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은 교도
권지은 교도

[원불교신문=권지은 교도] 어느 일요일,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니를 모시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할머니가 선글라스를 끼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느냐고 하니, 밭에서 일하다 벌레한테 물렸다며 괜찮다고 한다. 할머니의 눈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당장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완강했다. ‘교당에 가야 한다.’ 할머니는 전날 집에서 약을 발랐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 가려고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병원에서 가볍게 소독만 하고 오기로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난 할머니께 왜 꼭 교당에 가야 되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안 가면 이상해. 그래서 꼭 가야해.” 그날 이후 내가 무엇 때문에 교당에 다니는지 다시 생각해 봤다. 그러나 답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의 청년들에게 물어봤다. 왜 교당에 다니느냐고. 어떤 친구는 혼자서는 챙기지 못 함에 교당에 다닌다고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원불교가 가장 현실적이고 자신에게 잘 맞아서 다닌다고 한다. 다들 신심과 공부심이 정말 깊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친구들 나름대로의 이유였고, 나의 온전한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그저 태어나 보니 원불교를 신앙하는 할머니와 부모님이 있었고, 교당에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뿐이다. 

사실 어렸을 때까지는 이 이유가 엄청나게 큰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도 몇 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더 이상 ‘가족들이 가니까’, ‘어렸을 때부터 다녔기 때문에’ 등의 이유는 내가 스스로 즐겁게 교당에 나가게끔 이끌어주는 힘이 되지 못했다. 

청년 법회시간에 교무님이 한 말씀이 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도 충분히 교당에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청년이 되면 책임져야 하는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에 그러기 쉽지 않다. 마음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주변의 변화를 직접 경험해야 한다. 자신이 교당에 왜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꾸준한 신앙생활이 힘들다.” 

내 상황이 딱 그러했다. 스스로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지 못 한 채 예전부터 습관적으로 늘 해오던 일이니까 교당에 다녔던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 있을 때 교당에서 법문을 읽고 각자 마음에 들어온 법문을 발표하고, 그 감상을 나누는 훈련을 했다. 그 훈련에서 얻어 가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일주일에 단 하루, 단 몇 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스스로의 삶에 대조해 보는 일은 나와 같은 공부심이 깊지 않은 교도에게는 정말 귀한 시간이다. 예전에는 법문 속의 말씀이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는데, 요즘에는 대종사의 말씀이 더 이상 일반 어른 교도님들의 일만이 아닌, 나의 일이요, 내 주변의 일임이 느껴진다. 

그렇게 얻은 생각으로 일주일을 살고, 또 다른 법문에서 다른 생각을 만나 다시 일주일을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교당에 나가는 일이 다시 즐거워졌다. 교당에 나가 한 주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한 주를 계획하는 일들이 정말 값지고 소중하다. 

코로나19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우리들의 자유를 좁혀오는 이때, 나는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는 대신 집이나 교당에서 대종사의 법문을 만난다. 그리고 법문 사경은 지금의 내가 교당에 나가는 이유가 됐다. 내가했던 고민을 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각자 자신이 교당을 다니는 이유를 깊이 고민해보며 정답을 찾아보자고. 서로의 자리에서 열심히 교당에 다니며 공부하다가 어느 날에 만나면 서로의 이유들을 공유해 보자고 말이다.

/효자교당

[2020년 9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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