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교도 / 목동교당
김경호 교도 / 목동교당

[원불교신문=김경호 교도] 천지의 변함없는 운행에 따라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다가왔다. 예년과 다른 점은 단지 유달리 심했던 여름 수해의 상처와 선진국들조차 망연자실한 코로나19라는 아주 특별한 업장을 지닌채, 금풍은 여전히 맑고 소슬하다. 교당방문은 물론 지인들조차 만나기가 조심스러운 때인지라 서로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의 역할이 차단돼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서울 근교에 다니던 산을 찾아봤다. 여건이 달라졌음인지 평소에 무심코 대했던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이 유난히 달라 보인다. 그 속에는 “이 세상에 크고 작은 산이 많이 있으나 그중에 가장 크고 깊고 나무가 많은 산에 수많은 짐승이 의지하고 살며….” (대종경 불지품 1장)말씀도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산의 덕목의 하나인 포용성 때문이리라. 산은 남녀·노소·빈부·선악 등과 관계없이 오는 자는 무조건 포용하고 받아들인다. 남녘의 어머니산이라 불리는 지리산 자락에는 “지리산에 들어온 사람 중 굶어 죽은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이 포용성이야말로 종교의 덕목이요 성자의 자비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세속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각각의 사연을 안은 채 산을 찾는 이유가 되리라. 또한 산을 찾는 사람 중 한 사람도 강제로 가는 사람이 없으며 제 나름대로 산을 즐긴다는 점이다. 각자의 체력과 여건대로 둘레길을 순례하거나, 정상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 여러 날에 걸쳐 능선을 종주하거나, 또는 간단한 침구를 가지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비박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전문성을 갖춰 해외 원정하는 등반가 등 각자가 자신의 산행에 만족해하고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산의 덕목 속에 이 시대의 종교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목표가 내재해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진정한 위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큰 질병의 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위축과 그에 수반하는 경제약자의 빈곤문제와 대면의 통제로 인한 교육 및 문화예술 공연의 단절은 의식주만으로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정서적 결핍을 초래한다. 더욱이 장기간의 통제에 따른 피로감과 나도 혹시 감염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더해 우울과 분노의 감정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렇게 번뇌가 끊고 있는 세상의 화택에 청량수를 뿌리고 안심과 위안을 줄 수 있는 큰 산은 어디에 있을까. 원불교는 유달리 산이 많다. 영산, 변산, 익산 등 성지를 비롯해 소태산을 조종으로 한 법맥의 큰 줄기는 거봉들로 이어지며 대간을 이루고 있다. 그 품이 얼마나 너른지 유·불·선 및 세계의 사상과 천경만론을 다 포함한다.

그 속에 선연복덕의 우리 교도들은 수행의 깊고 얕음과 법랍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일원의 법은을 누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세상에 회향해야 한다. “건져주 살려주 우짖는 저소리”를 듣는 불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한 자락의 산을 내주어야 한다. 괴로움 바다와 불붙는 집을 단지 준엄한 인과로만 몰아세우기보다 진심 어린 눈물 한 방울 함께 흘려줄 수 있는 동체대비 자비심의 불자가 필요하다.

교도 각자가 제 나름의 산이 되어 주변의 인연들을 품어주며 영혼의 안식과 영생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신령한 산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하여 크나큰 불은을 함께 즐기는 대승의 낙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번 가을 산은 어떤 만다라를 펼쳐줄지 심히 궁금해진다.

/목동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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