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수 의령교당 교도

태타원 송순봉 교무 인연
일원상 진리로 속깊은 공부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맑게 손이 시린 어느 초겨울, 진타원 손영수(66·眞陀圓 孫永粹·의령교당) 교도를 만나기 위해 고즈넉한 의령 골짜기로 들어섰다. 마을 끝쯤에 몇 채의 집이 있었지만 한 눈에 그의 집을 알아내고 초인종을 눌렀다. 집 입구 나무 울타리에는 일원상이 디자인돼 있었고 꾸민 듯 안 꾸민 듯 작은 마당과 검박한 집이 딱 그의 성정을 닮았다. 

할 말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를 설득해 차나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나에게 원불교는?’이라는 질문에 단박에 ‘스승’이라는 답이 나온다. 

“늘 마음에 스승을 모시고 살아왔고 평생 스승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정산종사님이 대종사님 말씀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셨듯이 저도 그랬습니다.”

원불교와 일면식도 없는 그가 자석에 끌리듯이 교당을 찾은 이유는 길에서 본 뽀얀 얼굴의 태타원 송순봉 교무 때문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송 교무가 들락거리는 마산교당은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궁금해 제 발로 교당을 찾아 입교한 것이 46년 전이다. 

“얼굴만 천사가 아니라 성품이나 설법이나 수행이나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보살이셨어요. 교무님 하시는 말씀이 바로 법이었고 교무님 앞을 지나갈 때는 발뒤꿈치를 땅에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교무님이 너무 좋아 온 몸으로 본받고 싶었고 그 교무님이 알려주는 원불교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교무님이 동으로 가라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면 서로 갔다. 그러다 결혼과 함께 서울로 옮기면서 40년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어느 날 청년회 훈련에서 반야심경 강의를 듣는데 바로 이 종교다 확 꽂혔어요. 이 종교면 되겠다 확실하게 마음을 정했습니다.”

태타원 송순봉 교무를 만나 원불교에 끌렸고 교리 공부에 눈을 뜨면서 그의 삶은 오롯이 교법이 생활이 됐다. 타고난 성격이 조용하고 선량하며 평소 삶의 가치관과 교법이 거의 일치해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9남매 맏며느리로 어른 모시고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숱한 경계도 멈추고 돌리면 다됐다. 조석심고, 좌선, 기도뿐만 아니라 모든 취사도 법대로 계문대로 다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교법대로 사느라 힘들어 몸이 상하더라구요. 멈추고 돌린다는 건 눌러놨던 것이지 법을 완전히 소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냥 종교인이었을 뿐, 법의 깊이를 몰랐던 것이지요.”

멈추고 돌리며 감사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끝없이 올라오는 경계는 그에게 의문을 남겼다. ‘이것이 진짜 대종사님 법이 맞나?’라는 화두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분별심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면 돌릴 것도 없이 
더운 물에 얼음 녹듯 
다 녹아내리더라구요. 
이제야 모든 법문 말씀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단장훈련 때 어느 교무님의 일원의 진리 설법 말씀에 눈앞이 확 밝아지더군요. 이거다, 이게 바로 진짜 대종사님 법이다 싶었고 일원상진리 공부를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대종사님이 코풀기보다 쉽다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정공법이 있는데 그동안 그 많은 세월을 왜 빙 돌아왔나 안타까웠고 일원의 진리 공부가 일반화되지 못한 현실이 아쉬웠다. 이때부터 그는 계문만 지키는 종교인이 아닌 공부인이 돼야겠다 정하고 진리 공부에 매달렸다. 

일원의 진리에 ‘일원’ 대신 ‘마음’을 넣어 궁굴렸다. ‘마음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마음은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마음은 일체중생의 본성이다.’ 우주만유의 본원이 마음이라는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남편 퇴직 후 귀촌하면 오롯이 이 공부만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진리 공부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40년 생활했던 서울을 떠나 갑자기 의령 산골로 들어와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계가 산더미같이 몰려왔다. 몸이 좋지 못한 그를 위해 시골로 내려왔지만 도시 사람이던 남편은 적응이 힘들었다. 남편의 경계가 고스란히 그의 경계로 넘어왔고 집을 지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충돌도 했다. 평생을 살며 큰 경계 없이 무난하게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다가온 경계는 참 힘들었다. 

“몇 년을 서로 옥신각신하다보니 결국 내가 포기하게 되더군요. 나를 내려놓고 남편을 다 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그때는 포기였고 지금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일원상진리 공부를 하러 내려왔는데 진리 공부할 시간 없이 경계를 마주하다보니 경계에서 진리가 드러났다. 그렇게 궁굴렸던 우주만유의 본원이 여기 있었다. 

“좋아했다 미워했다, 이랬다 저랬다 망상을 끓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상대가 없어요. 저 혼자 망상을 끓인 것이지요. 일원의 진리를 남편과의 경계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생활종교라고 하셨나 싶네요.”

처음엔 왜 분별심이 일어나는지를 시비했지만 이제는 하나가 둘로 나누어질 때 오는 것이 경계임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됐다. 분별심이 일어날 때 바로 알아차리면 상대의 말은 그에게 경계로 작용하지 못했다. 

“돌리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대로를 봐야합니다. 분별심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면 돌릴 것도 없이 더운 물에 얼음 녹듯 다 녹아내리더라구요. 이제야 모든 법문 말씀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그가 시골로 내려온 원인이었던 망막색소변성증은 최근에 더 악화돼 혼자서는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큰 번뇌임에도 그는 오히려 담담하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다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감사하다’입니다. 가끔 불안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 불안도 받아들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나에게 온 것이고 이제 새로운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2020년 1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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