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교도
김진성 교도

[원불교신문=김진성 교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원불교란 종교를 가지고 태어났고 거의 모든 친지들이 원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원불교를 신앙의 대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미 생활의 일부였고 교당은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공간으로 익숙했기에 별도로 교전 공부나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와는 다르게 성인이 된 이후에 스스로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선택해서 오시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분들과 대화하면서 ‘나는 왜 원불교를 신앙·수행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얼마 전에 동해에 갔다가 주차하면서 생긴 일이다.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가 있어 주차하려고 하니 어떤 신사분이 창문을 두드리셨다. “왜 여기에 주차해요?” ‘경차인 내 차와 나란히 주차된 게 싫다는 표현을 돌려서 말한 거였나?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전에 여사님은 “그냥 우리가 다른 자리로 옮기자”라며 차에 탔고, 그분들은 내 앞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당황스럽다며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그저 웃어버리고 말았다.

설법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때도 더러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 얼굴 보러 간다는 핑계로, 교당 카페에 과자 갖다 주러 간다는 핑계로, 강남교당 방송실 자막 넘겨야 한다는 핑계로라도 꾸준히 교당 출석을 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으로 내 기분을 정하지 않는 것, 그 순간 ‘이게 뭐지?’ 하면서도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알게 모르게 연습이 되고 있었나 보다.

동해에서 만났던 분들처럼 힘들게 일한 만큼 자신들의 삶에서도 만족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기에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시한 채 무조건 좋은 것들만 추구하는 모습들도 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행태이다. 과연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시하고 좋은 것, 예쁜 것만 바라보고 지향하는 것으로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까?

사람은 오장육부가 연결된 유기체이고 마음까지도 포함해 생각해 본다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알아차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고 다독여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원불교를 신앙·수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음이 경계를 당해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게 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교전을 읽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생활에 녹여내어 실천하는 것, 교전이나 설법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실제 나의 생활에서 대조해보는 것, 경계가 일어났을 때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 내 마음의 깊이를 가늠하게 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허용범위를 넓혀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30대보다는 훨씬 더 여유로운 40대를 바래본다.

다양한 모습들과 생각을 경험하고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살필 수 있고 사물이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강요하지 않는다. 솔선수범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원불교 교화의 방식이다. 느리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많은 경험을 하지 못한 젊은이에 불과한 나의 상황이지만 여유로워지는 과정을 함께 경험했으면 한다.

/강남교당

[2020년 10월 0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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