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스스로 이겨내게 해주는 한의학적 생활건강법

김종진(종열) 교무 / 한국 한의학 연구원장
김종진(종열) 교무 / 한국 한의학 연구원장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 한분이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온다. 곧 중요한 일을 하러 먼 길을 떠나야 하는데 걱정이 보통이 아니다. 현대의학으로는 폐렴이나 기관지염도 아니고, 폐암은 더욱 아니고, 다른 어떠한 만성 폐질환으로도 진단되지 않는다. 그냥 목쉰 정도가 심한 특이한 증상일 뿐이다. 하지만 질병보다 몸 상태를 먼저 진단하는 한의학은 달리 본다. 맥을 짚어보니 난맥이었다. 상이 약하면서 뚜렷이 잡히지 않고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맥을 난맥이라 한다. 이러한 맥은 원기가 많이 손상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체질을 보니 평소 폐기능이 약한 태음인이었다. 태음인은 과로로 지치면 먼저 폐기능이 약해진다. 그래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다. 


이럴 때 쓰는 약이 녹용이다. 녹용은 폐기를 보하는 약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보약은 어떤 부분을 보강할지 정확히 목표가 있다. 기력이 약하다고 아무나 인삼 녹용을 쓰는 것이 아니다. 녹용이 듬뿍 들어간 태음인 보폐약을 쓰고 맥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맥은 증상보다 먼저 변하므로 향후 증상의 호전 여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예언대로 맥상이 먼저 돌아오고 길을 떠나기 전에 목소리도 돌아왔다. 태음인은 체격이 좋아도 폐기능은 약한 사람이 많다. 어릴 때부터 기침이 잦고 감기 후에 기침이 오래 남는다. 아기 때 폐렴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는 경우도 많다. 천식을 앓는 아이도 태음인이 많고 만성 기관지염도 흔하다. 폐기관지 계통의 이 모든 병증이 폐가 약한 폐허형 태음인 아이에게 잘 찾아온다.


어떤 할머니가 손주 손을 잡고 보약을 지으러 오셨다. 체격도 좋고 밥을 잘 먹는다니 딱히 보약을 먹일 필요도 없어보였다. 아이의 병력을 점검하다 보니 심한 천식을 앓고 있었다. 천식 발작으로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진 것만 최근 2년간 여섯 번이다. 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는 아예 못한다. 그러나 맥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때는 보약보다 치료약이 우선이다. ‘마황’이라는 약재가 많이 들어가는 태음인 처방을 쓰자 바로 평소 증상들은 없어졌다. ‘에페드린’이 많이 들어있는 마황은 현대의학뿐 아니라 한의학에서도 체질과 증상이 맞을 때만 조심스레 쓰는 약이다. 부작용 없이 증상이 호전됐다는 것은 약이 잘 맞는다는 증거이다. 병이 나을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꾸준히 치료한 결과 아이는 응급실에 가는 일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운동회 때 달리기도 출전해서 6명 중 4등을 했다. 상을 탄 것도 아니건만 아이는 너무나 기뻐했다.


폐허형 태음인은 평소 숨이 잘 찬다. 가만히 있어도 호흡 소리가 거친 사람이 많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가장 주된 증상이고 감기가 다 나은 후에도 오랫동안 기침을 한다. 기관지염을 거쳐 기관지 확장증 등에 이르는 사람도 많다. 중년에 들어서면 목쉰 증상이 자주 나타나고, 다른 체질보다 폐활량이 빠르게 줄어든다. 그 종착지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다. 나이가 들며 서서히 진행되는 이 질환은 처음에 가벼운 호흡곤란과 기침으로 출발해서 점점 호흡곤란이 심해지는 병이다. 폐 조직 말단이 파괴되고 막혀서 일어난다. COPD는 45세 이상 성인의 17% 정도에서 진단될 만큼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질환이다. 체질의학적으로는 대략 태음인 폐허형의 인구비율과 유사하다고 보여진다. COPD의 가장 중요한 발병원인은 흡연으로 알려져 있으나, 담배를 몇 갑씩 피면서 장수하는 이들도 있고 평생 흡연 없이 이 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흡연은 분명 강력한 위험요인이지만 체질은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위험요인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폐기능이 약한 태음폐허형의 사람이 흡연을 할 때 발병의 위험성은 가장 높아질 것이다. 


COPD는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네 번째로 흔한 사망원인일 만큼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앞에 언급한 태음인 폐허형의 질병들 중 급성폐렴 외에는 확실하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현대의학에는 없다. 따라서 자기 스스로 폐기능을 단련해서 예방해야만 한다. 보폐음식법과 함께 심폐 운동법, 호흡운동법 등의 생활관리법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그리고 40세가 넘으면 주치의의 진단에 따라 폐기능을 보강하는 보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숨차고 기침하는 모든 사람이 태음인은 아니다. 함께 나타나는 체질에 따라 다르다. 만성 기관지염이 있으면 소음인은 소화기능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거기가 가장 약한 곳이고 만성 질병이 시작되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소양인이라면 음허증이 있을 것이다. 음허증으로 인한 신장 비뇨기 생식 계통의 문제나, 혹은 음허증을 유발하는 수면 부족, 휴식 부족 등의 조건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체질에 따라 근본 원인이 다르므로 그 치료법도 달라진다. 이것이 체질의학이다.

 

[2020. 11. 27. 마음공부19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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