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최운정 교수] 인문융합, 생명존중(Convergence with Humanities & Respect for Life). 원광대학교의 교육방침을 설명하는 단어다. 두 글귀에는 인간중심, 인본주의를 함의해 메디컬 분야의 여러 학과를 보유한 원광대학교가 홍보에도 널리 인용하고 있다.

자살율 1위, 출산율 최하위
생명존중에 반하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사례로 ‘OECD 회원국 중 2020년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인구 10만 명당 27명으로(2019년 기준), 이러한 슬픈 기록은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인, 청소년, 연예인 자살 등 각각의 특징과 원인이 다를지라도 자살환자들은 경제적인 이유가 그 바탕에 상당할 터인데, 실상 자살환자 치료의 모든 진료비는 전액 개인 부담으로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어 치료 후 보험공단에서 구상권을 통해 개인에게 청구된다. 

출산율 저하의 사회적 해석과 대책을 논의하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분만의료수가(醫療酬價)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미국의 1/5이라는 사실은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외상환자, 응급수술 환자들의 의료수가 또한 선진국의 1/7로 최하위를 기록한바 산부인과, 외과 등은 의료계에서 특히 3D 직종으로 의사들의 수련 기피 과가 되어버렸고, 소위 바이탈(vital,생명)을 다루는 과들에 대한 의사들의 인기 하락 또한 이미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의사파업과 진료 위기
생명존중과 관련해 인명(人命)이 최근 이슈화된 것은 지난 8월, 9월 ‘의사파업’으로 빚어진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진료 위기였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의 대혼란은 없었더라도 생명을 담보로 했다는 것만큼은 의료계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윤리적인 숙제인 것은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더욱더 모범을 보여야 할 선배 의사로서, 가르쳐서 줘야 하는 대학교수(敎授)로서 그동안의 지도역량은 무엇이었고, 젊은 후배 의료인의 주장은 무엇이며, 앞으로 미래의 의료복지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을 알아 가는 데 많은 혼동이 있다. 

앞서 언급한 우리사회의 자살율과 저출산율 문제를 봐서도 의료계의 양심과 재량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다.  사회와 국가가 같이 고민하며 사회 안전망 구축과 건전한 사회 구현을 통해 공동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 사회 모두의 종합적이고 공동적인 접근이 해결의 시작이며 종교 또한 생명존중 사상이 근본인 만큼 대책의 반열에 함께 해야 한다.
 

굶주리고 메마른 아이들의 현실
생명존중으로서 인류가 처한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영상이 지상파 TV를 통해 보여주는 국제구호단체들의 후원독려 홍보영상이다. 월드비젼,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등 연예인들의 가슴 울리는 목소리와 굶주리고 메마른 아이들을 하루에도 평균 10번 이상은 자연스레 보게 된다. 정말이지 밥 잘 먹고 보게 되면 괜스레 미안해지고 전화기가 만져지는 것이 사실이다. ‘생명존중, 제생의세’라는 글귀와 상반되는 지구촌의 현실을 어찌한단 말인가? 

해결의 실마리를 장 지글러(2000)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저서에서 찾아본다. 부자들의 쓰레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 기아는 생물학적 자연도태인가,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 기아를 악용하는 국제기업, 도시화와 사막화의 종국 등을 담은 글로서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얽혀져 있고 서로 악순환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자본중심과 경제우선으로 생명존중의 공동선은 경시된 종국의 사태를 우려한다. 예컨대 회사의 이익만 대변해 네슬레맨·구글맨·아마존맨 등 회사의 이념만이 남게 된 결과, 국가라는 공동사회의 기능조차 무너진 세상의 이윤추구·약육강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오염과 일회용기의 사용은 회사의 정책과 맞물려 있으며 코로나19와 함께 도래한 언택트 시대에 더욱 문제가 되어 산처럼 쌓여만 가는 스티로폼산, 플라스틱산 쓰레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기업윤리, 자본우선이 낳은 생명위협 요소라고 한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총회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지구 임계온도 1.5도 목표’ 설정 등이 우리 인류가 처해 있는 인류악에 대한 공동선으로서 제안되어 그린피스 등 원불교환경연대의 ‘1.5℃를 기억하자’라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1인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인간의 생명이 기후와 지형의 문제로 인해 위협받는 것보다는 정치·경제 질서와 얼마나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생명구제의 단적인 예시인 것이다. 생명 존중의 당위성은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물리학적·생물학적으로 생태계 내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과이자 사은의 연결이다. 마찬가지로 개인과 가정,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도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는 생태계인 것은 분명하다. 
 

생명존중의 사회적 실천 동참해야
이러한 비인류적인 회사의 이념을 선순환의 정책으로 선도할 수 있는 일이 종교의 역할이고 종교의 신앙이 그 해결일 수 있다. 장 지글러의 작은 희망인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하고 자각하는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에 희망을 건다”라고 했듯이 인간의 자각과 자성이 첫 시작일 것이다. 그 희망은 인류애라는 공통적인 합의이며, 도덕, 문화, 경제적 쟁점보다는 인간을 위한 고유한 배려이며, 인류의 우수성에 근거해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에서도 발전된 지식과 기술을 적극 활용해 생명존중의 사회적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 생명존중은 병원과 진료실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연결된 우리 사회의 철학적인 일상 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다룬 의사로서 사명과 인간애를 되찾는 ‘기쁨의 도시(City of Joy)’ 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롤랑 조폐(Roland Joffe)의 데뷔작이 바로 1984년에 만들어진 영화 킬링필드였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 문제의 첫 화자로 의사를 등장시켜 ‘고독의 끝에 있는 겸허함과 그 속에 있는 경건함’을 알리고자 했다. 

필자도 캄보디아, 네팔, 연변, 아프리카로 20년간 해외 의료봉사를 갈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봉사란 일방적인 단순 시혜가 아니며, 참여자들이 느끼는 감동과 보람은 그 이상으로 보답하는 쌍방향 사회적이고 인류애적인 소통임에 틀림없다. 
 

제생의세의 본의
정산종사는 원기33년(1948) 교헌을 제정 반포하면서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원불교의 목적과 목표로서 일체 생령을 도탄으로부터 건지고 병든 세상을 치료한다’라고 했다. 성불제중과 같은 의미로 쓰이나 제생의세는 ‘제중’에 더 비중을 둔 개념으로 세상의 병맥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다. 원불교 영어교전에는 ‘Save sentient beings, Cure the world’로 해석되어 있어 ‘의술로서 세상을 구한다’라는 좁은 의미보다는 지각이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구제를 통해 온 세상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더 강조하면 ‘스스로를 먼저 제도하고, 무지, 빈곤, 질병으로 병든 세상을 구제한다’라는 넓은 실천 이념으로 적극적인 교화 자세와 사회참여의 의지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말이다.

정산종사는 원기42년 개교 경축식을 통해 “오늘을 기념하여 우리 대종사의 개교정신을 더욱 철저히 인식 체득하여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신 제생의세의 정신을 실현하고 정신개벽의 마음문명 세계를 건설하여, 영육이 쌍전하고 이사(理事)가 병행하는 일대 낙원에 모든 동포가 함께 즐기자”고 제생의세 본의를 밝혔다(정산종사법어 경륜편19장).

대종경 전망품 2장 ‘법의대전(法義大全)’ 에 “야초점장우로은(野草漸長雨露恩) 천지회운 정심대(天地回運正心待): 들풀은 점점 우로(雨露)의 은(恩)에 자라고(중생은 성현의 훈증 속에 범부를 뛰어나 부처가 되고), 천지의 돌아오는 운은 바른 마음을 기다리더라”라는 개벽법문 한시의 일부가 성불을 이루면서 제중의 인류애적 삶을 추구해야 할 우리 원불교 신앙인들이  지금의 난제를 풀면서 기다리는 지혜와 용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ㆍ원불교 생명윤리연구회 위원

[2020년 10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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