모여서 영생이 되니 내 영생을 잘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기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곧 기적이고 내가 바뀌니 세상이 바뀌더라구요.”

상담실에서 유족을 만나다 보면 고인의 일대기가 다 나온다. 20여 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죽음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 고인은 평소 살면서 지향했던 방향대로 죽음을 맞이하더라는 것이다. 깨끗하게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사람은 깨끗하게 죽고 남에게 폐 안끼치고 살겠다던 사람은 죽을 때 자식에게조차 폐를 끼치지 않고 죽었다. 평소의 삶이 곧 죽음이더라고. 

“지금까지 늘 고인들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라고 위로했는데 이 말을 나 자신에게도 그대로 할 수 있을까 돌아보며 공부심을 다지곤 합니다. 내 몸도 마음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보주니라.” 그가 가장 좋아하는 법문이다. 

[2020년 7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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