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교무
허석 교무

[원불교신문=허석 교무] 어느 날, 늘 입던 하절기 선복을 입고 아침 좌선에 임했는데 온몸이 상당히 춥게 느껴졌다. 그제야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참 무디게 살았네.’ 옷장을 열어보니 아직도 여름옷이 한 가득했다. 계절이 변화하면 그에 맞게 옷을 바꿔 입어야 하듯, 우리의 생활과 사고방식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서 늘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후천(後天)개벽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선천(先天)의 묵은 질서와 관행 속에 사는 모습을 “날 밝은 줄 모르고 깊이 잠자고 있는 사람. 찬바람과 얼음 속에 씨 뿌리는 사람. 여름옷을 입고 추위에 떠는 사람”(대종경 전망품 7장)에 비유했다. 철모르고 씨를 뿌리면 거둘 것이 없듯, 지금이 새 시대임을 알지 못하고 공부와 사업을 하면 그 결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천개벽 시대란 어떤 시대를 말하는가? 정산종사는 “인지(人智)가 새로 개벽되고 국한이 점차 확장되어 바야흐로 대 세계주의가 천하의 인심을 지배”(정산종사법어 도운편 33장)하는 시대라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국가와 지역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진실과 거짓을 숨길 수 없는 밝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새 시대를 잘 살아가려면 새로운 정신과 삶의 질서가 필요하다. 『정전』 ‘영육쌍전법’에서는 “이제부터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묵은 세상의 낡은 정신과 생활을 뜯어 고치는 사실적인 작업이 바로 정신개벽이다. 

이는 도학(道學)과 과학(科學)을 병진하고, 영(靈)과 육(肉)을 쌍전(雙全)하며,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생활 속에서 불법(佛法)을 실천하는 산 종교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산 종교의 교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부처가 곧 활불(活佛)이다. 

정전 ‘개교의 동기’에서는 우리가 정신을 개벽해 가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信仰)’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訓練)’을 말하고 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란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원리를 밝힌 종교를 신행(信行)해 세계를 한 집 삼는 큰 정신과 제생의세(濟生醫世)의 서원(誓願) 아래 무아봉공(無我奉公)을 실천하는 신앙을 말한다. 또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도(道)와 덕(德)을 동정(動靜) 간 훈련해 참된 인격을 갖추고 생활을 변화시켜 가자는 것이다. 

정신개벽은 특정인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성자의 깨달음이나 특정 종교가 만들어짐으로써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 한명 한명이 개벽의 주체이다. 이것이 어찌 한 순간에 이뤄지겠는가? 지금 이 순간, 나의 몸과 마음, 생활에서부터 정신개벽은 시작되어야 한다. 

 /원광대학교

[2020년 10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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