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연 기자
민소연 기자

호환 마마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요즘 우리 사이를 떠다닌다. 누구나에게 엄습하고 나홀로 겪어야하며 혹 페이스에 말리면 한없이 가라앉게되는 그것, 바로 외로움이다. 예전에는 마음 둘 곳만 없었는데 이제는 몸 둘 곳도 없어졌다. 코로나19로, 이미 외로웠던 우리들은 더 외로워지고 말았다. 

단지 감상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혼자들 살고 있다. 지난해 1인가구 600만 돌파, 곧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다. 수명이 늘어 사별하고 홀로 된 노년들이 있고, 결혼을 포기하거나 하더라도 늦는 청년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 다 키우고 황혼이혼도 늘어났다고 하는데, 통계에 잡히지 않는 별거나 졸혼 등을 생각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당에는 손에 손잡고 함께 나오는 가족들이 대부분이니, 그들이 우리를 피하는건지, 우리가 그들에게 닫힌건지 가끔 궁금하다. 

이 외로움을 딛고 떠오른 것이 ‘고독력’이다. 외로움을 이기며 혼자만의 삶을 적극적이며 즐겁게 영위할 수 있는 힘이다. 

생각해보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취미를 누리고, 혼자 종교생활을 해도 허전하기보다는 충만하고 완전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고독력이 높은 사람이다. 고독력은 높은 자존감과 꽉 찬 긍정성, 알찬 내면 등이 모여 이룬다. 이 말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삼학과 마음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힘 아닌가.

외로움의 해로 기록될 원기105년, 코로나19는 만남과 온기, 다정함 등을 앗아간 자리에 외로움을 남겼다. 유튜브나 SNS를 통한 온라인 만남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지금은 낯선 이 도전이 빠르게 일상이 될 것이다. 오호라, 그렇다면 이것은 기회다. 이제까지 대면교화의 걸림돌이었던 ‘교당이 낡고 옹색해서’, ‘출석교도가 적어서’, ‘행사 규모가 적어서’ 등은 의미없어졌다. 이제는 콘텐츠라는 실력으로 진검승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교법이 이 외로움의 시대 속에 기회를 맞았다. 우리는 이제 이를 어떻게 실어낼지만 고민하면 된다. 『원불교신문』도 ‘신문읽어주는교무’와 같은 콘텐츠를 내놓았고, 청소년국 채널이나 동그리TV, 서울교구 동행프로젝트 같은 시도들이 길을 내주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이어진다면, 원불교 콘텐츠는 곧 세상 곳곳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고독력을 키워낼 것이다.   

고독력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외로움은 절망이 된다. 외로움이라는 경계에 맞서 자력과 정신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마음공부를 이 시대가 부르고 있다. 외로움이라는 감옥에 갇힌 현대인을 구해내고, 고독력이라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2020년 현재의 제생의세 아닐까. 한번 곱씹어본다. 외로운 사람을 고독력있는 사람으로 돌리자.  

[2020년 7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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