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충만하게 경험하는 것은 모든 연령에서 일상의 활력으로 작용하며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데에도 매우 의미있게 기여한다.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충만하게 경험하는 것은 모든 연령에서 일상의 활력으로 작용하며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데에도 매우 의미있게 기여한다.

“요즘 뭐하고 놀아요? 어떤 놀이를 가장 좋아하세요?” 위와 같은 질문을 받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도 아니고, 놀이라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생각할 시간이 주어져도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맛집에 가고, 커피나 술을 마시며 친구를 만나거나, 휴식을 취하고 혹은 자신만의 취미활동을 한다고 한다. 자신의 일상에 놀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멋쩍게 웃으며 어떻게든 놀이를 찾아보려 애쓴다. 

다시 묻는다. “어릴 때는 어떤 놀이를 좋아했나요?” 위의 질문에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가 답이 술술 나온다. ‘땅따먹기,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인형 놀이, 말타기’ 등을 말하는 표정이 금방 환해졌다가 이내 깨닫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놀이를 잃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일상에서 놀이를 잊고 지냈을까? 


놀이, 그 과정 자체로 즐거운 활동
정신의학자 리차드 카봇(Richard Cabot)은 건강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설명했다. 사랑 할 수 있는 사람(able to love), 일할 수 있는 사람(able to work), 놀 수 있는 사람(able to play), 기도할 수 있는 사람(able to worship)의 네 가지 조건을 들며,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의 지표가 된다는 것을 역설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재밌게 놀고, 영성을 맑게 가꾸며 사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그가 건강한 사람이라고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 놀이(play)는 아주 일찍부터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의 주관적 행복감 중 ‘삶의 만족’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은 비단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놀이는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면서도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시하는 ‘아동의 놀이할 권리’는 지켜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아동이 놀이할 수 있는 시간은 현저히 부족하고 그 공간마저 한정되어 있어 아동의 놀이할 권리를 누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바쁜 일정 중에 겨우 여가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스마트 기기로 오락을 하거나 영상물 시청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고된다. 생애 초기부터 늘 함께하던 놀이를 갈구하면서도 이를 충족하지 못하며 자라다가, 능력과 생산성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세계에서 놀이는 점점 과거의 추억이 되어간다. 

네덜란드 철학자 하위징아(Hui-zinga)는 이성적 합리성에 기반하여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놀이하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정리하며 놀이 자체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나 생산성이 아니라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비생산적인 놀이에 있다고 설명한다. 

놀이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자유 그 자체이다. 놀이는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자발적인 활동으로 놀이의 동기는 일의 동기와 시작부터 차이가 있다. 일은 지향하는 목적과 결과가 있으나 놀이는 그 과정 자체로 즐거운 활동이다. 

즉, 놀이는 학습 이전에 이뤄지는 본능적인 활동이며 기본적인 욕구이다. 어린 아이를 떠올려보면 이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리고 출생에 가까운 연령일수록 놀이는 숨을 쉬고 먹고 자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활동이다. 이들은 언제든지 놀 수 있으며 얼마든지 놀 준비가 되어있다. 이처럼 놀이는 문화와 민족을 초월해 나타나는 보편적이고 중요한 활동이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서 발달하고 성장했다.
 

성인에게도 ‘놀이’의 중요성
놀이·일·사랑의 세 가지 요소는 일생 동안 작용하지만 아동기에는 놀이가 중심이 되고 청년기에는 사랑으로 그 관심이 옮겨가고 성인기에는 일이 중심이 되는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 놀이와 일과 사랑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전 생애의 발달을 건강하게 이끌기 위해서도 놀이를 금기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놀이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를 기꺼이 맞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놀이의 기회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 여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다양한 놀이를 통해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시간을 때우며 허무하게 보내는 사람도 있다. 놀이하려는 개인의 내재적인 성향이나 태도를 ‘놀이성’이라고 한다. 놀이성은 전 생애에 거쳐 나타나는 내적 특질로, 아동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놀이의 중요성을 지지하는 많은 연구가 보고되면서 성인의 놀이와 놀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놀이는 유아와 아동에게 제한되어 이뤄지는 활동이 아니다. 청소년과 성인 또한 놀이를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고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트레스와 심리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으며 마음의 건강이 위협을 받을 때마다 그에 적절한 휴식과 해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놀이를 통해 얻는 일상의 활력
놀이성이 높은 성인은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에 대해 실패가 아닌 성장과 학습을 위한 기회로 인식한다. 놀이성이 높고 유머가 있는 사람은 문제 상황에서도 유연하고 유머러스하게 대처하므로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감정을 스스로 해독하는 경향이 있다.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충만하게 경험하는 것은 모든 연령에서 일상의 활력으로 작용하며 긴장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대처하는 데에도 매우 의미있게 기여한다. 

무엇보다 놀이는 행복과 긍정적 정서에 영향을 줌으로써, 개인의 행동과 사고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대처 자원을 발달시킬 수 있게 돕는다. 이처럼 놀이의 유용성은 일생을 통해 나타난다. 또한 우리가 신체적·사회적·정서적·지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생활의 활력소를 제공한다. 

우리의 삶은 생존을 위한 일과 가정의 유지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다. 놀이하는 사람은 놀이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긍정 정서와 행복을 경험한다. 일과 사랑, 그리고 놀이를 함께하며 영성을 함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보다 넉넉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놀이를 시작해보자. 당장은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거창한 시작이 필요하지 않다.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놀아보면 된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놀이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야 한다.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어떠한 성과와 결과물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그냥 한번 즐겁게 재밌게 놀아보기를 권한다. 쑥스러운 마음을 잠시 접고 우선 혼자 가만히 시작해보자. 놀이를 통해 잠자던 창의력이 깨어나고 새로운 에너지가 솟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에 이토록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맞이한 초유의 사태는 고립과 불편감에서 무거운 우울로 변하고, 희망을 품었다가도 다시금 쏟아지는 끝이 아니라는 소식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각한 코로나 우울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일상이 지독히도 그리운 시기이다. 

이 상황이 무사히 종식되기를 모두가 한마음으로 염원하고 있다. 함께 마음 모으는 한편,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이 시간이 잊고 지낸 개인의 내적 자원 또한 발견하고 활용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자신만의 놀이 생활을 찾아가는 건강한 일상을 챙기며 모두가 힘든 이 시기를 보다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길 바란다. 
 

이은수 교수
이은수 교수

 

 

 

 

 

 

 

 

 

 

이은수 교수
ㆍ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ㆍ숙명여자대학교 석·박사 (아동심리치료전공) 
ㆍ아동·청소년 심리상담전문가, 놀이심리상담사

[2020년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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