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일원) 교수
김은진(일원) 교수

[원불교신문=김은진 교수] 격미한 수준의 짜증으로부터 강렬한 격노에 이르기까지, 분노로 인해 자기 주체를 못하는 이들을 우리는 쉴 새 없이 마주한다. 피해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짜증, 분노를 표출해 버리고 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분노는 위협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될 때 분노가 일어날 수 있고, 심각한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에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분노가 표출될 수 있다. 하지만 분노는 공격적인 행동을 동기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칫 파괴적일 수 있어 타인은 물론 본인에게 해로울 수 있다. 너무 자주 발생하거나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지나치게 부적절하게 표현될 경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고 만다. 


분노, 나의 심장에 독화살을 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자주, 작은 일에 쉽게 분노함으로써, 나의 심장에 독화살을 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무엇보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 우울이 그 이면에 깔려 있다. 약육강식의 사회질서, 경제구조의 양극화 등으로 인한 불안이나, 사회의 발전 속도에 비해 자신은 정체하고 있다고 느끼며 지각하는 우울이 자리한다.

성과중심의 무한경쟁과 물질만능주의, 만성화된 실업, 고용불안, 상대적 박탈 등이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면서 이들이 겪는 우울, 불안, 공포들이 분노의 앙금을 형성한다. 축적된 분노는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되고 마는데, 속으로 오래 묵혔던 분노일수록 그 양이 많고 정도가 격렬하기 때문에 그 표출방식이 매우 공격적이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찬란한 물질적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내적인 공허함, 충족되지 못한 삶의 고통은 훨씬 증가하고 있는 듯하다. 

현대인들의 불안, 우울, 분노에 대해, 고통을 강요하는 주범이 한두 명의 이웃이 아니라 잘못된 그 사회 자체라며 사회 구조적인 해법 마련이 우선적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본 지면을 통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는 스스로의 노력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려 한다. 자신의 책임은 부정하고 불행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태도, 자신의 마음은 방치한 채 바깥에서 구하는 행복은 결코 진정한 평화와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고 다스리려는 기본적인  노력을 하면서, 사회구조적인 장치 마련을 병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기파괴적 감정들의 해독제, ‘따뜻함’·‘온화함’·‘자비로움’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혹은 나 스스로에게서 문득 자비로운 마음을 느낄 때 어떤 해로운 마음이 자연스레 사그라드는 경험을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나에게 모욕을 준 그 인간에게 어떻게 앙갚음을 할까 어떻게 복수를 할까 원한에 사무치다가도, 진심으로 나의 고통에 공감하며 나를 걱정해 주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순간만큼은 나의 독한 기운은 스르르 녹아버리고 만다.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는 인간을 어느새 원수로 삼고 적으로 돌려 원망하는 마음으로 일관하다가도, 문득 우리네 삶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나를 적실 때 그 순간만큼은 내 안이 온통 자비로운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나를 괴롭혔던 내 안의 뜨거운 기운은 어느새 찾아볼 수가 없다.

설령 예로 든 상황과 형태는 다를지라도 이렇게 진정한 자비심을 어느 순간 만날 때,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던 분노와 증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것은 자비로운 마음의 신기한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온화함, 자비로움과 같은 따뜻한 감정은 어떻게 치유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진화심리학과 생리심리학적 접근에 따른 최근 연구에 의하면, 뇌에는 다양한 정서를 유발하고 반응하도록 만드는 여러 유형의 신경 경로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제시된 정서조절 체계 모델은 이의 치유기제를 잘 보여준다. 


세 가지 유형의 정서조절 체계
우리의 뇌는 감정을 경험할 때 어떻게 작동하는가? 서로 다른 기능과 원인으로 진화되어 온 세 가지 유형의 정서조절 체계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위협-보호 시스템’으로, 이 시스템이 작동했을 때 마음의 모든 기능들은 안전과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주의, 생각, 행동, 정서, 동기 등을 모두 위협에 초점 맞추게 된다. 즉 위험을 재빠르게 탐지하고(초점화되고 편향된 주의), 불안, 분노, 혐오감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우리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며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하도록 한다.

두 번째는 ‘추동-활력 시스템’으로, 이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찾도록 안내하고 동기를 부여하여 긍정적 감정을 제공해 준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좋은 선물을 받을 때 흥분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성취에 초점을 둔 추동들은 자칫 방어적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활성화된 긍정적 감정과 동기들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울 수 있지만, 추동과 목표가 방해되거나 막히면 위협-보호 체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 목표를 포기하게 될 경우 분노나 우울의 감정에 빠질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진정-안전 시스템’으로, 이 시스템은 진정과 휴식, 평화로운 느낌을 일으켜 균형을 회복하도록 도와준다. 뭔가를 갈망하거나 원하지 않고 내적으로 평온한 상태로, 추동-활력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고조되고 흥분되거나 성취감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긍정적 감정이다. 엔도르핀이나 옥시토신의 방출을 유도하여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만족감과 평온감을 가지게 하며 느긋하게 집중하고 탐색할 수 있게 해준다. 충만감, 만족감, 안전한 느낌이라 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보호받는 느낌과 같은 안녕감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세 가지 정서조절 시스템은 모두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만, “이들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최고의 기능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화과정에서 위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위협-보호 시스템이 구조화되어 왔고 개인이 많이 다루는 쪽으로 특히 발달되어 왔다. 분노로 가득 찬 반추로 위협-보호 시스템을 계속 자극했을 수 있고,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끝없는 억압을 통해 추동-활력 시스템을 강화시켜 왔을 수 있다. 따라서 이의 균형을 위해서는 온화함, 자비로움과 같은 따뜻함의 감정을 의도적으로라도 불러일으켜 진정-안전 시스템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요컨대 혼란스러운 내적 정서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사랑과 연민의 따뜻함으로 지켜보는 훈련을 할 때, 어느새 위협을 진정시키고 평온을 얻을 수 있다. 새로운 관점의 재건과, 고통스러운 감정 및 생각에 압도되지 않는 균형 있는 관점의 견지가 가능해지게 된다. 


논리에 앞서 귀한 것은 따뜻한 감정이다
우리는 종종 ‘행복해야 웃지’라는 말에 ‘아니야, 웃어야 행복해진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마찬가지이다. 사랑과 연민에 기초한 통찰과 느낌에 주의를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가득한 상황에서 ‘편안해야 따뜻함이 나오지’라고 흔히 말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안에 따뜻함을 불러일으킴’이다. 마음과 뇌의 피로는 분노뿐 아니라 타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배려가 없어지는 형태로 나타난다.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 자비의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리에 앞서 기본이 되어야 할 귀한 것, 바로 “따뜻한 감정”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는 저 태양보다 다습고 밝은 힘이 있나니, 그러므로 이 자비가 미치는 곳에는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이 녹아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잔인한 마음이 녹아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인색하고 탐내는 마음이 녹아서 혜시하는 마음으로 변하며, 사상(四相)의 차별심이 녹아서 원만한 마음으로 변하여, 그 위력과 광명이 무엇으로 가히 비유할 수 없나니라.] 
-대종경 불지품 2장-

● 김은진(일원) 교수
ㆍ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ㆍ경희대 교육심리박사
ㆍ명상심리전문가

[2020년 11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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