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염승준 교수] 인류의 재난과 위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할 위기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장하준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2008년 금융위기나 1929년 대공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요·공급·소비가 한 번에 다 붕괴되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했다. 또 케빈 블로우(Kevin Blowe)는 감염된 개인을 식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과 시스템이 민주주의나 공공의 안전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개인 사생활 감시를 위한 여타의 목적에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나눠야 할 공업(共業)
혹자는 바이러스가 빈부와 나이와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감염시킨다고들 하지만, 감염의 경로와 정도와 속도, 치료의 접근성에서는 사회적 차별의 분리선을 따라 확연히 갈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2020년 3월 10일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직원 28명 집단감염’을 통해서 확인했다.(김관욱, ‘바이러스는 넘고 인권은 못 넘는 경계, 콜센터’, 『창작과 비평』 통권188호). 내가 사회적 거리두기 의무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내가 감수해야 할 감염의 위험과 공간의 이동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체제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이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내 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됐고 일상이 이미 재난이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교단은 코로나19 사태가 야기하는 전 지구적 위기와 재난 상황에 직면해 어떤 교법적 해석과 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하고 어떤 실천적 대응방안을 제시해야 할까? 미래학·경제학·철학· 사회학·의과학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여러 지표들을 분석하고 방안을 논의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우선 돼야 할 것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원불교 개교의 동기에 입각해서 세상의 결함이 무엇인지를 관찰하고 진단해 병든 세상을 치료하는데 세상과 더불어 노력하는 것이다. 현상세계(器世間)에서 일어나는 일체가 모두가 함께 짓는 공업(共業)이며 업으로 인한 결과가 모두가 함께 받아야 할 공보(公報)이기에, 병든 세상으로 인한 고통은 우리가 모두 함께 나눠야 할 모두의 몫이다. 


바이러스 감염병과 세상의 결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생명이 가지는 특성을 일부 공유하면서 생명과 물질 사이의 어떤 존재(반생물)로 인식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을 운반하고,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코로나19는 본래 인간을 숙주로 하지 않았던 바이러스이지만 새로운 변종이 생기고 그에 따라 인수공통감염이 되면서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의 변형과 창궐은 ‘더 많이 이동’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자본주의체제의 특성에 기인한다. 우리는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자연과 과학을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고, 그 때문에 초기 발병 시 “무역의 득실”과 “경제적 손익” 때문에 대응 시기를 놓치게 됐다.

재난의 역사를 기록한 미국의 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는 팬데믹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사람과 물건의 부단한 움직임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병과 같은 위기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동시에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이윤을 넘어서는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위기를 다룰 수 없음을 비판한 바 있다. 감염병 대유행의 위기와 재난이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을 입증하는 “위기의 완벽한 예”라는 것이다. (피터 페이커/이종임 번역,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같은책). 
바이러스의 창궐과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의 연관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결함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밖으로 세상을 관찰하라”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少太山 朴重彬 大宗師, 1891~1943)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각자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동시에 ‘세상의 큰 병’을 치료해 “결함없는 세계”를 만들고자 한 소태산은 병맥(病脈)의 근원이 깊어서 위경에 빠질 현대 물질문명의 결함과 장래에 미칠 영향을 고민했다.


바이러스 습격, 우주 만물일체의 되먹임 
부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를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총연습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기후변화는 수천 년 동안 얼음 상태였던 영구 동토층을 녹이고 있으며, 그 토양들이 녹는 바람에 그동안 잠자고 있던 고대의 바이러스들과 세균들이 소생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와 세균의 소생은 코로나19에 견줘 아찔한 상황의 반복이다.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계속되는 생산과 소비, 자연의 훼손, 기후 변화, 새로운 바이러스의 습격”은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기 다르나 둘이 아닌 만물일체의 경지를 알리는 일원상의 진리를 상기하게 한다.


병든 세상 결함을 진단·치료하는 종교
원불교 교리의 ‘원강(元鋼)’인 『정전』 총서편에 개교의 동기는 현시대의 상황에 대한 진단으로 시작해서 교의편에서 사은·사요라는 ‘약재’와 삼학·팔조라는 ‘의술’은 세상의 큰 병을 치료하는 “큰 방문(方文)”임을 밝히고 수행편 말미에 다시 한 번 ‘병든사회와 그 치료법’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교법 자체가 시대의 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좋은 의술과 약재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세상의 결함과 시대의 병을 진단하지 못하고 현실의 문제와 연관 짓지 못한다면 교리는 무용지물일 수 있고 교법해석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으며 실천적 대응방안도 오진(誤診)으로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일찍이 백낙청은 원불교의 ‘세상과 맞서 싸우는’ 종교의 특성을 강조하며 물질이 개벽되는 시대의 사리연구는 성리공부가 바탕이 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에 대한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공부가 사리연구의 핵심적으로 중요한 몫이며 전문가에게 맡겨 놓을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 바 있다. 교법의 해석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병”을 바루기 위한 해석이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은 개인과 교단 모두가 고민하는 사회 속의 종교로서의 역할이며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무에 기초한 과제가 도출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의학계의 돌발 사건만은 아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하과학의 문명이 발달하는 현 시대를 설명하는 하나의 징후이며 그 이전의 시대와는 다른 시대를 열어가는 장이 되고 있다.

정산 종사(鼎山 宋奎 宗師, 1900~1962)는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碑銘並序)’에서 소태산이 ‘백억화신의 여래’며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인 이유 6가지 가운데 판탕(板蕩)한 시국에도 사업을 주저하지 않으셨고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頑固)에는 그치지 않게 하신 점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패닉은 곧 판탕한 시국에 틀림이 없고 기후변화 등으로 예상되는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위기와 재난은 세상의 결함의 징후이고 시대의 병이 분명하다. 시대의 병을 바루는 것, 세상의 결함을 치료하는 것이 소태산 정신이고 원불교 교법의 책무이며 과제다.

 

 

 

 

 

 

 

 

염승준(관진) 교수

ㆍ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철학 박사   
ㆍ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ㆍ원불교생명윤리연구회 연구위원

[2020년 8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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