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시의 사진을 찾는 방법일 것이다. 교단 초기의 사진을 살펴보며 교단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한 장의 기록물로 볼 수 있다면, 쉽게 교단사의 한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호부터 연재되는 기획은 사진을 통해 교단사를 살펴보는 코너로 ‘사진으로 읽는 교사이야기’이다.

한 가지의 주제나 또는 하나의 사건에 사진자료를 모아 그 사진의 내용과 당시의 배경을 설명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준비했다. 대종사의 역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단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당시 사진을 살펴보며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첫 시작은 소태산 대종사 성탑을 주제로 정했다. 성탑의 변천과정을 교단사 속 사진으로 설명한다.


사진1. 총부내에 성탑이 건립되기 이전

사진1 총부내에 성탑이 건립되기 이전 모습
사진1 총부내에 성탑이 건립되기 이전 모습

많은 교도들이 처음 총부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대각전과 성탑을 찾아 참배한다. 소태산 대종사의 성탑이 현재의 모습이 있기까지는 몇 차례 변화의 일들이 있었다. 원기28년(1943) 6월 1일 소태산 대종사 열반했을 때 당시는 일제의 압력으로 익산 공동묘지에 성해를 임시로 안장했다.

사진은 처음 다비를 하고 모셨던 초기의 모습이다. 직사각형의 비석이 세워져 일원상을 그려 넣고 그 아래에 ‘소태산일원종사지묘’라 새겨진 이 모습이 현재 대종사 성탑이전 초기 역사이다. 이후 ‘대종사 성업봉찬회’가 구성돼 현재 소태산 대종사 성탑의 위치로 옮겨서 조성된 것이다.


사진2. 대종사 성업봉찬회 성탑 건립

사진2 성탑둘레석
사진2 성탑둘레석

원기34년 4월 25일 ‘대종사 성업봉찬회’사업의 일환으로 영모원 송림안 현 위치에 대종사 성해(聖骸)를 모시고 성탑을 봉건하면서, 대종사 열반 후 6년 만에 총부 경내 성탑에 모시게 된다. 제1대 성업봉찬보본사업이 시작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처음 성탑을 봉건 할 당시에는 성탑의 모습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성탑 주위로 석물을 세우고, 그 석물에 구멍을 내 쇠사슬을 이어진 모습이 현 소태산 대종사 성탑의 첫 모습이었다.
 

사진3. 열반 10주기, 성비 건립

사진3 성비
사진3 성비
사진3 성비, 제막식에 모여든 재가출가 교도
사진3 성비, 제막식에 모여든 재가출가 교도

이후 대종사의 성비를 성탑 옆에 건립하게 되는데, ‘제1대 성업봉찬대회’가 열리던 원기38년(1959) 대종사 열반 10주기를 맞으며, 6월 1일에 조성했다. 제명(題銘)은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竝序)’이다. 

소태산대종사성탑과 구분해 ‘성비’로 불리며, 5.83m의 큰 비이다. 성비에는 정산종사가 친히 지었던 ‘소태산대종사 비명병서’를 새겼고, 비문에는 소태산 대종사가 후천개벽 시대의 주세성자이며, 원불교는 미래세계의 주세회상임을 밝혔다. 


사진4. 현재 성탑의 모습 

사진 4. 둘레석을 걷어내고 병풍석을 세워 십상(十相)을 장엄한 현재 성탑모습
사진 4. 둘레석을 걷어내고 병풍석을 세워 십상(十相)을 장엄한 현재 성탑모습

소태산 대종사 성탑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경위는 원기73년 원불교창립 제2대 및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 성업봉찬회가 진행되면서이다. 쇠사슬로 이은 석물을 들어내고, 주변에 병풍석을 세운 뒤 동판으로 대종사십상(大宗師十相)을 새겨 붙였다. 

한 번씩 총부 순례를 안내할 때면 가끔 누군가 질문을 한다. 대종사의 성탑은 언제 건립됐으며, 성탑옆의 비석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느냐고. 그럴 때마다 한번쯤은 대종사 성탑의 변화된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 

교단 초기 사진자료를 통해 대종사 시대와 정산종사, 대산종사 시기의 역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지순례와 선진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만큼 값진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성지순례는 선진들의 얼을 체받는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며, 교단의 역사가 담긴 사진 한 장도 그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2020년 10월 0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