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교무
허석 교무

[원불교신문=허석 교무] 1919년 8월 21일 오후 8시. 대종사와 구인 단원은 최후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 구간도실에 모였다. 방 한가운데에는 청수와 아홉 개의 단도가 상 위에 놓여 있었다. 며칠 전부터 죽음을 각오한 구인 단원이 시장에서 구입해 허리에 차고 다닌 그 단도다. 기록에 따르면, 자결을 앞둔 구인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빛이 가득했고, 마지막 남길 말을 묻는 대종사의 질문에 정산종사는 오히려 스승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구인 단원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사무여한(死無餘恨)’이 적힌 증서에 인주를 묻히지 않고 지장(指掌)을 찍어 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결사의 뜻으로 엎드려 심고를 했다. 그들의 결연한 의지는 방 안 가득했다. 심고 후 대종사는 놀라운 상황을 목격했다. 백지로 찍은 증서에서 혈인(血印)의 흔적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대종사는 이 백지혈인이 단원들의 일심에서 나타난 증거라 하며 즉시 증서를 태워 하늘에 고했다. 

백지혈인을 확인한 대종사는 단원들에게 명했다. 이제 각자의 기도장소로 가서 최후의 기도를 올린 후 자결하라! 대종사의 명을 받든 구인 단원은 기도도구와 단도를 챙긴 후 지체없이 각자의 기도봉으로 향해 걸어갔다. 창생을 구원하기 위해 기쁘게 죽으러 가는 구인 단원, 그리고 죽으러 가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대종사. 그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한참을 걸어가던 구인 단원들 뒤로 대종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오라! 상기된 표정으로 단원들은 구간도실에 다시 모였고, 대종사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의 마음에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했고 음부공사가 이제 판결이 났다. 대종사는 천지신명이 감동했다고 표현했지만, 실은 제자들의 희생정신에 대종사 스스로가 먼저 감동했을 것이다.

백지혈인을 확인한 후 마지막 기도 장소로 출발하는 그 순간, 구인 단원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결 장소로 걸어가는 것으로 구인 단원의 자기희생은 완성된 것이다. 흔히 백지혈인을 이적(異蹟)이라 부르지만, 실은 100년 전 전라남도 영광에 살던 평범한 민초가 창생을 제도하겠다는 각오로 기도하고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려는 실행이야말로 이적이요 기적이 아닐까 싶다.

 

법인절은 대종사와 구인 단원을 
추모하는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사적 욕망과 이기심에 쌓인 
거짓 나를 완전히 죽이는 
자기희생을 통해 모든 생명을 
제도하겠다는 대 서원과 
하늘을 감동시킬 마음을 
확립한 법인기도는 
지금 우리의 역사가 돼야 한다. 


자기희생, 새로운 삶의 시작과 변화
대종사는 구인 단원에게 창생 제도를 위해 왜 죽으라고 했을까? 이들의 죽음이 창생 제도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물론 결과적으로 구인 단원은 육체의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았다. 대종사는 자결하러 가는 단원들을 불러 새워서 법명과 법호를 주면서 새로운 삶을 살라고 했다. 

새로운 삶이란 천 가지 만 가지 힘든 일이 있어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할지라도 오직 이 때의 마음을 변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가정에 대한 애착과 오욕의 경계에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전무하여 길이 중생제도에 노력하라는 것. 이것이 대종사가 주문한 새로운 삶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새 삶은 욕심과 착심에 끌리는 거짓 나가 죽지 않고서는 한 발도 진행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속의 관점에서 볼 때는 거짓 나를 살찌우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처럼 여겨질지 모르나,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거짓 나를 살찌울수록 나와 세상은 점점 병들어 가는 것이다. 

참 나는 무아(無我)이고, 인생의 참된 가치는 봉공(奉公)의 실천에서 온다는 진리의 소식. 대종사는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구인 단원의 몸과 마음에 놓인 거짓된 것들을 모조리 소멸시킨 것이다. 그 결과 구인 단원의 자기희생은 자기 소멸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과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대종사와 단원들 간 믿음과 영육쌍전
법인기도에는 대종사가 의도한 종교적 상징이 곳곳에 함축되어 있다. 먼저, 기도 장소로 정한 산봉우리는 세속으로부터 분리된 일종의 성소(聖所)이자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을 의미했다. 봉우리 위치도 중앙봉을 중심으로 팔방(八方)의 방위를 지정했고, 기도장소에는 우주를 상징하는 팔괘(八卦) 문양의 깃발을 설치했다. 기도 시간도 저녁 9시에 기도장소로 출발하여 10시부터 12시 정각까지 기도를 진행하되 그 시작과 끝을 맞추기 위해 회중시계를 하나씩 지참케 했다. 당시로는 상당한 금액이었던 시계를 구입할 정도로 기도과정에서 일호의 흩어짐이 없이 하고자 한 대종사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기도는 매우 엄격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식을 시작하기 전 팔괘기를 기도 장소 주변에 세우고, 향과 초 청수를 놓은 후 헌배와 심고를 올리고 축문을 독송했다. 축문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정법회상을 건설해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仁義)의 대도(大道)가 바로 서게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단원들은 평상시에도 금욕적이고 철저한 수행을 해갔다. 예컨대 육신의 목욕재계와 마음 정결, 계문 준수를 통해 성스러운 몸과 마음을 만들어갔다.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사실이 있다. 기도를 통한 구인 단원의 자기희생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도 이전부터 쌓아온 대종사와 단원들 간의 믿음과 영육쌍전의 훈련이 있었다는 점이다. 1917년 최초로 조직된 교화단을 통해 대종사는 저축조합을 결성하고 허례허식 폐지, 금주금연, 보은미 저축 등의 생활혁신운동을 실시했다. 또한 성계명시독을 통해 제자들의 신성과 마음공부 정도를 훈련시켰다. 1918년에는 수 만년 묵은 선천의 버려진 땅을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바꾸었던 방언공사를 시작해 후천개벽 운동의 기초작업을 실시한다. 이러한 구인 단원의 가치관과 활동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바로 법인기도였고, 그 기도의 절정에 구인 단원의 자기희생이라는 선택이 있었다. 

법인기도, 지금 우리의 역사가 돼야
법인기도가 진행된 1919년 당시의 상황은 100년이 지난 2020년 오늘날과 퍽 닮아 있다. 기도가 시작되기 일 년 전인 1918년, 세계1차대전까지 멈추게 한 스페인독감은 코로나19처럼 세계적 유행을 일으키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세상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큰 대립상황에 있었고, 그 중에서도 한반도는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주권마저 유린당하는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후로 100년이 흘렀다. 세상은 공고한 자본주의체제 하에 생명의 존엄성과 도덕의 가치보다는 돈의 가치를 우선하는 가치 전도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인류문명이 이대로 가게 되면 모든 사람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 것이라는 대종사의 100년 전 탄식이 지금 우리에게 더욱 선명한 음성으로 다가온다. 

곧 다가올 법인절은 대종사와 구인 단원을 추모하는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사적 욕망과 이기심에 쌓인 거짓 나를 완전히 죽이는 자기희생을 통해 모든 생명을 제도하겠다는 대 서원과 하늘을 감동시킬 마음을 확립한 법인기도는 지금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현대사회는 욕망의 끝없는 확장과 부의 쟁취를 위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인류문명을 도덕적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 종교마저 세속화되어가는 듯하다. 이때야말로 100년 전 이 땅에서 대종사와 구인 단원이 보여준 무아봉공의 역사와 정신이 다시금 살아나야 한다. 

원불교 100년의 역사는 수많은 재가출가 교도들이 무아봉공의 법인정신으로 일군 기적의 역사요 감동의 역사다. 물질이 개벽되어가는 이 시대, 우리 하나 하나가 정신개벽을 서원하고 실천해 감으로써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법인의 정신을 우리 삶 속에서 크게 열어감으로써 우리가 먼저 문명의 대전환을 이루어내는 주역이 되길 기원해 본다.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원불교학과 서원관 부지도교무 

[2020년 7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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