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수도권 집중, 경영이익 구조 등의 문제점
의사 집단 휴업, 희생·봉사 감내해 온 그들의 호소

강연석 교수
강연석 교수

[원불교신문=강연석 교수] 생명윤리의 범주를 조금 넓히면 의료정책과 의료직의 사명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우리 사회의 큰 이슈인 의사들의 진료중단 사태에 대해 대종경 인과품을 읽고 일반 언론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봤다.

“그대는 도산지옥(刀山地獄)을 구경하였는가” 인과품 32장
약간의 외출과 외박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1년 365일 24시간 직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고, 직장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주춧돌로 각종 불편부당함을 감내하고 있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지는 못하는, 그리고 폭력이나 감염병 위험에 노출된 근무환경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임에도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또는 기간제 근로자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는 대형병원의 전공의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지난 8월 7일부터 정부의 의료정책에 항의하며 전국적으로 진료를 중단하고 있다. 한편 전국의 의과대학 학생들 중 졸업반 학생들은 예정된 국가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원서 철회 등을 하며 선배인 전공의들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그 아래 학년의 학생들 역시 선배들을 따르고 있다. 사회에서는 이들이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의사의 본분을 잊은 채 병원 밖으로 나갔다, 외부의 입김에 의해 정치적 접근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한다. 학생들마저, 예비 의료인으로서 의료 활동을 시작도 하기도 전에 환자를 돌보지 않고, 이익집단의 정치행위, 밥그릇싸움부터 참여하고 있다는 가혹한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엔 그들 나름의 고충은 작지 않다.
 

“짓지 아니하고 받는 일은 하나도 없는 줄로 아나니” 인과품 15장
사회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어느 한두 병원의 전공의들이나 사회문제에 관심 많았던 소수의 움직임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대다수의 전공의들과 의과대학 재학생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학교, 한 병원, 한 지역에서 점진적으로 확산된 것이 아니라 동시 다발적으로 폭발적인 참여가 이뤄졌다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불씨를 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의과대학 입학자 모두는 매우 똑똑한 학생들이다. 이들이 졸업을 앞두고, 또 졸업한지 얼마 안되어 이러한 극단적인, 집단행동을 하게 된 이유를 단지 정부의 정책이라고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은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 다양한 의견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량의 공부에 매몰되어 평소 사회활동에 참여했던 젊은 학생, 의사들이 드물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렇다. 전공의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거나 충분한 정보를 접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 사회의 이 똑똑한 젊은 청년들은, 정부의 정책 발표 이전에, 이미 분노해 있었다. 정부의 현 의료정책은 이러한 분노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무엇이 의학도와 전공의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 
 

“한 물건이 이로움을 보매 한 물건이 해로움을 당하는도다” 인과품 12장
최근 우리나라의 대형병원들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정책은 서로 다른 의사, 서로 다른 병원이라 하더라도 같은 의료행위에 대해 같은 수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또 환자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앓고 있는 질병과 무관하게 어느 병원을 방문해도 큰 불이익이 없다. 이것은 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병원의 명성이 높을수록,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을수록 환자를 몰리게 하고, 병원의 규모가 작고, 브랜드가치가 떨어지는 지방 병원들의 경영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국회에서 지방에 일정기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공공의사, 공공의대를 추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 의원이나 지역의 중소병원들, 기피 과가 되어버린 필수진료 과목의 전문의들은 우리 사회의 인구절벽, 수도권 집중과 맞물려 고통받고 있다. 여기에다 대형병원 경영이익에는 젊은 전공의들과 간호사, 물리치료사, 응급구조사 등 병원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이들의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주지 않는 한국형 경제구조의 문제점이 함께 담겨있다.
 

“오늘 산돼지를 잡은 포수를 보니, 뒷날 포수가 당할 일을 가히 알겠다” 인과품 12장
주5일, 40시간 근무 시대에 전공의들은 2014년 7월에야 전문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의 개정을 통해 주당 최대 88시간까지만 근무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받았다. 88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은 주 100시간 이상의 근무하는 날이 허다했다는 뜻이고, 지금도 일부 병원의 전공의들은 이런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다. 이미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해온 전공의들은 2020년에 코로나19 관련 활동으로 더욱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들의 억울함, 분노는 의사들이 쏟아내는 거친 말의 향연을 통해 쉽게 느낄 수 있다. 분노한 의사들은 사회를 향해, 정부를 향해, 타 직군을 향해 지식인들이 흔히 쓰지 않는 험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국회나 정부, 함께 의료계에 종사하는 다른 직군, 그리고 본인들의 진료중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는 엄연히 서로 다른 존재이다. 머지않아 우리 사회의 최상위층을 차지할 젊은 의사들이 그들의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분출한 것에 많은 사람들은 또 다시 고통받았다. 며칠 전 국민들을 분노케한 홍보자료들 다수는, 기성세대인 대한의사협회에서 만든 것으로서 전공의들과는 무관하다고 믿고 싶다.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던 학생이 대학에서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학부 성적이 우수하다고 좋은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니며, 타 직군을 비방한다고 의사가 존중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갚을 차례에 참아 버리라” 인과품 10장
전공의들 다수는 몇 년만 참고 지내면 의료의 상부구조로 옮겨갈 것이고, 지금 겪고 있는 하부구조의 고통을 잊어버린 채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은 그래서 잘 안되는 것일 수도 있다. 몇 년만 참으면 좋은 시절이 오기 때문에,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배들의 고통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현장에는 전공의들과 달리 평생 의료의 하부구조를 지탱해야만 하는 직군이 대부분이다. 하부구조의 보건의료직군은 전공의들 못지않게, 또는 더 힘들게 생활하고 있지만 사회에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 금세 대체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은, 학생들은 존중받고 싶다. 열심히 공부했고, 시키는대로 열심히 노력해왔다. 국가에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힘들지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우리 젊은 의사들은 희생과 봉사를 감내해 왔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이 일어서서 사회에 호소하면 귀를 기울여 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냉정하다. 사회에서, 국가에서는 그들이 해왔던 과거의 노고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 보다, 현재의 진료중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많이 보냈을 것이다. 많은 젊은 의사들은 큰 상처를 받고 있을 것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더 큰 분노를,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절망에 빠져있을 것이다.

8월 14일 집단휴업에 참여한 전라남도 의사들은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구례군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물론 국가의 의료정책에 항의하는 의미의 집단휴업이었다. 사람이 많은 시위장소 대신 고통의 현장으로, 손에는 피켓 대신, 청진기와 주사기를 들고 정부의 정책에 항의한 것이다. 전라남도 의사들의 차원 높은 행동은 “악과를 받을 때에도, 옛 빚을 청산하는 생각으로 모든 업연을 풀어간다면, 천만 죄고가 화로에 눈 녹듯 할 것”이라는 대종경 인과품의 법문을 생각케 한다.
 

강연석(인서) 교수

ㆍ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ㆍ원불교 생명윤리연구회 위원

[2020년 9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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