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105년 교무훈련과 미주교무 간담회 문답

 

 

신성의 길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승을 의심하거나 신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어른들에게 은혜를 받기만 했습니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처음 모신 어른이 다산 김근수 종사이십니다. 10년간을 모셨는데, 다산종사께서는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떠나서 항상 공경심으로, 같은 마음으로 대하셨습니다.


언젠가 그 어른이 앉아서 양말을 빨고 계시는데, 내가 하겠다고 해도 절대로 안주십니다. 10년간을 모시면서 양말 한번을 못 빨아드렸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자력생활을 하셨습니다. 또 당신께서 다음날 10시 어디로 가신다고 하시니, 그날 아침 일찍 가서 구두를 닦아드려야겠다 생각하고 가보면 어느새 닦여있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시는 것이 빈틈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뭐라고 야단치시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도량 앞에 풀이 무성해져서 뽑아야겠다 생각하고 아침, 저녁을 미루다 일주일을 훌쩍 넘겼는데, 언제 가보니 풀이 싹 뽑혀져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마음이 죄송스럽던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두 번째 모신 어른은 법타원 김이현 종사이셨습니다. 그분은 진실로 모든 것이 법法이셨습니다. 취사 하나하나 하시는 것이 허물이 없으셨습니다. 


이 신信이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심하면 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는 왜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다 의심을 합니다.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의심하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의심이라는 것은 ‘저 어른을 스승으로 모시고는 내가 배워야겠다’는 그 마음자세를 잃은 것입니다. 스승은 아랫사람도 스승이 될 수도 있고, 동지가 스승이 될 수도 있고, 또 전체가 스승이 될 수도 있고, 부분 스승도 있습니다. 내가 저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려고 작정했다면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의심을 하게 되면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런 뜻이기 때문에 ‘스승이 있냐 없냐’는 그 사람의 복입니다. 스승이 없는 분은 정말로 복 없는 분입니다. 이 원불교란 큰 회상에 들어와서 스승 하나 못 찾았다면 이렇게 산해진미가 가득한데 먹을 것을 못 찾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수양 스승, 연구 스승, 취사 스승을 모시고 공부했습니다. 젊었을 때 이치와 교리적으로는 잘 알겠는데, 사물에 어둡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사물에 밝으신 어른들의 심법을 유심히 보고 그분들이 손님을 어떻게 접응하시는지, 교단에 큰 일이 생기면 어떻게 취사하시는지 마음속에 대조하게 됐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해야 되겠고, 내 판단이 옳다고 여겼는데, 스승님들은 다르게 취사하는 것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바로 물어보지 않고 오랫동안 놓아두고 연마를 하다보면 후에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하고 해오가 됐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운동으로 요동칠 때, 나도 총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교단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신도안에 계시는 대산종법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대산종법사께서는 이 말 저 말 다 들으시고, “너희들 몇 살이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에 너희들이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장 급해 죽겠는데, 20년 뒤에 하라고 하시니 몹시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났고, 정작 일할 때가 돌아왔는데 나에게는 실력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종법사님 취사하시는 것을 뵈니 어쩐지 부족하고 정확하지 않아 의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꼭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왜 저 어른은 저렇게 취사를 하실까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것이 또 화두가 됐습니다. 한 6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옳다고 생각했던 나의 중도中道는 좁은 중도였고, 종법사님의 취사는 갈수록 맞고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아 우리는 당장 그때의 상황만 보고 판단하는데, 저 어른은 삼세三世를 보고, 책임지고 취사하시는구나”하고 크게 깨친바가 있습니다.


만일 그때 대산종법사님을 의심했다면 연마가 안됐을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스승님을 믿는 마음이 있으니까 화두를 걸고 ‘어찌 그렇게 하셨을까’ 연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안 모시고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안 모시면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셨을 때는 의심 없이 모셔야 그 법이 나한테 오는 것입니다.

그 일 그 일 일심공부
일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종법사님께서는 일상에서 그 일 그 일 일심공부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참으로 공부를 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공부 잘하고 있는 겁니다. 마음에 힘이 쌓이지 않아서 고민이지, 지금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숙련熟練’의 문제입니다. 알고 모름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익히고 단련하느냐 그것이 관건입니다. 


우리의 공부는 온전, 생각, 취사의 삼학이 체가 됩니다. 경전연마를 흔히 사리연구라 하는데 실제 사리연구는 내가 닥치는 일, 내가 보는 하늘, 땅, 사람, 이것이 바로 경전經典입니다. 사리연구는 그 일 그 일에 있는 것이지 책을 보고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미운 마음이 나면 어떻게 마음을 써라 하셨지만 막상 미운 사람을 대할 때면 그 말씀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내 것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지혜가 아닙니다.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단순히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을 통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세계 사업을 하는 것이요, 엄청난 경전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매매 사사에 진리를 터득해가고 시비이해를 분석해 가는 표준을 잡아야 합니다.


온전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 당하기 전에는 미리 준비하고, 일을 당해서는 그 일 그 일 생각이 분산되지 않고 오롯하게 일심으로 공들이고, 일을 마치면 비우고 놓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공부는 일이 지나면 놓는 것입니다. 


경산상사님께서 신년법문에 ‘시시조공時時照空’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때때로 공을 비춰본다’는 뜻은 일할 때는 사심 없이 그 일을 하는 것이 공이 된 것이요, 일이 끝난 다음에는 반조와 성찰공부로 마음을 비워내는 공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내는 공부가 익어지면 일을 당해도 선입견에 묶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쌓아 놓아야 묶이는데 평소에 정리를 다 해 버렸기 때문에 어제 잘못한 사람이 와도 어제의 잘못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오늘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실제 마음공부입니다. 


그러므로 삼학은 산 공부요, 활선活禪입니다. 안으로 자기 마음도 단련하지만 어디가나 쓸모 많은 사람이 됩니다. 주변에 유익을 주는 그러한 분이 원불교 주인의 표상입니다. 
나는 글씨를 잘 못써서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왜 그렇게 부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글씨 잘 쓰는 분을 보면 힘이 하나도 안 들고 술술 쓰는데도 좋은 글씨가 나옵니다. 그래서 나도 한번 써보려고 하면 엉뚱하게 나옵니다.


우리의 일심공부도 똑같습니다. 마음에 ‘욕속심欲速心’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급히 하려는 마음이 나쁜 마음은 아니지만 안 되었을 때 자기를 비하하는 마음이 훨씬 커져버립니다.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나, 내가 10년을 공부했는데 겨우 여기까지 왔나, 나는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퇴굴심退屈心이 나오게 됩니다.


융산 송천은 종사께서 총부 예회에서 ‘이소성대以小成大’에 대해 설법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소성대를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이룬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언제나 큰 것이 목표가 됩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잘 달성되지 못하니까 마음이 안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융산님께서는 이소성대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법문해주셨습니다. “오늘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가 이루어지면 그 하나가 이루어졌으니까 기쁘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선을 하는데 기운이 단전에 잠깐 내려갔어도, ‘이만큼 기운이 내려갔구나!’ 할 때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생활 자체가 재미있고 작은 것 하나라도 이뤄지면 행복합니다. 그런데 욕속심이 있는 사람은 ‘내가 10년 했는데 오늘도 안 되네’ 그렇게 결과만을 바라보기에 괴로운 것입니다.


나는 이 법문을 크게 받들고 그 뒤로는 내 자신에게 먼저 칭찬하고, 못하는 사람이 무엇이라도 잘하면 “하나라도 잘했으니 이쁜 거 아닌가”하고 자꾸 격려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그래서 참 귀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자치교헌과 미국교화 비전
미국자치교헌 제정에 따라 향후 미국교화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미국자치교헌은 그 누구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종사님의 경륜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단의 방향과도 맞는 길입니다.
대종사께서 ‘천불만성이 나온다’ 하셨는데, 그 말씀은 실력 있는 도인이 많이 배출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실력이 있으면 그분에게 일을 맡겨서 그곳 상황에 맞게 교화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맞는 일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아마 그러한 생각으로 각 나라에 종법사를 둔다고 하신 것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40여 년 전 미국에 선교소가 두 개가 있던 그 시기에 종법사를 보내시려 했습니다. 규모와 형편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종사님의 교법을 그 지역에 맞게 펼 수 있는 실력 있는 인물을 보내서 그분이 중심이 되어서 교화와 전법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행정과 기타 제반 여건들을 들면서 어렵게들 생각하는데 나는 그것보다 현지에 종법사가 주재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 확신합니다. 


이제 교단은 종법사 1인이 좌지우지 하는 교단이 아닙니다. ‘이단치교以團治敎’의 정신으로 종법사가 주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수위단이 따라붙게 됩니다. 종법사와 수위단원이 하나가 되어 미국에 가장 최상위 공의公義를 모아 현지에 맞는 대종사님의 교법을 실행하자는 것이 이번 자치교헌 제정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사는 재가출가가 합심합력하여 이 문제를 개척해가야 합니다. 


또한 대종사님께서는 대종경선외록에 “나의 교리와 제도는 어떤 나라 어떤 주의主義에 들어가도 다 맞게 짜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법을 가지고 어느 곳을 가고 어떤 환경에 처한들 이 대도정법을 가지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경계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나라 법률을 지켜라’, 둘은 ‘그 나라 권력에 아부해서 나의 본의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그렇게까지 미래를 보시고 부촉하셨습니다.


50년 전 교단에 들어왔을 때 선진들께서 많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너희들 그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코 큰 사람한테 이 법을 역수입 할 런지 모른다.”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역수입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정신 차려 공부해라. 너희들 까딱하다 뒤집힐 수도 있다’ 그렇게 경책하시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을 접하고 보니, 대종사님 교법정신이 한국 사회보다 미국 토양에 적합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단순히 우리에게 경책하려고 하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자치교헌에는 한국과 같이 교정원, 감찰원의 행정체계를 고집하지 말고 ‘교화단 관리 본부’의 기능을 두는 새로운 시도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종사님의 정신을 그대로 실행하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교단이 발전하면 이런 저런 변화가 있어도 교화단 조직만은 남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대산종사님께도 받들었고, 역대 스승님께도 문답하였습니다. 물론 조직에는 중앙총부와 같은 행정력이 필요하지만 미국에서는 교화단이 중심이 되는 교화가 생명력을 가질 것입니다. 미국에서 그러한 교화적 결실을 거둬서 한국에서 역수입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2020. 11. 27. 마음공부19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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