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의 불법연구회 창립은
개혁불교의 흐름에서 이해해야
교강 선포, 소태산의 초기사상
추후 『불교정전』을 통해 완비됨

김방룡 교수 / 충남대학교
김방룡 교수 / 충남대학교

[원불교신문=김방룡 교수] ‘교강(敎綱)’이란 ‘교리의 강령’이란 뜻으로 원기5년(1920) 4월에 소태산 대종사가 부안 변산의 봉래정사에서 새 회상의 교리 강령으로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팔조목’을 선포한 사건을 말한다. 본고에서는 ‘교강 선포 당시의 불교계의 동향은 어떠했는가’하는 점과 ‘불교적 관점에서 교강의 내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하는 점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교강 선포와 이후 불법연구회의 창건이 가지는 근·현대 종교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교강 선포는 불법의 생활화에 대한 선포
1916년 소태산의 대각에 의해 이 땅에 출현한 원불교는 한 세기 동안 저축조합(1917-1919), 불법연구회 기성조합(1919-1924), 불법연구회(1924-1948), 원불교(1948-현) 등으로 교명을 바꾸어가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법인성사’와 ‘교강선포’는 소태산이 대각 이후 본격적으로 새로운 회상을 펼치게 된 당위성과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밝힌 사건으로 소태산의 초기 정신과 그 지향점이 무엇인지가 잘 드러나 있다. 법인성사와 이듬해 교강을 선포하기까지 눈에 띄는 소태산의 두 가지 행보는 ‘불법(佛法)에 대한 선언’과 ‘일원상(一圓相)의 구상’이다. 

‘불법에 대한 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소태산은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라 하여 새로운 불교회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소태산은 원기4년(1919) 봉래산에서 머물던 중 8월에 금산사에 가서 잠시 머물게 되는데, 이때 일원상(一圓相)을 그린 적이 있었다. 소태산의 친저인 『불교정전』에 실린 ‘일원상의 진리’와 ‘일원상의 유래’를 살펴보면, 소태산이 구상한 일원상은 ‘제불조사의 본성(本性)자리’이자 ‘범부중생의 불성(佛性)자리’를 상징한 것이며, 이것이 곧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임을 알 수 있다. 

소태산은 ‘불법(佛法)에 대한 선언’과 ‘일원상(一圓相)의 구상’을 거쳐 드디어 교강을 선포하게 된다. ‘불법연구회 (기성조합)’란 교명에서 알 수 있듯이 소태산이 선포한 교강의 핵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강 선포 당시의 불교계의 동향
원불교인들 가운데는 소태산 당시의 불교계가 굉장히 침체되었고, 불교인들이 우상화된 불상을 숭배하고 있고, 교리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였다는 등의 부정적인 인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 1919년 3.1 운동을 주도한 만해와 용성의 현실 인식만 보더라도 당시의 불교계가 얼마나 개혁적이고 현실 참여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소태산의 불교 지식 습득 경로
소태산의 ‘불법에 대한 선언’에는 “내가 진작 이 불법의 진리를 알았으나, 그대들의 정도가 아직 그 진리 분석에 못 미치는 바가 있고”라는 대목이 보인다. 이는 적어도 1919년 이전에 이미 불교의 교리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축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태산은 ‘불법에 대한 선언’과 ‘교강선포’에 이어 『조선불교혁신론』과 『수양연구요론』의 초안을 내놓는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오랜 기간(적어도 상당기간) 불법을 주(主)로 하는 새 회상을 건설하고자 준비과정을 해 왔음을 말해준다. 불교의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 전통불교의 문제점과 미래불교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불교잡지와 불교사, 불교사상 등에 관한 다양한 서적이 출판되면서 불교의 교리에 대한 정보가 다양하게 유통되던 시기였다. 특히 전국으로 번진 3.1운동으로 인하여 불교는 물론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대한 정보들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전파되었다. 따라서 궁극적인 도(道)에 관심이 있었던 소태산이 불교 및 불교교리에 대한 지식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록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백학명 선사와의 교류이다. 학명은 소태산과 본향으로 백파 긍선 이후 백양산 문중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선(禪)은 물론 교학과 율학에 있어서 당시 최고의 고승이었다. 특히 그의 선농일치 등은 소태산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소태산 사상 조사선과 성리학 공존
‘교강’의 내용은 소태산의 초기사상이고, 추후 불교 사상을 강화하여 『불교정전』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태산은 성리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불교 특히 조사선 사상을 수용하여 주불종유(主佛從儒)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제시하였다.

소태산은 『불교정전』 ‘사대강령의 대의’에서 “정각정행이라는 것은 일원의 진리 즉 불조정전의 심인을 오득하여 그 진리를 체받어서 안이비설신의를 작용할 때 불편불의무과불급한 원만행을 하자는 것이며”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깨달음은 ‘불조의 심인(心印)’인데, 그것의 활용은 『중용』의 “중(中)이란 편벽되거나 치우치지 않고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는 것이다.”라는 ‘中(중)’을 통해 원만행을 하자고 말한다. 즉 ‘체(體)’는 조사선(祖師禪)인데, ‘용(用)’은 성리학(性理學)이다.

그런데 조사선과 성리학은 사상적으로 그 뿌리와 결이 다르다. 조사선에서는 이미 완전한 불성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다는 본래성불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본성은 완전무결하여 그것이 발(發)하지 않은 상태에서나(체, 공적, 적적) 발(發)한 상태(용, 영지, 성성)에서나 똑같다. 그러나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어지고, 그것은 발하는 시점에서 사심(邪心)의 개입여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본다. 그런데 소태산의 사유 속에서는 성리학적 요소와 조사선의 요소가 모순 없이 공존하고 있으며, 그것이 소태산 사상의 큰 특징이다.


교강에 나타난 불교적·유교적 요소
사은(四恩)의 은(恩)사상은 부처님의 연기(緣起)사상에 비유될 수 있다. 즉 연기의 ‘상의상관성과 인연생인연멸’의 특징을 보다 인간생활에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은’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지·부모·동포·법률’이란 범주는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범주를 떠올리게 된다.

‘삼강령 팔조목’ 또한 그 명칭에서 『대학』의 ‘삼강령 팔조목’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계·정·혜’의 불교전통의 삼학에 입각하여 ‘정신수양(定)·사리연구(慧)·작업취사(戒)’로 바꾸어 놓은 것은 현실의 구체적인 생활 속에 삼학을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소태산의 고뇌의 결실이다.

불교에서 삼학(三學)에 대한 가장 큰 담론은 혜능이 북종의 수상삼학(隨相三學)을 비판하고 제시한 자성삼학(自性三學)이다. 혜능은  삼학을 점차로 닦는 것이 아닌, 그름과 산란함과 어리석음이 없는 본래마음에 바탕하여 무념(無念)과 무상(無相)과 무주(無住)로 일행삼매를 실천할 것을 주장하였다. 원불교의 ‘일상수행의 요법’은 혜능의 자성삼학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삼학은 주자의 심성론에 바탕해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 ‘취사(取捨)’는 곧 ‘분별심’으로 본다. 취사를 하는 주체는 ‘이성’이지 분별을 떠난 ‘공적영지심’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주자가 말하는 격물치지의 주체 또한 ‘이성’이다. 자성삼학과 소태산의 삼학은 엄밀히 보면 사상적인 결이 다르다.

다음으로 ‘신·분·의·성’에 관한 것이다. 소태산은 고봉 원묘(高峰元妙, 1238- 1295)의 『선요(禪要)』에 나오는 ‘신·분·의’에다가 『중용』에서는 나오는 ‘성’을 덧붙여서 삼강령의 진행력을 높이는 요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태산은 『선요』를 보고서 대각 후 자신의 깨달음의 방법이 간화선과 유사함을 발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선요』에서 강조한 ‘대신심·대분지·대의심’의 삼요(三要)를 진행사조에 넣은 것이다. 문제는 『중용』에 나오는 ‘성(誠)’이다. 이러한 점은  불교의 선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유교의 가르침을 통하여 생활 속에 활용하고자 하는 소태산 사상의 독특한 점이다.


교강 선포의 근·현대 종교사적 의미
발표자에게 맡겨진 임무는 소태산의 ‘교강’ 선포가 지니는 (한국) 근·현대 종교사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규명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표방하는 개혁불교가 이 땅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법신불(法身佛)을 신앙대상으로 하고, 부처님 법(佛法)을 따르는 종교를 ‘불교(佛敎)’라고 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소태산이 창건한 ‘불법연구회’는 다름 아닌 불교단체이다. 소태산은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라 하여 ‘불교회상을 만들겠다’는 포부와 불법연구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한마디로 ‘원불교는 불교이다.’
 

※ 영산선학대학교 선학연구원과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주관한 제2회 법인절 기념학술대회(법인정신의 계승과 ‘교강’선포100주년) 논문발표 내용.

/충남대학교

[2020년 8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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