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어르신들의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는데 지하철 경로우대 제도가 새로운 세대 갈등의 도화선으로 부상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요금을 안내는 노인이 적자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세 부담을 떠안고 있는 청장년층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뉴스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억지를 부리는 노인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 할 수 있다. 심지어 행패를 부리는 상황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노인 비하 표현이 서슴지 않게 나오기도 한다. 기자도 노인들에 대한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서울에서 새벽 지하철을 타며 노인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새벽 일찍 좌석은 모두가 만석이었고 일부 늦게 탄 노인들이 많이 서 있었다. “이른 시간에 어디를 가시느냐”고 여쭤봤다. 노인들은 청소하러 가거나 일용직 일터로 가기 위해 새벽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지쳐 있는 것 같았으며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카락들은 반백 이상이었으며 입은 옷들은 허름했다. 그러나 눈동자와 기운에서 책임감이 넘치는 의욕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이 뇌리를 스쳤다.

저 노인들은 6.25 전쟁 시절에 태어나 5.16과 격동의 시기에 새마을 운동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터에서 살아왔을 수도 있다. 혹은 독일 탄광으로 독일 간호사로 이국 머나먼 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돈을 벌어서 고향의 부모에게 보내주던 젊은 시절들을 보냈었을 수도 있다. 그뿐이던가 젊음의 시간을 월남전에서 피 흘리며 죽음과 삶을 넘나들면서 국위를 선양했을 수도 있다. 또한 저 중동의 열사의 땅에서 풍토병에 시달리면서 피와 땀을 흘려서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을 수도 있다. 

저들의 시대의 참상들은 글이나 말로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겪어 보지 않았으니 그 아픔과 고통과 쓰라림은 직접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세대통합, 세대연대보다 세대 갈등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한다.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각 세대가 서로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

며칠 전 퇴임연령에 가까운 한 선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와의 대화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가진 경험과 안목을 느낄 수 있었다. 세대 갈등은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단에서도 선후진의 도가 잘 실행되고 있는가 반조해 봐야 할 것이다. “선후진의 모든 동지가 서로서로 업어서라도 받들고 반기라” 한 대종사 말씀이 새롭게 와닿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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