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류현진 기자] 코로나19 3차 대유행. 코로나 이야기를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오히려 코로나가 더욱 피부 가까이 다가왔다. 익산은 그동안 비교적 코로나 청정지역이었기에 코로나의 위협을 그렇게 가까이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 10여 일 만에 익산지역 확진자 발생이 60명을 넘어서며 매일같이 확진자 알림 문자를 받으니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게다가 직접 아는 지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 나의 생활반경 안에 확진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이러다 나도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문득 상상해 본다. 나의 모든 이동 동선이 공개되고 격리되어 사람들로부터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내가 방문한 곳, 나와 접촉한 이들까지도 코로나에 노출시켰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존재 자체가 민폐처럼 느껴져 몸이 아픈 것 외에도 심리적인 부담감과 아픔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상황. 코로나 완치 후에도 마치 보균자를 대하는 듯 직장에서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를 받고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도 생각난다.

새삼 이 한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사은의 공물(公物)’임을 알라고 한 정산종사의 법문이 떠오른다. “어찌하면 공심(公心)이 양성되오리까” 묻는 학인에게 정산종사는 “이 몸이 사은의 공물임을 알 것이요, 그러므로 보은은 의무임을 알 것이요, 인생의 참 가치는 이타(利他)에 있음을 알 것이요, 자리(自利)의 결과와 공익의 결과를 철저히 자각할 것이니라”라고 답한다(응기편 27장). 건강해야 보은도 할 수 있다고 사은의 공물인 몸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한 스승님들의 말씀을 요즘 들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의 몸에 대한 불공이 개인을 넘어서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단절된 채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서로가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아프게 되면 주변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코로나라면 그 파급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데 힘써야겠다.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자리(自利)의 결과와 공익의 결과를 자각할 수 있다. 

거리두기가 격상돼 식당과 카페 이용이 힘들어지자 파티룸 송년회 예약이 연말까지 꽉 찼다는 뉴스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지금 이 시기,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보은이다.

[2020년 12월 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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