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덕임 선유플라워 대표

류덕임 선유플라워 대표
류덕임 선유플라워 대표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플로리스트(florist)는 꽃을 뜻하는 라틴어 플로스(flos)와 전문인 또는 예술가를 나타내는 접미사 이스트(ist)의 합성어다. 꽃에 대한 기본 지식과 정보는 물론 미적 감각과 색채 감각도 익혀야 하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려면 창의력도 필요하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플로리스트는 꽃을 다루는 예술가일 뿐 직업인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꽃집이 4만~5만 개인 점을 감안하면 직업인으로서의 플로리스트도 4만~5만 명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꽃을 좋아하고 꽃을 장식하는 기법을 배우는 플로리스트 체험만으로는 직업이 될 수 없고 취미에 머물게 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플로리스트로서의 철저한 직업교육을 강조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플로리스트 과정은 마이스터 과정까지 마치려면 평균 10년이 걸린다고 하며 대부분의 교육과정이 꽃에 대한 지식보다는 전문 직업인 교육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선유플라워’ 대표 류덕임(법명 도윤·울산교당) 교도도 직업인 플로리스트로서 꽃을 넘어 주로 고객을 이야기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 요구 파악에 집중합니다. 성별, 연령, 활용 재료, 색상, 디자인, 포장지 색까지 일일이 확인해서 제작합니다. 다른 물건과 달라서 꽃은 특히 고객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요.”

30년 경력의 전문가로서는 주문의 용도만 알면 대체로 고객의 요구가 파악돼 본인이 알아서 적절하게 제작할 수도 있으나 그는 늘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철저한 원칙이다. 그러다보니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 그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10년~20년씩 된 단골이다. 

울산시 남구 소재 꽃집 선유플라워를 들어서니 매장 가득 꽃들이 싱싱하고 한 쪽에는 은은한 파스텔 톤의 세련된 2단 화환이 눈길을 끈다. 2년 전부터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아들 배윤호(울산교당) 교도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 12월 열렸던 전국 신화환경진대회의 대상인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흔히 보던 화환 형식에서 벗어나 훨씬 더 화려하면서도 행사 후 꽃은 수거해 활용도 할 수 있으니 경제적입니다. 고객들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져 늘 새로운 시도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함께 일해 왔던 남편이 건강 문제로 일손을 놓아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아들이 이 분야로 마음을 정해 큰 힘이 되고 있다. 젊다보니 그가 다루지 못했던 분야로 확대해 가며 요즘은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30년 몸에 밴 직업철학, 
‘고객 중심’ 
교당에 꽃 꽂을 때 
가장 행복해

넓은 매장 한 쪽에는 매장 크기만한 규모의 꽃 냉장고가 따로 있다. 문을 여니 울긋불긋 온갖 아름다운 형상만큼이나 화려한 향기가 코를 찔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아이리스, 폰폼국화, 스토커, 프리지아뿐만 아니라 튤립, 카네이션 등 이 계절에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수입 꽃과 다양한 꽃꽂이용 베이스 소재로 가득한 꽃밭이다. 

“고객이 어떤 요구를 할지 몰라 가능한 많이 구비할 수밖에 없어요. 같은 꽃바구니라도 가격, 색상, 디자인, 꽃, 리본 등 100명이면 100명의 고객 요구가 다 다릅니다.”

빨간 장미 다발에는 흰 안개꽃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안개꽃이 없다며 돌아나가는 어르신 고객이 있는가 하면 젊은 고객은 촌스럽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축하 화분도 나이든 고객은 선물의 명분을 살릴 수 있는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만 젊은이들은 본인 기호에 맞아야 하지 크기나 가격, 명분에 좌우되지 않는다. 식물도 유행이 많아 고객의 요구는 자꾸 새로워지고 다양해지니 잠시도 배움의 끈을 놓을 수 없다.

“2년마다 열리는 작품 전시회에 참가하고 나면 가장 뿌듯합니다. 판매를 위한 작품들은 일정한 형식이 있지만 작품 전시회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작해내는 일이니까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꽃도 변화 속도가 빠르고 1주일이 안 돼 외국 생화가 싱싱하게 도착하는 시대라 새로운 소재, 미래 트렌드 등을 익히기 위해 규칙적으로 세미나에 참석하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30년 전 우연히 친구가 일하는 곳에 들렀다 꽃에 꽂혔다. 남편과 함께 꽃집을 시작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늘 꽃을 만지고 꽃을 살피며 꽃을 다루는 일이 직업이니 참 행복하다. 여자 친구에게 고백하기 위해 100일 동안 매일 장미 한 송이를 사러 오는 청년을 지켜보며 함께 설레던 때도 있었다. 

“결국 플로리스트란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사람이더라구요. 세상의 다양한 판매 물품들 중에서 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어요. 고객들 덕분에 제가 감사하지요.”

‘내 곁에 있어줘 고맙다’,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할게’, ‘사랑해’ 등 고객이 제시하는 리본 문구들을 보며 그들의 사랑과 감사가 고스란히 그에게도 전해져 행복이 전염된다. 그렇게 가는 곳마다 꽃만 보이던 그에게 어머니 천도재를 울산교당에서 지내며 원불교에 입교했다. 교당에 꽃을 꽂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이고 즐거움이라는 그다. 

“원불교를 알고부터 원망이 감사로 바뀐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원망스럽던 아버지도, 까탈스러운 진상 손님도, 수량 예측이 어긋나 시들어버린 재고 물량도 다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해에는 산업인력공단 연합 꽃 봉사활동을 위해 네팔로 출국했을 때 외에는 법회 결석 한 번 하지 않는 등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 교당에 빠지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인 불단을 꽃으로 장엄하는 것도 법회 출석 다음의 일이다. 

[2021년 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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