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들이 모여 교단 공동체를 이루고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개인 간 취향과 습관의 차이에서 발생한 갈등은 서로 포용심을 발휘하면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 영역에 속하는 교단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다루려면 새로운 마음가짐과 높은 수준의 문제 해결 역량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평가의 문제는 조직 문화 혁신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평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요청된다. 하지만 서로 아는 처지다 보니 종종 ‘애썼다’는 온정주의적 배려가 공정한 평가를 방해하곤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실주의에 매몰되어 평가는 형식에 그치고 만다. 사제 간은 부모관계, 사우 간은 형제관계로 치환되는 교단 정서 속에서 책임 행정은 요원해진다. 

특히 출가자들은 오랜 공동생활로 강한 결속력을 얻지만 그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폐쇄적 집단의식도 갖게 된다. 외부와 단절된 채 형성된 독특한 조직 문화는 교단 조직의 성격 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이런 조직적 특성이 그릇된 온정주의의 원인이 되고 책임 행정을 방해한다. 출가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단 주요 사업의 의사결정과 진행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과 평가를 원점에서 다시 점검할 때다. 

교단의 규모는 커지고 있는데 우리는 인정과 시스템 사이에서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모양새다. 동지 간 정의(情誼)와 온정도 엄정한 책임 행정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어정쩡한 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닌지 자문할 때다. 교단 조직의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조직 문화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교단의 위기는 심화될 것이다.   

사람과 일 혹은 온정과 책임은 양립할 수 없는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병진과 조화, 중도를 강조하는 원불교 관점에서 보면 이는 모두 조화롭게 지켜내야 할 교단의 소중한 덕목들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엄부와 자모의 양면을 모두 지니고 법도에 맞게 활용했다. 개개인의 세정을 알아주는 따뜻함으로 제자들을 감화시켰지만, 필요할 때는 추상과 같은 엄격함으로 계율과 규범을 엄수하도록 했다. 

현재의 우리도 이와 같은 스승의 모습을 이해하고 닮아갈 때 교단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일의 성과와 효율을 앞세워 사람을 상하거나 윤기를 쇠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대로 인정을 내세워 공법과 기강을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필 일이다. 동지 간 관계에서는 정의와 윤기가 넘치고 사업을 할 때는 공적 윤리와 책임의식이 살아있는 교단을 만들어 가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지향한 건강한 교단도 이런 교단일 것이다.

[2020년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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