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원로교무
김종천 원로교무

[원불교신문=김종천 교무] 성자(부처님)란 흩뿌리고 지나가는 비에 갑자기 일어나는 사막의 잡초가 아니다. 정제되고 농축된 에너지가 뭉쳐 시절 인연을 만나 발아된 수정체의 인격이다. 시대가 요청하는 부처님들도 여러 가지다. 소태산은 불지품 23장에서 그들이 지나갔던 모습을 안주처, 사업장, 유희장의 세 가지 스타일로 집약해 줬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곤궁에 처한 시대다. 덜 생산하고 적게 소비해야 하는, 쉬거나 노는 부처님을 원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적으로 소위 ‘부처님’이라는 사람들의 방편에 둘리고 인생을 낭비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또 우리들의 무지로 인해 일시적인 약효밖에 없는 법문을 영원한 효과가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집착해 그 좋았던 법문을 도그마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여러 부처님 내지 예비 부처님 격인 선지식 등을 대상으로 그들의 특징과 역할 같은 것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살펴보고자 한다. 

글 싣는 내용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부처님 감별 기준들 2.풍모 3.용기 4.신통(이적, 기적, 신유의 능력) 5.건강 6.카리스마 7.시스템 메이커와 시스템 브레이커 8.테크닉(방편) 개발 9.그들의 제자들이다. 앞으로 ‘부처님의 향기’는 이러한 꼭지를 달고 이야기를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불순하기는 하지만 ‘감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비하적인 뜻이 아니라 그저 잘 살펴보고 값어치 등을 판단해 구별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니, 이 점 양해해 주기 바란다.

‘부처’에 대해 함부로 주둥이를 놀렸다가는 임제(?~867) 선사에게 맞아 죽기 안성맞춤이다.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법문이다. 

“도를 닦는 벗들이여! 그대들이 참다운(如法) 견해를 얻고자 할진댄 오직 단 한 가지 남에게 미혹을 당하지 말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만나는 대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권속을 만나면 친척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떠한 경계에서도 투탈자재(透脫自在)하여 얽매이지 않고 인혹(人惑)과 물혹(物惑)을 꿰뚫어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임제록』,13~18)

살활기봉(殺活機鋒)이 활발하고 임운자재(任運自在)한 임제 가풍은 모든 명상(名相)과 일체법에 구애 받지 않고 투철히 벗어나서 ‘마이 웨이(my way)’ 곧, 자유인이 될 것을 강조했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의 책들이 다 없어져도 『임제록』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뉘 집 아들인지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사이버 공간을 살아가는 세대에는 모든 것은 스크린일 뿐이고, 인간 자신도 스크린이 되어 버린다. 허상으로 가득한 사이버 세계에서 벗어나 참 세계를 만나려면 컴퓨터 전원부터 꺼버려야 한다.

임제만 그랬는가? 아니다. 임제의 후배 격인 운문문언(雲門文偃)은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운문은 학인들의 질문에 촌철살인의 댓구로 유명세를 탔지만, 아주 경악스런 말로 움쩍달싹 못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처는 태어나자마자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향한 다음, 원 모양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사방을 둘러보고는, 마침내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의두요목,2)이라고 말했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1년 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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