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13장에서는 “신앙불교, 학자불교, 실행불교를 다 갖춘 불법이 참 불법이니라”고 했다. ‘참 불법’의 조건을 밝힌 법문으로, 여기서 말하는 참 불법은 새 정법회상의 불법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과거에는 이 셋 중 한 두 가지를 중시하거나 아니면 셋을 전혀 다른 불교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정산종사는 새 정법회상의 불교는 반드시 이 셋을 원만하게 갖춰야 하며, 그것을 ‘참 불법’의 기준으로 제시해 준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불교, 학자불교, 실행불교란 어떤 의미일까? 

먼저 학자불교는 ‘불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해 본다. 정산종사가 말씀한 학자불교는 도학(道學) 곧 부처의 지견을 얻는 불교를 말한 것이 아닐까? 대종사가 ‘멀지 않은 장래에 견성한 큰 학자가 나의 말을 인증할 것’(『대종경』 변의품5)이라고 한 것처럼, 학자불교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의 지혜를 얻는 불교를 말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실행불교는 무엇일까? 이는 부처님과 같은 실행의 힘을 얻은 사람들의 불교를 말한다. 초기불교는 선정에 들어 해탈하는 것을 중시했다면, 대승불교는 반야의 지혜를 얻는 것을 중시했다. 하지만 새 정법회상인 원불교는 대종사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보은의 실천을 통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 따라서 새 정법회상에서는 이런 보은의 실천을 오래 계속하는 가운데 깨달음이 얻어지는 것이지, 과거 불교처럼 수행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행불교는 보은행을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통해 모든 사람이 부처님의 위력을 얻는 불교를 말한다. 『대종경』 변의품 25장에서는 ‘공부의 요도를 지내고 나면 부처님의 지견을 얻을 것이요, 인생의 요도를 밟고 나면 부처님의 실행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학자불교와 실행불교는 바로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온전하게 실천하는 불교를 말씀하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앙불교는 학자불교와 실행불교의 뿌리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대종사는 새 정법회상을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널리 행해지는 세상”이라고 했다. 곧 삼라만상 모든 존재에는 법신불의 본연청정한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믿고, 모든 존재를 부처로 섬기라는 것이다.

학자불교는 바로 ‘나’와 ‘천지만물’이 다 부처라는 것을 알고 언제 어디서나 반조해 잊지 않는 밝은 지혜를 말하며, 실행불교는 일상 속에서 항상 주변의 모든 존재를 부처로 섬기는 실천으로 영원한 세상을 통해 자신의 복덕을 장만하면서도 세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실행의 힘을 말한다. 신앙불교와 학자불교, 실행불교는 셋이 되지만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실현되는 ‘참 불법’의 실천을 말한다는 점에서 근본은 하나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9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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