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도
이준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준원 교도] 지금 인류는 3가지 병이 깊다. 첫째는 독식의 병이다. 세계의 강대국과 사회의 강자가 부의 70% 이상을 독식하고 있다. 둘째는 독선의 병이다. 정치가나 종교인, 지식인이 자신만 옳다고 여기면 그 잘못이 미치는 범위가 파국적이다. 셋째는 독단의 병이다. 지도층에서 쓴소리를  기피하고 자기도취에서 내린 의사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지구적 차원에서 당하면서, 병의 뿌리가 깊은 이 세 가지 병을 고치기 힘을 모아야 한다. 

가난, 전쟁, 무지, 그리고 역병은 인류 역사 이래로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이 네가지 중에서 역병이 돌면 지역은 물론 나라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다. 이른 바 십승지는 역병을 피하기 좋은 곳이라는 공통성이 있다. 중세에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일 죽었다. 그 후 인본주의와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다. 석탄과 석유와 전기, 공장과 자동차와 철도 등 눈부신 물질문명이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도시화이다. 도시로 몰려들며 인구가 밀집하고 자연은 훼손되기 시작했다. 토지·공기·물이 오염되고, 식물들과 동물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드디어 지구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북극과 남극이 옛날과 같지 않다. 폭염과 폭설, 지진과 해일, 사스·에볼라·메르스 후 코로나까지 우리에게 찾아왔다.   

순경이 있으면 역경이 있다. 덧셈이 있다면 뺄셈도 있다. 물음표가 있다면 쉼표가 있다.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에 직면했다. 수지가 맞지않는 백신 개발은 세계일류 제약기업은 시도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권력의 덧셈에 자본주의는 돈의 덧셈을 추구했다. 기업의 지소적 혁신으로 자본주의가 일단 승리했다. 그러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연합으로 부의 독식으로 빈부차 심화의 병을 앓고 있다. 이제 인류는 뺏셈과 쉼표에서 배워야 할 때이다. 

코로나 시대(The With-Corona Age)에서 우리의 십인일단에 대해 생각해본다. 단장을 중심으로 하여 3인 1조의 대면 만남은 조심만 하면 안전하다고 본다. 그러면 3명의 조장을 단장이 챙기고 조장은 2명의 조원을 챙기면 된다. 통상 중앙을 한명 두는데 차제에 각 조장을 중앙으로 하면 어떨까 여긴다. 중앙 역할 수행은 단원을 챙기는 연습, 즉 단장의 자질을 키우는 과정이 아닌가? 코로나 시대는 ‘비대면 70%, 대면 30%’가 적정 비율로 본다. 30% 정도의 시간은 대면으로 만나야 서로의 느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다.

이제 ‘코로나 시대의 교화방향’에 대해 소견을 밝혀본다. 1)우리는 도학(성리) 기반 과학을 병진해 영육쌍전 낙원건설 후천개벽의 기수가 되자. 2)우리는 처처불상 신앙에 기반, 코로나를 초미세 부처로 보자. 3)초미세 부처님은 은생어해 역수적 진화의 가르침을 주고 계시다고 믿자. 코로나의 역설이다. 4)우리는 지구의 여신 가이아와 마스크를 끼고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참회하자. 5)우리는 상생 생태계 복원에 묵묵히, 꾸준히 모범을 보이자.

명의는 남들이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환자 스스로가 의사임을 깨닫게 하고 자연면역을 하도록 한다. 타력은 마중물이다. 명장의 가치는 전쟁이 나면 빛난다. 그러면 독식, 독선, 독단 마음의 병은 누가 고치나? 코로나는 과학자가 마중물을 주고 지역방역과 개인방역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근본문제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상생·공생 관계회복이다.  바로 사은 신앙이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恩), 은본주의(恩本主義)가 우리의 방향이다. 

/신림교당

[2020년 9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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