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명 교도 / 용각교당
김원명 교도 / 용각교당

[원불교신문=김원명 교도]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를 따라 교당에 다니며 자랐다. 교당에서 어릴적부터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가르침을 배운 후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이 부처라고 생각했다. 부처를 대하듯 불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대종사의 말씀을 늘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경계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었다.

나의 경계는 23세 되던 해부터 시작됐다. 부자라는 중매쟁이의 말만 믿고 시집온 시댁, 남편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폐결핵 환자였고, 시아버지는 위암, 시어머니는 술 중독자였다. 별 수 없이 남편의 병마와 싸우는 한편 시아버지의 병 수발, 시어머니의 술주정을 받아내야 했다.

시어머니는 밤낮으로 술에 취해 살았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아버지의 병 수발은 커녕 갓 애를 낳은 내 머리 끄덩이를 잡고 욕설을 퍼부으며 “어머니라고도 부르지 말라”며 술주정을 부렸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에게 큰 잔을 들고 와 “이왕 죽을 바엔 먹고나 죽자”며 술을 먹여 결국 남편마저 술중독이 됐다. 내가 남편을 살리기 위해 주사를 놓으면 “주사 놓는다고 죽을 사람이 산다냐”며 방해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했기에 애기를 낳아 업고 논밭으로 다니며 농사를 지어야 했고, 돼지와 소 여물을 쑤어 먹여야 했다. 

그 후에도 억장 무너지는 일들이 계속 됐지만 이 경계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교무님이 가르쳐주신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가르침이 고비고비 마다 생각났기 때문이다. ‘원망하고 통곡하고 다투기보다 내가 내 맘을 다스려야겠구나’라는 서원으로 모든 힘든 일과 아픈 마음을 이겨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지난 날을 생각하기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한 번 그 생각이 꼬리를 물면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무님께서 ‘과거의 모든 순간이 다 좋았다’라고 생각하라는 가르침을 주셨고, 다시 떠오르기조차 싫었던 그 시절을 용서하게 됐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하면서 내 마음의 힘이 길러졌다.

나를 괴롭혔던 시어머니는 인욕의 힘을 갖게 하고 나를 가르쳐주기 위해 오신 부처님이다. 시아버지는 ‘진심은 통한다’는 이치를 알게 해준 부처님이다. 병든 남편은 내안의 자비심과 가여운 마음을 기르게 해준 부처님이다. 재산 문제로 나를 괴롭힌 시숙은 바로 내 안의 욕심을 보여준 부처님이다. 이렇게 마음공부를 하다보니 원망하던 어리석음은 없어졌고, 감사생활을 하니 자성의 계가 세워졌다. 교당에 더욱 열심히 다니면서 학문이 깊어짐을 느꼈다. 법력이 넓은 교무님의 말씀은 대종사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인지 더욱 깨닫게 했다. 

요즘 나는 살 맛이 난다. ‘내 안에 찬란하게 빛나는 아미타불을 찬탄하라’는 말씀을 받들어 염불하는 재미로 살기 때문이다. 염불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쁨이 솟아오른다. 지금의 삶이 내세에도 연장되는 것이니 아미타불의 품에 안겨 기쁜 마음으로 소풍 가듯, 놀러가듯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고 공부한다.

살 맛나는 나의 삶을 시로 적어봤다. 

세상에 처음 나올 때 그랬듯/세상을 떠날 때도 그렇게 가자//
내 삶이 평온했듯/갈 때도/홀가분하게/평온하게 갔다가/평온한 마음 그대로 오자//
늘 가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니/떠날 때도 그 마음 그대로 떠나자/돌아올 때도 그 마음 그대로겠지//
생로병사의 윤회도/내 삶 그대로의 연장이려니/그 맘 그대로 살자//
모든 것 다 내려놓고/떠날 일이 설레 지는구려//

[2020년 12월 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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